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다해 Feb 05. 2021

아이는 저희가 봐 드릴게요

엄마는 책을 즐기세요!

첫째와 둘째는 동네 미국 교회에서 하는 프리스쿨에 다니고 있었다. MOPS에서 만난 엄마가 원장님으로 계시는 조그만 프리스쿨이었다. 아이들을 픽업하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같은 반 친구 엄마인 K가 나를 불렀다.


K: "EJ, 애들 프리스쿨에 들여보내고 바로 옆방에서 매주 목요일 여성 북클럽 하는데 같이 가볼래?

E: "북클럽? 어휴 막내 때문에 내가 어딜 가겠어."

K: "거기 Baby sitting 해줘!"

E: "(대! 박!) 어머 진짜?!? "


책을 한 권 정해서 정해진 부분을 읽어 오고 매주 목요일 아이들이 프리스쿨에 있는 시간인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북클럽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프리스쿨 아이들 외에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들을 위해서 교회 유아실(Nursery room)에서 자원봉사 돌보미(Baby sitter) 분께서 아이를 돌봐주신다고 하셨다. 막내가 어려서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는데, 아이를 맡기고 어른들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니 가슴이 뛰었다.


일단 신이 나서 신청은 했는데 내가 한 가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책은 영어책이고 함께하는 사람들도 미국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괜찮을까'라는 고민도 잠시 특유의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했다. 대부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는 점을 고려해 읽어 갈 양은 많지 않다고 했지만 그건 미국 사람들 기준이고, 내 기준엔 어휴 이거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수준이었다. 사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하루 한 페이지나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싶었다.


생전 영어 시험 지문 외에 특별히 영어 읽기를 해보지 않은 내가 영어책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맨 처음엔 한 페이지를 읽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페이지가 끝날 즘이면 맨 위쪽엔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아마 문맥으로 읽지를 못하고 문장 문장마다 해석을 하려고 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이 오디오북이었다. 오디오북은 일단 틀어 놓으면 이해가 되든 안 되는 한 챕터 정도씩 들었는데, 계속 전체적인 내용을 반복해서 들으니, 중간중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던 내용들도 문맥으로 대강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내가 듣던 오디오북들은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책 전체를 읽어서 녹음한 것이라 책으로 읽는 것보다 말투나 분위기가 더 느껴져 내용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사실 책 읽기는 좋아했지만 미국에 가기 전 한국에서도 독서모임은 한 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꽤 많은 독서 모임을 온라인상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참여자들의 후기를 보니 꽤나 체계적인고 전문적인 것 같았다. 발제자가 있고, 책에 관해 정말 깊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에 비하면 내가 참여했던 북클럽은 독서모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였다. 이 모임은 독서모임이라기보다는 육아와 일상에 지친 아줌마들의 수다모임에 가까웠다. 책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모이지만 책 이야기를 하다가 옆길로 빠지기 일쑤였고, 누군가 근황 이야기를 하면 모두 그 이야기에 달라붙어 각종 감탄사를 연발하며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들을 내어놓았다. 웃기는 얘기, 화나는 얘기, 애들 얘기, 남편 얘기, 지난주 SNL 얘기, 오늘 아침 Today show, 시댁 얘기(미국 아줌마들도 시댁과 트러블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까지 정말 아줌마들의 수다는 끝이 없었다.



나의 북클럽은 위의 사진 같은 우아한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는 다들 치열하게 살고 있는 엄마들이었다. 아침에 아이 셋을 챙겨 나오느라 떡진 머리는 차마 신경 못쓰고 나온 나, 고등학생 딸과의 문제로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왔던 G(우리는 이날 책은 뒤로하고 한참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를 하며 마음을 나누었다), 급하게 나오느라 티셔츠에 젖이 샌 줄도 모르고 뛰어 들어오던 P, 바쁜 아침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간식거리를 챙겨 오던 K. 모두 일상에 치이면서도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매주 목요일이면 각자의 이야기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이렇게 날 것의 아줌마들의 대화는 흐름이 워낙 빠르다 보니 어버버버 대는 내 영어로는 사실 말 한마디 붙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내가 말을 하면 모두 집중해서 나만 쳐다보고 느리고 어눌한 내 영어를 듣느라 애쓰는 게 그녀들의 얼굴에 드러나서 말하기가 더 어려웠다. 꿀 먹은 벙어리로 있다가 올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가 미국 생활 중 Best Top 10 안에 항상 이 북클럽을 꼽는다. 책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정말 날 것의 미국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영어도 어눌한 나와도 항상 함께하려는 그녀들의 노력에 낯선 미국 땅에서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 이 시간은 어른들만의 시간이며 나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때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 잠시였지만 이 두 시간의 숨구멍을 통해 나는 또 일주일을 버틸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어른들만의 시간의 중요성, 소중함을 알기에 나는 엄마들을 위한 사업을 꿈꾼다. 엄마들이 마음 놓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숨구멍을 만들어 주는 시간. 그런 시간을 제공하는 사업을 언젠가 꼭 해보리라 다짐한다. 나도 이미 겪어 봤지만 엄마의 스트레스가 분출구를 찾지 못하면 (그러면 안 되지만) 결국 그 화살이 아이에게로 가고 만다. 감정을 주체 못 해 아이에게 화내고, 지나고 후회하고 자책하며 더 스트레스받는다. 나도 그랬다.


엄마도 소중하다. 화장실 문도 못 닫고 볼일 보는 사람이지만, 밥 먹다 말고도 똥 기저귀를 치워내야 하는 극한 직업이지만, 다 해낸다고 해서 엄마들이 다 괜찮은 건 아니다. 엄마들의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일, 보듬을 수 있는 일, 육아 스트레스를 덜어낼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올해엔 한 걸음씩 계획해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포켓몬 대신 치약을 잡으러 다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