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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Haru Jul 26. 2022

용심
: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심술궂은

타인의 행복에 심술이 날 때가 있다.

내게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던 일상이 내 몫이 아니게 되었을 때, 당연한 듯 그것을 누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보다는 용심(남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심술궂은 마음)이 생긴다.      


과정과 관계, 진심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에 비해, 나는 관계의 승률이 좋지 않다. 좋은 마음과 의도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선(善)’이라 생각했다. 그 정도와 방법이 검증되지 않는 한없이 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짧은 식견으로 그저 ‘이상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열심히’와 ‘최선’은 요란한 포장지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화와 합의를 통해 공동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부럽다. 처음에는 나의 방법이 마음가짐이 잘못되어 내 진심이 아닌, 뭔가 기분 나쁘게 만드는 요인(말투나 방법의 문제)이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내 마음의 부족이 가 싶어 내 마음을 곱씹어 보기도 했다.      


관계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나는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를 실패한 사람이다. 이상적인 가족의 단란함의 말하는 글들을 읽으면 나는 마음이 불편해진다. 옹졸한 내 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건 너의 자질이 아니라 그럴 수 있는 상대를 만나냐 가능한 것이라며 그들의 업적에 빈정대고 싶어 진다.     

 

끼니에 맞춰 차려진 밥을 가족들이 함께 먹는다

vs 배도 안 고픈데 남들 먹는다고 억지로 먹냐. 그건 사람을 본성을 억누르는 상대를  괴롭히는 행동이다.


아이를 위해 가족 모두 일찍 불을 끄고 눕는다

vs 왜 아이에게 다 맞춰야 하냐. 아이만 가족 구성원이 아니다. 내 몫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


역할을 정하자

vs 그런 게 뭐가 힘들다고. 자연스럽게 하면 되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고민하고 머리 아프기 싫다.    



누구나 대화로 많은 것을 결정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부부이길 원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들은 혼자만 노력한다고 반드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안하는 말을 조율과 합의의 과정이 아닌, 사람을 괴롭히는 행위로 규정짓는 상대를 만나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조건 네가 틀렸다 이렇게 하자가 아니라고 말해도 전해지지 않는 진심도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기호에 부응하는 것을 할 때는 한없이 좋은 사람이지만, 조금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것을 직면했을 때는 날카롭고 공격적인 사람들도 있다. 미지의 영역처럼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상황과 관계들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나는 종종 사람을 보는 눈을 수박을 사는 것에 비유한다. 좋은 과일을 고르는 정보를 한 두 개쯤을 알고 있지만, 결과물이 항상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당신의 냉장고에 있는 수박의 성공적이라면 무조건 내가 잘 골라서가 아니라, 많은 행운이 작용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운이 조금 부족했을 뿐이다.

새벽부터 괜한 심술 타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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