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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킴 Nov 06. 2024

3_고장난명孤掌難鳴

에세이로 풀어보는 고사성어 이야기


우리 속담에 외손뼉은 울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이 말은 두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 외손뼉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거다. 일이 되려면 그에 같이 응하는 사람이 있어야지 혼자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이런 의미를 갖는 사자성어도 당연히 있다. 일뿐만 아니라 심지어 싸움조차도 그게 되려면 맞서는 사람이 있어야 함을 일컫는 고사성어, 바로 고장난명(孤掌難鳴)이다. 그것은 이렇게 쓴다. 


외로울 고(孤), 손바닥 장(掌), 어려울 난(難), 울 명(鳴)

‘고장(孤掌)’은 ‘외로운 손바닥, 즉 외손뼉’이다. ‘난명(難鳴)’는 ‘울기 어렵다는 말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가 될 게다. 한 손만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의미인 거다. 반드시 두 손바닥의 마주침이 필요하다는 것. 혼자서는 일을 이룰 수 없음을 비유하거나, 맞서는 사람이 없으면 싸움이 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대화를 시도했지만 의견이 맞지 않아 계속하기가 어려울 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지~’를 탄식하듯 내뱉지 않나. 그렇게 이 말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 결과에 사용함으로써 비방의 의도를 드러내곤 하더라.

이 성어는 중국의 법가(法家)를 대표하는 인물인 한비(韩非)의 <한비자(韩非子)> ‘공명(功名)’ 편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했단다. 한비(韩非)는 보통 우리에게 한비자(韩非子)로 알려진 인물로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의 왕족 출신이다.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법가(法家)를 집대성한 철학자다. 


그의 사상에 완전히 반한 사람이 있었으니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 바로 진시황이었더라. 그는 한비자의 책을 읽고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그에게 푹 빠졌단다. 그는 한비를 만나 얘기를 한 번 나눠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직 한비를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韓)나라를 침략했으니 한비가 얼마나 대단한가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를 만났을 때 말을 더듬는 한비자를 보고는 진시황은 크게 실망했다지. 한비자는 어쩌면 자신의 그 단점 때문에 더더욱 집필에만 매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가(一家)를 이루지 않았던가. 이렇게 단점이 때론 장점이 되기도 하나니.

진시황이 막 즉위했을 당시는 선왕의 신하였던 여불위(呂不韋)의 권세가 막강하던 때였다. 그를 제압하고 왕의 권위를 회복하고자 한비의 지혜가 필요했던 거다. 진시황이 방법을 물었을 때, 한비는 군주가 권력을 얻으려면 군주와 신하의 직책이 구분돼야 하고 신하는 군주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 손으로 두드리면 빠르지만 소리가 안 난다는 말이 있듯이, 권세가 없는 군주의 명령을 집행할 신하는 없을 테니 일단 권세부터 장악하라고 건의했던 거다. 진시황은 한비의 말을 듣고 결심을 굳혔고, 암암리에 힘을 모아 마침내 여불위를 제거하고 진나라의 대권을 장악하게 된다.


바로 그때 한비가 했던 ‘한 손으로 치면 빠르긴 하나 소리는 나지 않는다(一手獨拍,雖疾無聲)’라는 그 말에서 고장난명(孤掌難鳴)이 만들어졌단다. 한비는 그의 사상을 담은 논리적 글쓰기에서 이미 천재성을 명확히 드러낸 바 있다. 그는 결국 그의 재능에 두려움을 느낀 진(秦)나라 재상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사(李斯)가 한비자의 사상을 그대로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마침내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루지 않았던가.


한비자의 재능을 질투한 이사를 보면서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게다. 한비자가 그 방대한 양의 저서를 통해 주옥같은 글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태생적인 어눌한 언변에 좌절하지 않고 그는 차가운 이성적 글쓰기로 자신의 욕망을 표출한 것이리라. 

사람들은 어떤 한 분야에서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자의 천재성에만 주목하지 그의 숨은 노력은 보려 하지 않는다. 모차르트가 한탄하며 그런 말을 했다지 않나. 자신은 살리에르처럼 게으른 자를 본 적이 없다고. 엄청난 시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내야 했던 모차르트는 살리에르가 자신이 들인 노력에 질투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건 아닐는지.  




난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는 사자성어를 빌어 한비자 얘기를 하고 싶었나보다. 사실 그의 에피소드와 관련해서 할 얘기는 너무도 많다. 그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명확했을 뿐만 아니라 일을 처리함에 있어 단호했다. 그의 차가운 지성은 너무도 가혹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뛰어난 통찰력과 냉철함에 은덕이 조금만 얹어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이 어찌 완벽할 수 있겠나. 그런데 난 또... 그래, 어쩌면 내 욕심인지도.


언젠가 꼭 하고 싶었던 한비자의 이야기, 오늘 이렇게라도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난 왜 이 아침부터 한비자인가? 고장난명으로 풀고 싶은 얘기도 많았는데... 오늘 아침 뉴스를 보면서 내 마음속 이 차오르는 분노는 조금 더 숙성시켰다가 다음에 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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