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가혹한 해였다. 역병은 많은 이들의 발을 묶어 놓고, 한순간에 희망을 절망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다 같이 모른 척하고 다시 2020년을 맞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출처_elle.com
나의 한 해도 돌이켜보면 성취 면에서는 영 꽝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러스를 핑계 삼아 여러 계획을 미루고 게으름을 합리화했으니.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올해가 유독 그렇게 형편없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는 시점, 마음에 쏙 들만큼 흡족했던 적이 있었던가. 목표 지향적 인간과는 거리가 멀기에, 달성한 목표를 체크하며 한 해를 평가한 적도 없었다. '이 정도면 괜찮았네~'하고 말았지. 다만 평소라면 크고 작은 일들로 기억할 거리가 있었겠지만,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니 아무래도 밋밋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올해가 이렇게 증발해버리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그 노력의 일환으로 셀프 칭찬해주고 싶은 일을 몇 가지 꼽아보기로 한다.
다른 방식으로 주위 사람을 사랑했다.
락다운 동안 혼자 있는 시간이 세네 배로 늘어났다. 바쁘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무심함을 포장하는 것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멀리 있는 친구들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내고, 영상 통화를 제안했다. 돌이켜보니 올 한 해는 그 어느 때보다 잘 지내냐고, 별 일 없냐고 묻는 데 열심이었다. 그들의 체온은 느낄 수 없었지만 눈빛과 말투에서 흘러나오는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안부를 물어오는 다정한 사람들이 이 시기의 고독을 덜어주었듯, 나도 그들에게 그랬길 바란다.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친구들과 영상 통화를 했던 날이다. 일명 Whatsappéro (메신저 WhatsApp와 식전주를 뜻하는 apéro의 합성어)에 도전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는 퇴근 후, 나는 재택근무 점심시간, 맥주를 한잔 마셨다. 브라질에 있는 친구는 술을 마시기에 너무 이르다며 아침 식사를 했다. 오디오가 겹치니 한 명씩 손을 들고 말하라며, 깔깔대고 웃다 보니 금세 몇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이전에는 말만 했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일이다.
글쓰기를 시작했다.
봉쇄령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사무실과 집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도시의 소음 대신 새소리가 들려오는 공간이 된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선물한(?) 고요함이었다. 그 안에서 글쓰기를 시작하게 됐다. 오롯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글쓰기는 매번 어려웠고 앞으로도 어려울 테지만, 이제껏 맛보지 못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올해 가장 뿌듯한 일이었노라 주저 않고 말할 수 있다.
제목부터 매혹적인 '참을 수 없는 글쓰기의 유혹'에서 작가 브렌다 유랜드는 말한다.
글쓰기에는 훌륭한 보상이 따른다는 것을 당신이 깊이 느끼기를 바란다. 당신이 쓰는 문장 하나하나에서 당산은 무언가를 배운다. 글쓰기는 당신에게 유익함을 주고, 당신의 이해를 확장시킨다. 글쓰기의 가장 큰 보상은 꿰뚫는 이해, 즉 빛나는 통찰, 영혼의 확장이다.
보이기 위한 글이었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글이었다. 락다운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큰 기쁨이다.
올 한 해가 그렇게 끔찍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는, 사실 엄청나게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는 걸 알고 있다. 다행히 건강했고 무탈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2020년을 이대로 날려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서두에 썼다. 하지만 개인적인 성취나 추억과는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2020년은 사람들 입에 오랫동안 오를 것이다. 그러니 그 속에 내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특별한 일이 없어서 특별한 해로 2020년은 기억될 것이다.
출처_MBC 나 혼자 산다
지난주 '나 혼자 산다'에서는 박세리가 비대면 강의를 촬영하는 모습이 나왔다. 골프 후배들에게 자신에게 덜 인색하라고 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미 뼈를 깎는 노력을 한 사람이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은 말자. 환경이 고될수록 자신에겐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연말이 왔다고 일 년 동안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어쩌다가 코로나라는 변수를 만난 2020년은 잘못은 없고, 그 시간을 지나온 우리는 더더욱 아무 잘못이 없다. 우리 모두 고생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