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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터 Feb 02. 2024

KTX타고 저렴하게 여행하는 법

내일로 두번째 이야기로 다녀온 포항 1

4개월 만에 배낭을 어깨에 멨다. 두꺼운 겨울 옷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광명 KTX역까지 가는 버스도 KTX내부도 사람은 별로 없었다. 첫 내일로 여행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16년 8월의 어느 날 기차여행을 가야겠다고 결정한 건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월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쩐지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에야 여행이 일상이 되어 국내 해외 구분 할 것 없이 가방 하나만 가지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지만 그때는 달랐다. 여행을 간다는 것도 어색한 내게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건 두려운 감정이 앞서는 일이었다. 또 가난한 20대 초반 자취생에게 금전적 여유도 없으니 여행이란 단어가 삶과 가까워질 틈이 없었다. 


그 당시엔 내일로 기차여행이 유행이었다. 만 25세 미만이라면 7일간 자유롭게 기차를 탈 수 있는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자유석과 입석 전용이기에 젊은 이들이 커다란 짐을 옆에 두고 바닥에 앉아 있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운이 좋으면 자유칸에 앉아서 갈 수도 있었으니 가진 돈은 적고 낭만이 가득한 청년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일로 여행 후기만 찾아보던 내가 문득 떠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젊은 시절에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포항 구룡포


여수로 시작한 여행은 3일 만에 순천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드라마 세트장에서 교복을 입고 춤을 추는 무리를 보고 놀라서 뒷걸음치다가 꽈당 넘어져서 발목 인대가 늘어났다. 상태가 심각한 줄 모르고 그 상태로 부산까지 갔다가 결국 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서울역으로 돌아온 것이 짧은 여행의 전부였다. 부산에서 다친 몸으로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까지 돌아오는 건 정말 지옥과도 다름없었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내일로 여행은 병원신세를 지며 마무리되었다. 


23년 내일로 여행 티켓이 연령이 확대되어 다시 판매되기 시작했다. ‘내일로 두 번째 이야기’는 연령 제한도 없었다. 만 29세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을 뿐이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플이 발달하면서 자유석과 입석으로 제한되던 티켓이 미리 지정석까지 예매를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내일로 여행을 다녀온 지 7년이 지났음에도 만 29세를 넘지 않아서 더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예약할 수 있었다. 7년간 쌓아둔 여행 내공으로 1시간 만에 기차 티켓 구매와 숙소 예약까지 마쳤다. 


노인과 바다 같은 포항 풍경


포항역으로 가는 KTX 열차 안에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틀어 놓고 미리 사온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배가 부르니 영화를 본 지 1시간 만에 잠이 솔솔 오기 시작했다. 영화를 끄고 노래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2시간 30분 만에 포항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나와 숙소까지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10분쯤 기다리니 9000번 버스가 왔고 기사님에게 물었다. 


"포항 여객선 터미널역 가나요?"

"네~ 타세요~"


경쾌하고 친절한 기사님의 목소리에 들뜬 기분으로 버스에 올랐다. 무사히 숙소까지 도착해서 체크인도 하고 숙소의 내부 사진도 열심히 찍으니 피곤이 몰려왔다. 숙소 테라스에서 영일대 해수욕장이 보였지만 밖으로 나갈 힘이 없었다.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 끼어서 곧 비가 쏟아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결국 관광을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와서 먹고 기차에서 보던 영화를 마저 봤다. 그마저도 다 보지 못하고 중간에 잠들어 버렸다. 일찍 잠든 덕분에 7시 반쯤에 눈이 절로 떠졌다. 커튼을 치니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여행하면서 일출보기 오랜 버킷 리스트였지만 혼자 여행할 땐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엉겁결에 이루어 내니 기뻤다. 여행에서 처음 본 풍경이 해가 떠오르는 장면이라니 이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을 것 같았다. 


포항 구룡포에서


혼자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나에게 주변에서는 이렇게 묻곤 했다. 


“혼자 여행하면 무섭지 않아?”


그 대답엔 항상 이렇게 답했다.


“무섭긴 뭐가 무서워. 좋기만 한데!”


하지만 혼자서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던 때를 떠올리니 두려웠던 마음이 컸다는 게 기억났다. 심지어 첫 여행에서 다리까지 크게 다쳐버렸으니 두려운 마음이 더 커질 법도 한데 그 후 여행이 일상이 된 삶을 살게 되버렸다. 어쩌면 그때 다쳤음에도 혼자의 힘으로 서울까지 무사히 돌아갔다는 경험이 나를 여행가로 만들지 않았을까. 여수의 바다를 어떠한 대화 없이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하며 조용히 즐기던 순간, 여행지와 숙소를 온전히 나만을 위해 고르던 순간,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약국을 다녀온 순간, 기차 안에서 다친 다리의 고통으로 터져나토오던 눈물을 참아내던 순간. 그것들을 오롯이 견뎌냈기에 여행 중 어떠한 어려움이 생겨도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의 두 번째 기차여행 포항에서의 아침이 밝아왔다. 



23.12.13

포항 숙소에서 일출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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