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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Dec 06. 2023

조식으로 한식을 주는 스페인 숙소

여행 중 한인 민박에 묵는 이유

친구들이랑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빠에게 뭐가 제일 기억에 남냐고 물었다.


“소주가 만 원이 넘더라.”


술값이 많이 나왔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아빠를 보며 생각했다. 해외여행까지 가서 한식에 소주라니 이해할 수 없다고. 유럽 여행 3주 만에 그 당시 아빠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느끼하고 짠 음식 대신에 얼큰한 국물을 먹고 싶었다. 걷다 우연히 한식당을 발견하면 모든 계획을 뒤로하고 음식점으로 들어갈 정도였다.


그렇게 유럽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 바르셀로나 숙소를 알아봤다. 바르셀로나는 숙소비용이 유난히 비싼 여행지 중의 하나였다. 8인 공용 방이 8만 원부터 시작했으니, 숙소 비용만으로 이미 바닥난 여행 자금을 탈탈 털어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숙소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야 했다.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숙소라고 치면 한인 민박이라는 검색어가 같이 따라왔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여러 나라의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기에 한국인들만 묶는 한인 민박은 나의 선택지에 없었다. 시설이 좋은가 해서 사진을 찾아보니 다른 숙소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편도 아니었다. 모두 다 평균이었다. 신기한 건 한인 민박 숙소가 예약이 다 차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한인 민박을 찾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규모가 커 보이는 ‘덕구네 민박집’을 하루 예약했다.


카사밀라에서 찍은 부엌


한국어 간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갔다. 먼저 도착한 손님이 체크인하는 중이라 잠시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자 카운터에 있던 직원이 다가와서 무언가 건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물이 담긴 컵이 보였다. 순간 너무 충격을 받았다. 물이라니. 그것도 공짜 물이라니. 줄줄 흘리던 땀을 닦으며 물을 받아마시니 은은한 감동이 생겼다. 친절한 직원 덕분에 숙소의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 이어서 체크인하고 방을 안내받았다. 직원분은 나의 배낭을 들어주시면서 말했다.


“저도 이런 배낭 써보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되게 편하네요!”


그동안의 수많은 영어 듣기 평가 속에서 내용을 대충 때려 맞추면서 여행했는데 문장 전체가 이해된다니 신이 났다. 못 알아들었으면서 알아들은 척 은은한 미소로 답할 필요도 없고, 생각나는 거 궁금한 거 뭐든 질문할 수도 있었다. 이 맛에 한인 민박을 여행객들이 찾는구나! 단박에 이해가 갔다. 또 편했던 건 같은 방을 사용하는 분들 또한 한국인이라는 것이었다. 옆 침대를 사용하는 모녀는 2주 동안 스페인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님은 씻으러 가는 나에게 말하셨다.


카사밀라에서 찍은 화장실


“문 두드리면 열어줄게요!”


다른 숙소에서는 샤워하러 갈 때 혹은 외출할 때 방키를 놓고 가서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문만 두드리면 열어주신다니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건 조식이었다. 식사하는 소리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었다. 심지어 밥과 국, 반찬을 담고 있었다. 평소엔 아침을 먹지 않지만, 한식 병 말기 환자인 나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미리 알았다면 바르셀로나에서 묵는 일주일을 모두 이곳으로 예약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밥을 먹다 앞 테이블에 앉아계신 우리 아빠 또래의 어른 분들이 보였다. 밥을 크게 떠서 국에 말아 드시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한국에서 오래 살아간 만큼 해외를 떠나도 그 익숙함이 더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20대 초반엔 장기 해외여행을 한다고 해서 한국이나 한식을 이토록 그리워하지 않았는데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바뀌다니. 시간이 갈수록 해외에서 한인 민박을 찾는 경우가 더 많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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