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용서할 틈 남겨두기
사력死力
(명사)
1. 목숨을 아끼지 않고 쓰는 힘
- 표준국어대사전, 우리말샘
1. 죽기를 각오하고 쓰는 힘
-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사력을 다하다'는 말은 쉽게 쓰이고, 많이 쓰입니다. 게다가 멋있는 삶의 태도로 여겨져 늘 찬탄 받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사력을 다하'는 태도를 자주 권합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태도인지 많은 생각이 듭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하면서도 무서운 말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유의어로 '필사적必死的'을 들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한 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반드시必 죽는死’ 태도입니다. 결국 ‘잘 살기’ 위해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인데, 모든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의 '필생즉사必生卽死 필사즉생必死卽生'을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일까요?
앞서 말했듯, 우리는 '사력'을 다하여 '필사적'으로 사는 것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의 저 유명한 말은 순간순간 죽음과 생존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두려움에 떠는 군인들을 독려하기 위한 실천적 지침에 가깝다는 것이 너무 쉽게 간과됩니다. '필생즉사 필사즉생'에서 언급되는 생과 사는 은유가 아니라 실제 상황 그대로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력을 다하는 태도로 살아 기어이 성공하여 우리에게 전시展示되는 분들은 모두 눈부신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고,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쟁취합니다. 이런 자세로 살아온 분들은 언제나 투쟁하며 살아왔습니다. 세상과 상황을 이겨보겠다는 심리, 그래서 끝내 살아남겠다는 굳은 결의가 이들을 죽을힘을 다해 살게 한 원동력입니다. 그리고 끝내 성공했기에 이들은 삶의 귀감이 되고, 그래서 '사력을 다하는 태도'는 모범적인 태도가 됩니다.
하지만, 꼭 사력을 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모든 삶의 행동은 살기 위한, 나아가 '잘' 살기 위한 노력입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선하게 가꾸며, 함께 하는 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력을 다하는 삶의 방식은 ‘잘 사는 것’과 ‘잘 살기 위한 노력’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아끼지 않고, 목숨까지 희생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삶이 가진 본연의 목적인 ‘잘 살기’와 상당한 의미적 긴장관계에 있습니다.
실제로 '사력'을 다해 사시는 분들은 대체로 삶의 방향이 한 가지밖에 없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태도로 사시는 분들은 두 종류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정말 그 태도로 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경우, 둘째는 다른 삶의 모습을 생각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전자는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안전망이 없는 구조적인 문제에 원인이 있고, 후자는 대안을 고려할 틈을 주지 않는 사회적인 압박이나 여러 선택지를 가르친 적 없는 획일적인 교육 환경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사력을 다해야만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처한 삶의 상황(혹은 환경)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런 건강하지 못한 상황 속에 있습니다. 아마 당신은 사력을 다하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마 성공한 사람들을 기준 삼아 그 정도로 사력을 다하지 않았기에 이 정도는 누구나 노력하는 정도로 사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언젠가는 사력을 다해 치열하게 노력하여 무언가 이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앞서 저는 '사력을 다하는 태도'를 가진 분들은 존경받을 만한 이력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모범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연전연승했습니다. 고난을 끝내 극복하고, 어려움이 있어도 결국 방법을 찾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통해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지금에 도달했으며, 우리는 그 대단한 능력과 성공이 '사력을 다하는 태도'에서 왔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곧 성공을 보장한다는 신화에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죽을힘'을 다하면 모든 힘듦을 다 극복할 수 있나요? '사력을 다하는 사람은 연전연승'하는 것이 아니라 '사력을 다한 사람 중에 운이 좋게도 연전연승한 사람들이 생존하여 우리 앞에 보여지는' 것은 아닐까요?
실제로 '사력'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들 중 스스로 원해서 '사력'을 다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안전망이 없거나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당장의 삶을 위해 '죽을힘'까지 다하지 않으면, 투쟁 끝에 연전연승하지 않으면 내일이 막막한 삶을 삽니다. 그래서 연전연승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아직까지는' 연전연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이길 수 없습니다. 결국 미처 어찌할 수 없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끝도 없는 좌절에 빠집니다. 이 좌절은 쉽게 해쳐 나올 수 있는 좌절이 아닙니다. 싸우지 않고 살 수 있는 방식이 있음에도 그 방법을 몰라 사력을 다해 끊임없이 싸워온 사람이 느끼는 낙오감이고, 삶은 여전히 존재하고 여전히 빛날 수 있음에도 순간순간의 승리를 위해 삶을 희생하였으나 끝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실패(로 보이는 경험)에서 더 이상 나아갈 힘이 없기에 봉착한 절망감입니다.
사력을 다 했으나 좌절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유일합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고 삶을 살았는데, 그 삶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유지할 이유를 잃는다면, 말 그대로 '죽을힘'으로 살았기에 자살을 선택합니다. 자살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선택지가 되는 이유는, 삶을 희생하면 성공한다는 믿음이 경쟁과 투쟁 없이 살 수 있는 삶의 자세에 관하여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무한한 경쟁 속에서 살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죽을힘을 다했는데 실패했으니 죽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보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살을 쉽게 언급하는 분위기, 누군가의 고통에 '너만 힘들어?'라는 반응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회가 우리 모두 '사력'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에 타인의 삶을 들여와 살펴보고 자기 삶과 맞춰 볼 틈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모든 삶을 희생하였기 때문에 작은 여유마저 사라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고통만 느낄 수 있게 되었고, 타인의 고통은 너무 쉽게 무시하게 되는 것이죠.
안전망과 대안이 없는 사회는,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삶과 죽음이 '실제로' 오고 가는 전쟁터를 일상에 불러옵니다. 사력을 다하라는 사회적 명령은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고 우리를 보호해야 할 사회가 자신의 의무를 회피할 길을 만듭니다. 그리고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나 당당하게 '네가 죽을힘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태된 거야'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런 태도를 모범을 여기는 사회는 우리에게 너무 사소한 일에까지 사력을 다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사력을 다해야 하는 노력을 실천해야 하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그리고 사력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경우는 그 이상으로 더더욱 드뭅니다.
우리는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삶을 희생하는 노력을 통해야만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면, 정말 사력을 다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인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나아가 설사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고 해도, 폭력적인 상황이 나를 그런 선택지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력을 다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면, 결국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삶의 끝이 아니고 다른 삶을 찾을 수 있다며 스스로를 용서할 틈을 남겨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분명 존재하고, 사력을 다하더라도 꼭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숨 쉴 틈’을 남겨주는 것이 우리를 '죽을힘'을 다하는 노력 끝에서 최소한의 삶을 희생시키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사력을 다한다'는 고통스러운 말을 대신하여 '후회 없다'는 말이 쓰이기를 바랍니다. 충분히 노력하여 아쉬움과 미련이 없고, 최선을 다하여 삶의 선택을 존중했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가 손쓸 수 없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여 나의 실패가 온전히 나의 불충분한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기 바랍니다. '후회 없는' 노력은 이미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결과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빛난다는 것을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