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의 1주년을 기념하며 써 내려가는 나의 회의감에 대하여
1년 차가 되었다. 정규직으로는 첫 직장이지만, 그전까지 사회경험이 전무하진 않았다. 전공과 관련된 여러 단기 프로그램이나 업계에서 일을 이어왔고, 휴학하고 재직했던 업계 역시 내 성향과 잘 맞는 것 같아 졸업 후 복지가 더 나아 보이는 동종업계를 선택했다. 그때 당시 내가 회사를 선택했던 기준은 간단했다.
1. 최대한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곳
2. 워라밸이 보장되는 곳
작년 스물다섯, 이미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거의 독립한 상태였고 코로나 확산으로 졸업여행을 취소하고 경제적 안정감을 확보하는데 마음이 급급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처럼 더 오랜 시간 인내하고 준비하여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은 그 당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도 없었고 시간과 돈만 낭비하며 나이를 헛먹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여러 청년지원정책에 참여할 수 있는 중소기업 중, 다른 경험을 병행할 수 있을 만큼 업무강도가 강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이 칼 같은 업종에 근무하는 것이었다.
워라밸을 추구했던 이유
사실 전 직장에서도 나이에 걸맞지 않은 좋은 제안을 받았다. 휴학하는 동안만 근무하려 했으나 적성에 꽤 맞는 것 같아 승진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래서 복학하고 나서도 한 학기 동안 병행했지만 막 학기만큼은 도저히 병행할 수 없었다. 아니 병행할 수는 있었으나, 회사에서 요구하는 업무를 같이 하려니 정말 졸업장만 딸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의 업무를 따라가다 보면 인재가 될 것 같았지만, 그 회사 안에서의 인재만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더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보고 그중에 최선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래서 정말 인생 멘토처럼 믿고 따랐던 상사분께 고심 끝 말씀드렸다. 이 일에 애착이 있지만, 제가 지금 하고 싶은 공부들을 놓치면 나중에 정말 후회할 것 같다고. 그렇게 전 직장에서의 경력은 1년 3개월에서 그치게 되었다.
현 직장과 전 직장의 비교
전 직장이 현재 직장을 고르는 기준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지금 비교해보니 전과 현의 특성이 정반대이다. 전 직장에서의 단점(안정성, 워라밸, 복지)이 현 직장에서는 메꿔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으로 인해서 느껴지는 단점들이 있었다. 가장 큰 단점은 내가 지금 이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예상만큼 그렇게 업무강도가 약하지도 않아 나의 작고 소중한 급여가 점점 억울하게 느껴졌다는 것이었다.
전 직장은 나의 의지만큼 더 벌 수 있는 곳이었다. 업무가 힘든 만큼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이 있었고, 조직문화가 직원들 간의 성장을 부추기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이곳은 반대다. 직원 교육을 간섭이라고 생각하는지 시간낭비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각자의 업무가 너무 바빠서인지 아쉬울 만큼 일을 가르쳐주지 않았다(물론 그만큼 자율성은 더 크다). 나는 내 시간을 쏟은 만큼 월급뿐 아니라 가치 있는 경험을 얻고 싶었는데, 1년 동안 이곳에서 힘들게 일하며 얻은 것이 무엇일까 돌아보았을 때 남은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이 재발하다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은 대학교 3학년 때였다. 과제 때문에 MMPI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로 인해 나는 자살 방지 서약서를 작성하도록 권유받았다. 하지만 결국은 작성하지 않았는데, 나는 별 일 없다 생각하는데 상담사는 어떤 큰일이 있는데 내가 숨기고 있는 것마냥 나를 취조했기 때문이다(나중에 저런 상담사는 되지 말아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서약서를 작성하고 심리상담을 시작하는 것을 권유받았지만, 그 분과의 상담이 싫어 서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그 이후의 상담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때는 어떻게 저떻게 살아가다 보니 자연스레 나아졌고(치유된 건지 숨겨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근 1년은 가장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가장 최근에는 가장 괜찮지 않았다. 코로나와 함께였던, 그리고 여러 일로 정신없던 1년을 되돌아보니 소위 말하는 '현타'가 왔다. 바쁨의 중간에 있을 때는 정작 모르다가, 어느 정도 그 바쁨을 지나고 나니 미뤄두었던 피로도가 한 번에 밀려왔고 그것은 회의감으로 변해있었다.
정식 검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요즘 나의 정신건강이 악화되었음을 느꼈다. 잠을 설치는 것, 원래도 늦게 자는 편이었지만 이젠 아예 밤낮이 바뀐 것, 끊임없이 무언가를 걱정하는 나의 뇌, 크게 울어버리면 나아지겠지 했지만 며칠을 내리 울어대도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시도 때도 없이 차오르는 눈물. 혼자 살면 이런 날이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찾아온다. 하지만 그 전엔 하루, 길면 이틀이면 괜찮아졌는데 최근은 이런 우울감이 며칠이 지나도 떠나지 않았다. 계속 똑같으니 삶이 괴롭다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인생이라는 경기에서 이미 져버린 것 같아서, 이 경기를 빨리 스스로 오버시켜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결심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 특히 환경적 변화. 다시 찾아온 우울증을 감지하기 전까지는 현 직장에 재직하는 기간이 길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곳에서의 10년 뒤 내 모습이 마음에 들 것 같지 않았다. 쌓여가는 시간만큼 가치 있는 경험을 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늙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갑갑했다. 하지만 입사 초반 최소 3년은 있자 다짐했고, 참여 중인 청년지원정책도 있어 당장 사직서를 내밀 수 없었다. 그래서 2년만 더 있자 생각했다. 다행히 야근이나 초과 업무는 없으니까, 하고 싶은 공부를 따로 챙기며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을 몰색 해보자 다짐했다.
Z세대, 90년대생, 요즘 것들
사람 사는 거 다 그래
나도 안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이런 절망감 속에서 매일을 부은 눈으로 출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직장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Z세대임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일이란, 돈을 버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3분의 1을 투자하는 것인 만큼 가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그리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란 나의 성장을 돕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 상사가 배울 점이 없다면, 급여를 얼마나 인상해주든 다음 달부터 출근하지 않겠다 이야기할 것이다.
나와 같은 이유로 이직이나 퇴사를 준비하는 20대가 많은 것 같다. 요즘 것들이라 불리는 억울한 입장에서, 요즘 것들이 왜 끈기 있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지를 못하는지를 대변해보았다. "요즘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만 보려 한다"던 상사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들은 어쩌면 당장 눈앞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멀리 봤을 때 이곳에서의 자신이 비전이 없어 함께 하지 않기를 택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도 역시 안정감을 느낄 수 있고 이곳이 마지막 회사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취업 또는 이직을 준비한다. 하지만 안정감보다도 내가 이곳에서 성장할 수 없겠구나 하는 회의감이 더 커버리게 되면 당장의 안정감을 포기해서라도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을 떠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