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이, 때로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Sometimes it is the people who no one imagines anything of, who do the things that no one can imagine.)
몇 년째 가슴에 박혀 잊지 못하는 말이다. 길다면 꽤나 길고, 앞뒤로 대칭성을 지닌 이 문장은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2014)>라는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이다. 2015년 2월에 보았던 이 영화는 귀를 가득 울리는 처량한 음악으로, 2차 세계대전으로 돌아간 배우들의 연기로, 앨런 튜링이라는 한 수학자의 인생으로 내 심장을 지금까지 가득 메우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가장 사랑하는 영화가 무엇이느냐고 묻는다면, 비록 동화처럼 행복하게 끝나지도, 판타지 세계의 황홀함을 느끼게 하지도 않지만 가슴을 울린 이 영화를 사모한다고 대답하겠다.
영화는 제2 차 세계대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 독일군의 암호였던 ‘에니그마’를 풀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앨런 튜링이라는 한 수학자이다. 그는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지만 그의 존재는 잊혀져만 갔다. 어째서였을까?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한 점은 바로 성소수자의 인권 문제였다. 앨런 튜링은 동성애자였으며,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는 결국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인권이 짓밟혔고, 끝내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는 평소 성소수자에 관해 어떻게 인식할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양성애자나 범성애자, 무성애자로 불리는 사람까지,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삶을 꾸려 나간다. 그들은 ‘다른’ 존재일 뿐이지만, 다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이따금씩 ‘틀린’ 취급을 받으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그들의 어떤 점이 틀렸는가? 그들의 사랑의 방식이 왜 문제인가? 이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소수자는 그저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그들이 어떠한 치료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것은 그저 성향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이 영화를 봄으로써 동성애자에 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해가 지나며 이 영화를 반복하고, 내 삶이 하루하루 더 진행됨으로써 이제는 동성애자뿐 아니라 더 다양한 소수자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이 중 수상한 부문은 각본상이었으며, 영화의 각본을 맡았던 그레이엄 무어는 시상식에서 한 마디를 남겼다.
“Stay weird, stay different.”
영화의 마지막에서 조안이 앨런에게 하는 길고 긴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튜링이 평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특성을 지닌 이들을 배척하곤 한다. 자신에게 있는 ‘특이한’ 점을, 다수에 편입하기 위해 ‘평범함’으로 바꾼다. 우리는 그렇게 다르게 태어났음에도 몰개성적으로 변해간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70억 가지의 다채로운 빛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만다. 이 영화는 오늘날 자신을 버리고 다수에 들어가려는, 만들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메시지를 던진다. 다르더라도, 설사 타인이 이상하다고 평가할지라도, 우리는 그대로 괜찮다고. 사람은 개성을 가짐으로써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태어남과 동시에 알고 있었지만, 하루하루 사회에 적응해가며 이 사실을 잊어버린 우리에게 조안의 대사는 자신만의 빛깔을 다시 보여준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목할 점은 에니그마를 해독한 이후에 나온다. 나는 처음에는 튜링이 성소수자이기에 겪었던 부당한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영화를 관람하면서, 그들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피터의 형을 포기했을 때가 눈에 들어왔다. 피터의 형을 구하게 된다면 독일군에게 에니그마를 해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었다. 피터는 이 상황에서 오열하며 앨런에게 그는 신이 아니라고 외친다. 인간 생명의 무게는 앨런이 다룰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 앨런은 답한다. 우리가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해야 한다고. 결국 피터의 형은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은 존엄하다! 옛적부터 들어온 말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보다 내 철학은 경험과 함께 자라났다. 물론 아직도 인간의 존엄함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세상의 그 누가 생명의 무게를 확적히 느낄 수 있을까? 허나 그 가늠조차 안 되는 무게를 그들은 견뎌내야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앨런이 영화에서 말했듯, ‘그들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생과 사를 정하는 모습을 보았더라면, 이전의 많은 철학자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가장 최근에 이미테이션 게임을 다시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인간의 목숨은 하나하나가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중하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숫자만으로도 판단할 일이 아니다. 또한 생명은 그 자체로 귀중한 것이기에 사람의 지위나 명성으로도 판가름할 일이 아니다. 생명은 저울질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나 이들의 행동을 과연 누가 비판할 수 있을까? 이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고통의 크기는 얼마나 거대했을 것인가?
이미테이션 게임은 지독하게도 폭력에 피해를 입었던 앨런 튜링의 삶을 고요하고 덤덤하게 그려낸 영화였다. 학창 시절 그에게 가해졌던 폭력, 전쟁이란 학살의 폭력, 소수자에게 가해진 인권 침해 폭력……. 결국 끝에 그는 죽음을 택한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다름을 이유로 누군가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있진 않은가? 누군가에게 독이 든 사과를 내밀고 있지 않은가?
본 글은 2019년도에 작성한 글에 약간의 퇴고를 거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