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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엔 Dec 29. 2020

내가 신도 아니고 짐승도 아닌 그저 인간인 이유

사람 이야기 - 6. 철학

 "쟈기 적당히 좀 해 진짜."

 "이젠 안 그럴 거야.... 만약 앞으로도 그러면 난 진짜 금수만도 못 한 놈이다."


 대학시절 전공학점을 다 채워 교양과목을 들어야 할 상황이 있었다. 보통 이럴 경우에는 테니스, 배드민턴 같은 스포츠 수업이나, 바이올린, 댄스 같은 음악 수업을 선택해 즐기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그때의 난 인간의 진리를 알고 싶다는 이상한 허세가 있어서 철학을 선택했다.


 예상대로 철학 시간은 무척 지루하고 고리타분했다. 존재가 어떻고 인간이 선하네 악하네 신이 있네 마네... 애초에 열심히 들으려 했던 과목이 아니라 말장난 같은 논쟁은 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무신론자도 아닌 그냥 무이다. 주변에서 '그게 무신론자야'라고 하는데 난 신이 있든 없든 그걸 믿든 아니든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기에 무신론자라고 칭하기엔 무리가 있다.


 강의 시작한 지 한 달쯤 지날 무렵 자길 무신론자라 칭하는 학생 있었는데 그와 교수님의 토론은 지루한 3시간의 강의 중 제일 재밌었고 하루 내내 이슈가 될 정도로 나 같은 사람에게도 재미난 즐길거리였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토론은 '신이 존재하는가'였다. 그 친구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 칭하는 패기답게 당당히 없다고 말했고 그 근거로 범죄와 기아, 장애 같은 인간의 악한 본성과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나열하며 신이 있다면 이러지 않았을 거라 주장했다. 난 이걸 어떻게 교수님은 반론할 건지 기대했다.


 교수님은 이전에도 같은 질문을 받은 것처럼 학생의 질문을 다시금 정리해줬다.

교수: 학생 생각은 신이 전지전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학생: 유신론자들의 주장에선 그렇죠. 근데 전 극악무도한 살인자들을 그대로 살려두는 거나 기아, 장애같이 죄 없는 사람이 있는데도 구해주지 못하고 그대로 두는 걸 봐선 신은 전능하지 않고 만약 아예 그런 사실을 모른다면 전지하지 못하다는 결론으로 신은 없습니다.

교수: 방금 학생의 신은 없다고 증명한 예들은 신이 다면 전지전능해야 한다는 거엔 동의한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맞나요?

학생: 네... 뭐 유신론자 주장으로는...

교수: 음.. 조금 어렵게 말했나요? 다시 정리하자면 학생이 주장하는 예시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학생이 든 예시의 결론인 '신이 존재하지 않다'로 도출되려면 '신은 전지전능하다'라는 가설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신론자가 아닌 학생의 발언을 정리해 결론을 지으면 '신은 없다가 아닌 전지전능하지 않다'라고 결론을 지어야 합니다. 고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되셨나요?

학생: 네! 그럼 '신은 전지전능하다'를 전제로 다시 제 예시를 덧붙여 말하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교수: 그럼 인간은 전지전능한가요?

학생: 아니요.

교수: 학생의 말을 명제 논리 입장으로 다시 정리하자면 신은 전지전능하단 것에 동의하고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다면 신은 인간이 아니고 반대로 인간도 신이 아니겠군요. 그러면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않기에 인간이라는 결론으로 수렴되는군요. '그럼 전지전능하지 않다.'라는 말은 '완전하지 않고 불완전하다.'라고 봐도 무리가 없겠죠?

학생: 네! 그거나 거나 같은 말이네요.

교수: 부족함(불완전) 채우는 건 모든 생물의 본능입니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고 뿐만 아니라 고등생물이라 불리는 몇몇 종은 심지어 심심함도 즐거움으로 채웁니다. 그럼 생물과 인간의 차이점은 뭘까요?

학생: 욕구 절제 능력?

교수: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정답이라 하기엔 약간 부족합니다.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은 반성입니다. 인간은 긴 역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수와 그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교육을 만들었고 기준을 삼기 위해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학생: 그럼 신이 있다면 법과 제도를 만들기 전에 또한 애초에 벌을 주기 전에 죄를 저지르지 않게 인간을 설계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교수: 신이 완벽히 전지전능하게 인간을 설계하면 그게 인간인가요? 신인가요?

학생: 그럼 불완전하니까 인간이란 건가요?

교수: 네 맞습니다. 사실 이 말은 놀랍게도 기원전에 아우구스투스(?)라는 로마 황제가 한 말을 인용한 겁니다. 거기서 다시 한번 제 생각까지 덧붙이자면 배움은 완전하기 위한 노력으로 숭고한 것입니다. 실수를 하고 잘 못을 저지르면 반성과 용서를 구하며 그 행위를 안 하려 하는 게 인간의 본성입니다. 지구 상의 생물 중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합니다. 가끔 강아지와 혼동될 때가 있는데 강아지는 반성을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보인다면 훈련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게 인간이고 완전함을 배우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짐승과 다를 게 없습니다.


 뭔 말이지? 그래서 신이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어렵다. 사실 반 정도는 이해 못 했다. 그러나 적어도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배워야 한다'



라는 이 한 줄은 내 삶에 아직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인상 깊었다. 특히 내가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땐 평소보다 더 크게 와 닿았다. 인간은 모르면 배워야 한다. 모른다고 부끄러운 게 아니고 안다고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배움을 거부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과연 난 그 사람들도 불완전한 인간이라 여기며 언젠간 배우려는 의지를 발견하리라는 기대로 포용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배움을 거부했기에 짐승 취급을 해야 하는 것일까? 의 답은 의외로 발견하기 쉽다. 포인트는 '잘 못 후 배우려는 의지'에 있다. 배움을 거부하는 인간은 배움을 포용하기 전까진 인간이라 불릴 수 없다. 그저 고등동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잘 못에 대한 반성도 배우려는 의지도 지녔으나 실행함에 있어 번번이 실패하는 고등생물은 인간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솔직히 여기에 해당하는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난 그래도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실패를 한다는 것에 신이 아님에 증명됐고 반성하며 다시 배우려는 의지에 짐승과는 다름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불완전하니 인간이다.'라고 생각해"

 "아니! 주저리주저리 뭔 말이야! 대체? 정확히 뭘 말하고 싶은 건데?"

 "딱 한 잔만 할게..."


 - 아침에 술 끊는다고 했다가 저녁에 다시 술을 찾으며 -

(결국 허락 못 받고 등짝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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