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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김집사 Sep 01. 2022

충청도 사람은 어떻게 말하나

머리글


  잘 나온 사진을 보면 뭐라고 묻는가? 멋있다, 이쁘다와 같은 감상평도 있지만 '뭘로 찍었어?', '무슨 앱 쓴 거야? 같은 사진 도구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피사체라는 내용물보다 사진사가 사용한 카메라나 앱이라는 도구가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경우에 따라 더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말도 그렇다. 말의 내용을 제대로 주고받기 위해서는 화자가 사용하는 카메라나 앱과 같은 피사체를 보는 도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쩌면 말의 내용에 따라 우리는 말의 도구를 취사선택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화자이든 청자이든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러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말에 있어 카메라나 앱에 해당하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말의 카메라는 성별이라는 생물학적 요인이나 혹은 MBTI처럼 성격적인 부분이 되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문화적인 차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까?


  문화적인 차이는 흔히 언어의 차이와 혼용되어 동일 언어 내에서는 주목할 겨를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어와 영어, 한국어와 일본어를 배울 때 알게 되는 언어로서의 차이가 문화적 차이와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점도 맞다. 혹은 어휘의 차이 정도로 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80년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기에 북한말을 배우는 게 일상이었다. 그때 북한말 배우기는 우리랑 다르게 사용하는 어휘를 소개받고 때론 그 어휘들이 풍기는 묘한 촌스러움에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외래어로 표기하는 아이스크림을 북한은 얼음보숭이라고 한다 하자 참을 수 없는 키득거림이 티비 안 방송인들과 티비 밖 나에게서 함께 터져 나왔다. 더 나아가 그 80년대는 같은 남한의 말이라도 사투리는 '교양 없는 서울 밖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로 잘못 인식되기도 했다. 그렇게 사투리는 바람직한 범주에 도달하지 못한 열등한 존재들의 점유물로 여겨지곤 했다. 어쩌면 우리는 문화에 급을 나누고 이상적인 표준을 정했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에 따른 말을 볼 필요가 없고 오로지 따르고 지켜야 하는 말과 버리고 없애야 하는 말로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동일 언어 간 문화적 차이가 최근 주목받고 있다. 거기에는 연령에 따른 '세대차이'가 크게 관여하였다. 나와 같은 X세대들은 '천부인新설'을 믿으며 반백이 된 마당에도 자신들은 평생 '신세대'라는 정체성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MZ 세대가 등장하며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며 자신들을 '꼰대'라는 구태의연한 세대로 몰아세운다. 마치 데자뷔처럼 평생 보릿고개와 일사후퇴를 입에 달고 살던 부모 세대를 바라보던 자신들의 모습이다. '신세대'이고 싶다는 욕망 하에 MZ 세대를 이해하려는 제스처를 취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그들의 페이크 모션은 기승전'꼰대'로 결론 나며 꼰대 무한루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나는 이 꼰대 무한루프가 어쩌면 '우리말'의 멸절을 의미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지극히 주관적인 '우리말'이라고 하겠지만, 이른바 70년대생까지의 '우리말'과 MZ세대부터의 '우리말'은 분명히 다르다. 남한말은 정작 신조어 따위가 문제가 아니다. 유사한 어휘와 말투를 쓸 뿐 다른 말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일상에서 개인 간 소통의 문제에서 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다양한 부분에서 전혀 다른 소통의 형태나 왜곡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게 정치, 여성, 노동, 연예 등의 분야라고 보이나 이 부분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이 예상되므로 우선은 다루지 않겠다.

  다시 돌아와서. 우리말의 멸절이라는 현상을 나는 왜 걱정하는가? 비약인가? 비약이면 좋겠지만 나는 이게 돌이킬 수 없는 현상이고 이제는 과거 세대의 말을 유품처럼 보관하는 길이라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언어로의 진화를 왜 환영하지 못하는가? 새로운 세대를 환영하지 않는 것도 새로운 언어를 환영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과거 우리말을 사용하던 개체가 멸종하고 난 뒤 그 안에 깃들여 있을 과거의 정신도 기억되지도 보존되지도 못할까 걱정이 된다. 말은 생각을 담는 틀이다. 말은 단순히 주어, 동사 등이 조합이 된 직조물이 아니다. 생각의 재료를 물건으로 뽑아주기도 하고 담는 형태를 달리 해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쓰던 말이라는 틀에서 쓸만한 게 뭔지 다시 한번 뒤적여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는 왜 지금 분단된 것도 아니면서 다른 말을 쓰게 된 건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그런데 왜 충청도 말인가? 충청도 말은 우리나라 중심부 지역에 위치한 지역의 말이다. 즉, 우리말의 특성의 공통분모를 갖고 있을 확률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또한 더 중심부인 경기도에 비해 산업화, 도시화가 덜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우리말이 갖는 사고의 틀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충청도인이다. 다른 지역말은 잘 모른다. 서울말은 20년 넘게 배웠어도 원어민이 아니기에 아직도 유창하지 않다. 대학에 들어가며 살게 된 서울말은 역시 모향어가 아니었다. 10년쯤 살았을 때에야 아, 이제 내가 서울말을 알아듣는구나 싶었다. 마치 미국 이민 간 사람처럼 말이다. 이는 지극히 언어에 예민한 나의 주관적 경험이다. 그래서 이방인으로 남의 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경기 말, 강원 말, 전라 말, 경상 말은 뭔지 늘 호기심을 가졌다. 그러다 관심 밖에 있던 MZ 말에 한 4년 전부터 관심이 생겼다. 다른 말인걸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나의 우리말 깨달음이 언어가 달라져 고통받는 바벨탑 주민들과 같은 땅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싶었다. 충청도 말이, 우리말이, 가'졌'던 틀에는 지금의 사고와는 다른 문제 해결 방식, 사람에 대한 태도가 담겨있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말이다. 나는 이 말의 마지막 전수 세대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언젠가 이와 관련한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충청도 말이 그럼 어떻게 생각의 틀이 다른지 살펴보자. 인터넷에는 다양한 충청도 말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예를 들면 한 네티즌이 요통을 호소하는 작은 아버지의 부탁으로 등을 밟아드리자 시술이 끝난 후 작은 아버지가 '분질러진 거 같은디?'라고 하시며 혼자 다른 방에 가서 누우셨다는 글이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본인이 열심히, 세게 밟았다는 사실에 약간의 반성을 곁들이며 '아니 왜 진작 아프다고 하시지, 열심히 밟아드릴 때는 암말 안 하시고는.'이라는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허리를 부러트릴 만큼 했냐고 직접적으로 책망하지 않고 독백하듯 사투리로 푸념하는 모습 재밌어 했다. 그렇다면 충청도 언어력 퀴즈. 작은 아버지의 말은 무슨 뜻일까요?

 1번 진짜 허리가 부러진 것 같아서 지켜봐야겠다.

 2번 밟느라 고생은 했고 고맙기도 한데, 너무 세게 밟더라.

 3번 고맙다고 하기 멋쩍다. 되려 내 허리 분질러놓은 거 같다고 '놀리기'로 되받아쳐야지.


  정답을 알아보기 전에 다른 에피소드를 보자. 코미디언 최양락 씨가 방송에서 언급한 '닭 튀겨유?'다. 이발소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데 물이 뜨거웠나 보다. 이때도 역시 중간에 뜨겁다고 저항하지 않고 머리를 다 감고 난 뒤 손님이 물의 온도에 항의 없이 그냥 질문을 한다. '닭 튀겨유?' 이와 평행되는 사례로 최양락 씨는 본인의 '너덜너덜' 사건도 얘기한다(검색 요망). 같은 맥락이다. '닭 튀겨유?' 사례의 의미는 명확하다. 이때는 정말 물이 뜨거웠을 것이다. 그리고 감겨주니까 참을만해서 참기는 했는데 알려주기는 해야겠다 싶어서 끝나고 말한 것이다.

  그럼 번째는 무엇일까? 1번의 의미만을 주로 생각했다면 요즘 사람이다. 내가 1, 2, 3번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정말 세게 밟았다면 2번이 가깝다. 그렇다면 왜 2, 3번 문항에 있는 말을 표현하지 않고 '분질러진 거 같은디?'라는 하나의 문장으로 퉁쳐버렸을까? 요약과는 전혀 다르다.  2번 사례 역시 왜 해석된 내용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닭 튀겨유?'로 퉁쳤을까?  

  비 충청인, 충청도에 살지만 요즘 사람들의 청해력을 위해, 충청인이지만 네이티브기에 무심결에 쓰던 사람들의 재인식을 위해 이제 앞으로 하나하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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