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임현주 아나운서는 ‘여성스럽다’는 표현을 지적했다. 이 말이 끊임없이 편견을 재생산해낸다며 일침을 가한 것이다. 공중파 방송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기쁜 일이었다.
'너 참 여성스럽다', '말투가 여성스럽다' 등등의 수식어는 오랫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마치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을까 염려라도 하는 듯. 아마 웬만해선 큰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0.8배속 버튼을 누른 마냥 말과 동작이 느리기 때문에... 굳이 이유를 찾으라면 찾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타고난 자질이 자연스레 여성성과 결부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자인 내게 여자답다고 하는 게 일종의 칭찬인 모양이었다. 족쇄와도 같은 칭찬이었다. 일상에서 굳이 여자임을 증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 적도 없었는데 이런 말들을 계속 들으니 되려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한국에서 여자로 자랐기에 내 안에 자리 잡은 특유의 행동과 말투가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성인의 '애교'는 몸서리쳐지게 싫었지만 이십 년에 걸친 교육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발휘했다. 해외에서는 몸에 박힌 친절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될 때도 있었다. 또 사회생활을 하며 유심히 관찰해보니 남성 동료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말끝을 흐리거나 어색한 상황을 웃음으로 넘기는 버릇이 그것이다. 이러한 태도를 덜어내려고 부단히 애썼다.
그렇다면 치마를 입거나 화장을 한다고 해서, 말투가 차분하다고 해서 여자다운 것일까? 그 반대는 여자답지 못한 것이 되는 것일까? 고정관념에 의해 정의되는 여성성에서 벗어나 나만의 여성성을 다시 써보기로 한다. 진정으로 내가 나를 여성으로 정의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거울 앞에서 보낸 시간
세상의 모든 여성이 그러하듯, 나 또한 신체 콤플렉스에 맞서 싸워야 했다. 사춘기를 지나고도 납작한 몸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응당 여자의 몸은 둥근 곡선으로 이뤄져야 한다는데 내 몸에선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것이라 미디어에 노출되는 몸매와는 영 거리가 먼 몸뚱이가 내 눈에 예뻐 보일 리 없었다. 예쁘지 않아도 괜찮으며, 기능하는 몸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치열한 노력이 필요했다. 완벽한 몸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훈련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변 여성들과 외모 강박에 시달려온 이야기를 공유하는데, 비슷한 길을 헤쳐왔다는 사실은 때때로 우정의 가교가 된다. 수많은 여성과 같은 어둠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느낀다.
아픔과 상처에 공감
아홉 살 즈음이었다. 저녁마다 전화통을 붙잡고 오래 통화를 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집에 가는 길에 한 늙은 남자가 자길 불러 엉덩이를 더듬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처음이라 머리가 하얘졌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옆에 있던 엄마가 엿듣게 될까 두려웠다. 말을 얼버무리다 냅다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음 날 친구를 만났을 때 서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 이야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이후 내가 전학을 가면서 친구와는 자연히 멀어지게 됐지만, 이 사건은 마음의 빚이 되어 남아있다. 얼마나 놀랐냐고 달래주지 못한 것을,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못한 것을 아직도 후회한다.
경험의 빈곤이 결코 상상력의 빈곤을 뜻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더는 겪어본 적이 없어 모른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만큼 나도 많이 자랐다. 내가 받았던 끈적한 시선, 원치 않았던 접촉 등의 불쾌한 경험을 통해 감히 폭력과 차별의 피해자가 느낄 고통의 크기를 짐작한다. 함께 분노하며 주저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때 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느낀다.
연대와 지지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대체 누구 입에서 나온 말일까. 내가 닿는 길목 길목마다 먼저 나와 손 내밀고 이끌어준 이들은 늘 여자들이었거늘. 내가 사는 국제기구의 도시, 제네바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훌륭한 여성들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눈부신 커리어와 당당한 자세에 매번 마음을 빼앗긴다. 힘겹게 발을 들인 곳에 발붙이기 위한 그들의 성실함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좁디좁은 마음으로 그들을 시샘하지 않고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주기 위해서는, 나도 나만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겠다고. 이 여성들과의 만남은 결국 엄청난 영감과 용기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이 특별한 힘을 경험할 때 나는 내가 여자라는 것을 느낀다.
위에 나열한 세 가지는 모두 내가 느끼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다. 그러니 아주 사적일 수밖에 없다. 여성으로 존재하는 방식의 수는 세상에 존재하는 여성의 수와 같을 것이다. 이 세 가지에 공감하지 않는 여성도 정체성에 대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갈 것이다. 나의 여성성은 수동성, 모성애, 감수성 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역시도 사회 문화적 맥락 안에서 쓰인 여성성이다.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On ne naît pas femme. On le devient.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녀의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환경 속에서 여성의 가치가 부여된다는 뜻이다. 태어남으로써 만들어지는 성차인 섹스(sex)에서 특정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설명되는 젠더(gender) 차원으로 논의를 확장한 명문장이기도 하다.
여성, 남성의 특질을 인위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개인이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가장 자유로울 것이다. 하지만 집단에 속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는 개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한다. 때로는 집단을 나누는 것이 복잡한 세상을 조금은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얽혀있는 존재로서 숨 막히는 편 가르기는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겠다.
나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순간을 떠올리며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 핵심은 나만의 기준에 의지했다는 데 있다. 최대한 유동적이고 개인적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하며, 내 안의 여성성과 마침내 화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여자다움'와 내가 생각하는 '여자다움'의 간극이 벌어졌지만, 괜찮다. 다른 여성의 아픔에 공감하고 앞날을 응원하는 나는, 나대로 여자다운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