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처음으로
피아노를 치다보면, 나도 모르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한 곡을 받아서 무대에 가지고 가는 과정은 삶의 여정과도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따금 그 과정이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과정과도 유사하다고 느낀다. 이질적인 무엇인가를 내 것으로 만들어 갑옷처럼 둘러메고 무대 위에 서야하기 때문이다.
22살 무렵이였다. 내 영혼의 위치를 알게 되었던 날이었다. 나는 내 육체 속에 영혼을 고이 안고 있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나의 영혼은 걸터앉아있었다. 흔히들 완전히 몸과 분리된 상태를 유체이탈이라고 하던가. 나는 반 유체이탈이었다. 그 상태로 계속 살아왔던 것이다. 그 날의 충격은 좀 나에게 타격을 주긴했다. 이후로 영혼을 제자리로 돌려놓기위해, 수시로 위치를 더듬는 시간이 필요했다. 긴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다. 눈 미간 사이의 감각에 후두부를 느끼면 되었었다. 내 생각으론 나의 지나친 상상과 피아노 연습으로 인한 소리듣는 습관들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중요한 건, 이것이 피아노 연습을 할때 다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건반을 실제로 치면서 ‘치고있다’ 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데, 그 치고있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내성이 생겨버린 거다.
무슨 일이든 단계라는 것이 있는데, 계속해서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자극에 차례차례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된다. 모양은 그럴듯하나, 원인을 찾지 못하는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치며 여러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해가다 풀릴 수 없는 이상함의 끝에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면 이와같은 문제에 다다르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봉착하는 문제는 결국엔 이렇게 허무하고 시시한 원인이 대부분이다.
쉬운 것을 간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을 해내지 못하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와 스트레스를 준다. 요즘에는 내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보려해도 자꾸만 둔감해지는 것 같아 두렵기까지 하다. 그럴수록 더욱 현실과 맞닥뜨리는 것이 중요할텐데 말이다.
눈으로 건반을 보고, 치는 것을 느끼고 자각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레슨하고 있는 7살 재진이가 더 잘하는 부분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부분은 많은 나쁜요소들을 함께 데려온다. 예를 들면, 잘만 하던 암보가 힘들어 지거나, 프레이징을 길게길게 보는 나머지 아티큘레이션을 세밀하게 보지 못하는 등의 문제들이 생긴다. 이럴 땐 매우 절망스럽고,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인지 찾기 힘들 때가 많다.인생도 마찬가지다. 도무지 풀 수 없는 슬럼프의 해결점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다. 그 상황에서 쉬운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현재의 상황을 자각하게 되었다면,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는 구멍은 일단 찾은 셈이다.
이럴 때가 온다면, 가장 단순한 것에 집중해야한다.
내가 ‘치고있음’을, ‘건반을 누르고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
#슬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