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서울에서 일하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선망하던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막연히 '서울에서 일하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은 대학생 때 휴학하고 근무하던 사교육 업체에서 본사로 세미나에 참여했을 때다. 운이 좋게도 사업이 확장하던 경험을 했고, 안산에 위치하던 본사는 강남 롯데타워 초고층으로 이사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사는 도시, 그 안에서도 높은 곳, 그곳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것에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그래서 본사의 부서로 지원을 희망했지만, 당시 속해있던 부서와 본사 모두 나를 원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나는 복학을 하고, 학업에 더 집중하며 다른 회사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 아래 그 회사는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나는 여의도 초고층 빌딩에 이직해있더라. 그래서 좋냐 물어보면, 좋다. 통유리 넘어 노을이 질 때 들어오는 햇살이 좋고, 일하다 한 숨 돌리며 고개 돌린 창문 너머로 반짝이는 야경이 예쁘다. 코앞이 한강 공원이라, 사람들이 산책하고 자전거를 유유히 타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그것은 출퇴근 편도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거리도 감내할 수 있게 하는, 감내도 아닌 별 생각도 들지 않게 만드는 환경이었다.
사실 출퇴근길이 많이 걱정이었는데, 운전을 지겹도록 하다가 지하철을 타니 책 읽을 시간이 나서 너무 좋더라. 운전을 하면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생각이 종종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 지하철 타며 버스 타며 책 읽다 풍경 보고, 책 읽다 멍 때리니 정신 건강이 좋아지는 느낌이다. 누군가는 '네가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래.'라고 말할 수 있다. 인정. 더 다녀보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내가 긍정적인 생각을 습관처럼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별 생각이 안 드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지금 너무 좋다.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나는 이직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배울 것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회사에서는 채용 공고부터 인재를 신경 쓴다는 느낌이 강했기에, 그리고 최근 급격한 성장을 경험 중인 회사기에, 배울 것이 많을 것이라 느꼈다.
참고로 대기업은 내가 안 간 것이 아니라, 못 간 것이다. 나에겐 대기업이라는 한 가지 목표를 위해 긴 시간, 큰 비용을 들일 여유, 자신감이 없었다. 어떤 특별한 열정을 가지고 굳이 스타트업에 지원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그렇게 바래서 들어온 회사인데, 진짜 배울 점이 많더라. 직원들이 업무 효율화를 위해 어떤 툴을 사용할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할지 수시로 회의하며 모든 것은 빠르게 변해갔다. 고작 내가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안되었는데도.
또한 그저 '이런 미천한 저를 뽑아주셔 감사합니다.'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었다(일은 일대로 열심히 하면서). 일단 나는 회사에 감사한 입장이라 관망 중이긴 하지만. 그래서 꼰대 문화? 당연히 없다. 수평적인 구조로 모두가 모두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며 존중하며 대화한다.
이렇게 말하면 스타트업에 환상을 심어주는 것 같은데, 내가 속한 기업은 사실 완전 스타트업이라 부르긴 애매할 정도로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정도 되었다. 그만큼 이미 나름 안정적인 궤도로 진입한 상태이다. 추진하고 있는 브랜드가 현재 명칭으로 론칭한지는 1-2년밖에 되지 않아, 회사는 나름 스타트업이라 주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 회사가 가치로 삼고 있는 부분, 그리고 시장에서 차지하려는 위치를 고려했을 때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나 자신도 강하게 느끼기에, 불안감이나 흔들림 없이 재미있게 일을 배우는 중이다.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습관
그 두 가지는 운동과 독서. 사실 출퇴근 길에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되면서, 운동을 끊으면 다닐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출퇴근 시간이 긴 만큼 운동을 더 바라게 되었고, 아 몰라 일단 끊으면 다니겠지 심정으로 회원권 끊어버리니 진짜 주에 2-3번은 꾸역꾸역 운동을 가더라.
나는 전 회사에서부터 출근을 한두 시간 전에 하는 습관을 가졌다. 여유 없게 출근하는 내 모습이 싫고, 조금이라도 내 시간을 보내다 일을 하러 가야 내 하루가 덜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한 시간 전에는 꼭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 출근을 한다. 그래서 지금도 운동을 가기로 한 날은 두 시간 전, 운동을 가지 않기로 한 날은 한 시간 전에 회사 건물 카페에 도착해, 여유롭게 아점을 먹고 할 일을 하고 화장을 대강 한 뒤, 출입증을 찍고 사무실로 올라간다. 그렇게 내 시간을 내가 주도하고 있다 생각이 들 때 정말 행복하다 느낀다.
출근한 지 정말 얼마 안 되었던 때는, 온몸을 긴장감에 휩싼 채 퇴근길 한 시간 반을 거쳐, 샤워하자마자 침대에서 곯아떨어졌는데, 어느새 오늘 밤처럼 야식으로 비빔면까지 먹고 무언갈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내 하루는 전보다 밀도 있고, 나는 오늘도 생각한 대로 살아간다. 생각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하루여서 오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
추가로 나는 현재 실무를 재미있게 배우고 있지만, 직무에 백 프로 만족하진 않아서(원래 인사 직무로 이직하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고, 하지만 왠지 이 회사의 인사팀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업무보단 내 업무가 더 재밌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나중에 인사 커리어를 쌓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노무사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렇게 지내는데도, 시간이 조금 남는 것 같고, 무언가 또 공부하고 싶다. 솔직히 2차 합격까진 안 바라고, 내년에 1차 합격을 목표로 다시 또 도전해 볼 생각이다. 올해 1차 불합 하고 법만 떠올리면 헛구역질 올라올 정도로 트라우마였는데, 그랬기에 한 번 더 도전하는 것이 나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래 놓고 또 내년 5월 되면 왜 또 공부하겠다고 나댔냐며 후회하고 힘들어하겠지. 몰라, 내년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파이팅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