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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봉주 Jun 12. 2024

‘솔~직히’ 말해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정해진 답을 강요하는 억지 동료의식

솔직히率直-

(부사)

1. 거짓이나 숨김이 없이 바르고 곧게

-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

1. 거짓이나 꾸밈이 없고 바르게

-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솔직히率直-'가 뒤이어 등장하는 문장의 '진실성眞實性'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될 때는 '사실事實'과 같은 의미를 쓰입니다. 자신의 말에 속임과 꾸밈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솔직히'의 용례는, 흔히 '솔'이 강조되어 활용되는 '솔~직히'로, 자기 생각에 대해 상대의 동의를 구할 때 쓰이는 경우로 한정 짓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 적용되는 '솔~직히'의 활용형은 '솔~직히 그렇지 않아?', '솔직히 그렇잖아!', '아니 솔직한 말로...' 등이 있습니다.




 대화에서 종종 상대가 우리 쪽으로 얼굴이나 상체 전체를 쓱 들이밀며 은근한 표정으로 '솔~직히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직감적으로 상대가 자신의 앞선 말에 대해 동의를 구하거나 곧바로 뒤따라올 말에 대해 미리 동의를 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저는 그 모습이 언제나 어색하고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합의를 끌어내 분명한 결과물을 도출해야 하는 토론장에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언제나 그랬듯 자유롭게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불현듯 상대의 눈치를 보며, 게다가 마치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동의를 구하는 행동을 취하는 걸까요.


 '솔~직히'를 앞세워 상대가 우리에게 어떤 대답을 기대할 때, 왠지 우리는 상당한 부담감을 느낍니다. 가끔은 꺼림칙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상대가 단순히 '동의'만을 구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래부터 동의한 것이 아닌 이상, 상황과 관계에 따라 마지못해 '네... 그렇네요...'라고 답하거나, '그런가요. 잘 모르겠네요. 하하하'하고 어물쩍 넘어가기도 합니다.




 보통 '솔~직히'가 앞이나 뒤에 덧붙여진 말은 도덕적으로 혹은 사회 통념에 비춰보아 문제가 될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상당한 결례가 될 말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말을 꺼내는 자신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것을 예상하고, ‘내가 이만큼 내 생각을 다 털어 보여주었다’는 의미로 '솔~직히'를 강조합니다. 한 마디로, ‘솔~직히’에 함축된 의미는 ‘나는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솔직한 내 생각을 다 공개하는 신뢰를 보여주었으니, 당신도 나에게 지지를 보내주었으면 좋겠다’입니다. 그런데 우습게도 '솔~직히'라고 말하며 동의를 구해야 하는 관계라면,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겠지요.


 그리고 '솔~직히'로 포장된 생각들은 대체로 개인적인 경험과 입장에 한정된 편협하고 단편적인 시각이나 사례를 근거로 삼습니다. 생각의 근거가 ‘개인적’이기 때문에 솔직함은 근거의 순수성을 강화해 주장을 정당화하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솔~직히'가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을 넘어 '내 편 만들기'를 시도하는 발화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소속감 요청입니다. 자신의 시각에서는 맞는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는 인정되기 힘드니 동료를 만들어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시도입니다. 심지어 듣는 이와 말하는 이 사이의 관계에 따라서는 '나는 솔직히 말했으니, 너도 솔직히 말하라'고 윽박지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나아가 '솔~직히'에 내포된 '내 편 만들기'의 심리에 '자신의 생각 때문에 자신이 공격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이 관계의 진실함(물론 일방적인 믿음입니다)'을 빌미로 연대감을 호소하여 상대가 자신에게 가할 수 있는 공격을 무마하려는 심리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끔은 농담으로 ‘솔~직히’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위기를 풀어보겠다며 (본인이 생각했을 때) 다른 사람이 불만일 것으로 추측하는 것을 언급하여 공감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기 때문에 오히려 대답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답해도 곤란해지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문제는 '솔~직히' 한 말에 동의하지 않았을 때, 상대가 우리를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깎아내리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거나 도덕적으로 조금(혹은 많이) 위험한 의견, 선을 넘는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범을 만들고자 솔직해졌는데, 기대와 달리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으니 이제 상대는 적일뿐입니다. 애당초 자신이 동의하기 힘든 말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나는 이만큼 진실했는데, 너는 아니다'라며 위선적인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이는 자기합리화의 실패 원인을 듣는 이에게 전가하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동의는 동의를 구하려는 쪽이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구하는 것이지, 듣는 이에게 진실성을 호소하여 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공감 구걸'입니다. '나는 다 털어서 보여주었으니, 너 역시 합당한 대가를 내놓아라'라고 말하는 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애당초 '다 털어 보여주기'를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불합리한 인신공격이 예상되더라도, 우리는 '솔~직히'에 뒤따라오는 말을 동의하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대체로 ‘솔~직히’는 뒷담화에 가깝습니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나 대화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거리가 있는 상황을 언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리감 때문에 말하는 이는 솔직함을 객관성으로 착각합니다. 하지만 거리감이 만들어낸 것은 객관성이 아니라 몰이해입니다. 모르는 것에 대해 자기 입장에 빗대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래서 '솔~직히'를 자주 쓰는 사람은 다른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멋대로 해석하는 편한 태도가 몸에 배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솔~직히' 말한다고 해서 의견이 도덕적으로, 논리적으로 더 합당해지지 않습니다. 단편적인 경험이나 편향적 감정에 대한 공감을 호소하는 말하기는 생각하는 힘을 약화시키고 관계를 협소하게 만듭니다. 나아가 대체로 듣는 이를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듭니다. 의견에 정당성을 더하고 내 편을 만드는 말하기는 상대가 요구하지도 않은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 보이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화 상황과 듣는 이의 입장, 나아가 대화에서 다루는 대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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