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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리 Sep 28. 2020

네? '끼리끼리는 만난다는 말'이 진짜라고요?

하마터면 상담 공부하다 섭섭해질 뻔했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대학원에서 보웬의 가족 이론을 공부하던 중 흥미로운 문장을 발견했다. 


 ‘보웬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분화(즉, 자신의 원가족과 비슷하게 융합된) 상대를 배우자로 선택한다고 하였다. … (중략) … 각 배우자는 자신의 원가족에서 겪은 경험을 서로에게 전이함으로써 상대가 아주 잘 맞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 『가족치료의 이해(2015), 학지사』 중 - 



‘분화 수준’이란 사고와 감정을 잘 분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분화 수준이 높은 사람은 사고와 감정이 균형을 이루어 정서적으로 예민하더라도 감정적인 충동을 자제할 수 있으며 객관성을 가진다. 타인과 차별되는 자신만의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갈등과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인내심이 있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충 읽어봐도 일단 내 분화 수준이 그리 높지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근데 잠깐... 뭐? 배우자를 고를 때 무의식적으로 나랑 비슷한 분화 수준에 끌리게 된다고? 심히 당황스러웠다. ‘말도 안 돼! 내 남편은 나랑 다르다고!’라며 속으로 되 내었지만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남편이 얼른 퇴근해 오기를 기다렸다. 내가 본 남편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했으며 자신만의 소신으로 살아가는 남자다. 그런 남자를 고르고 골랐기에 믿어 의심치 않았다. 퇴근 후 씻고 온 남편을 기어코 앉혔다. 당최 이건 무엇이냐며 저녁을 준비하려는 남편은 ‘거두절미하고 이 테스트에 말없이 참여해준다면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꼬임에 쉽게 넘어갔다. 남편이 연필을 내려놓자마자 나는 항목별 점수를 빠르게 더했다. 두둥! 결과가 나왔다.


 남편의 분화 척도는 100점 중 75점이었다. 매우 높은 것은 아니지만 높은 편에 속한다. 사실 처음에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다. 내가 본 남편은 90점대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었다. 75점이면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75~100점 구간이 ‘가장 높은 분화 척도’ 수준에 해당되니 남편은 턱걸이로 들어간 셈이다. 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마음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반면, 나는 50점 언저리였다. 이 구간에 해당하는 사람은 안정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가 있으며 갈등을 회피한다고 한다. 타인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며 의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고 한다.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찔리는 말이 꽤 많다. 


 이론을 읽다 보니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보웬 어르신께 화가 났다. 분화수준이 높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잘 기능하는 사람’이었고 낮은 사람은 관계 속에서 역기능을 보이는 사람으로 부정적인 기술이 주를 이루었다. 분화수준이 낮은 것도 서러운데 이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도 무엇을 해야 분화 수준이 높아지는지, 혹은 그런 역기능도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상담기법 외엔 제대로 기술 되어있지 않았다. (논문을 찾아보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대학 서적에서는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 


 분화수준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높은 분화수준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는 것인데 그마저도 유부녀인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물론, 남편은 나보다 25점이나 높은 분화수준인 것에 감사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허망한 것은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부부의 평균 분화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분화수준은 ‘대물림’ 된다는 것이다. 자녀만큼은 물려주고 싶지 않은 분화수준이거늘 이론에 따르면 이것이 불가능했다.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여간해선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지 않는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교수님, 그럼 분화수준이 낮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분화수준이 낮더라도 행복해질 수 있어요..?” 


 “허허....그럼요. 분화수준이 낮든 높든 행복할 수 있습니다. 분화수준이 낮은 사람이 만났다 하더라도 의사소통방식에 따라 충분히 잘 기능하는 부부, 가족관계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렇다. 의.사.소.통.방.식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분화가 낮은 나는 불안과 회피, 의존하는 경향이 있을 진 몰라도 이를 배우자와 현명하게 표현하고 소통한다면 충분히 건강한 가족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같은 교수님의 말씀은 분화척도로 난도질당한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다. 


 평소 대화법을 의식적으로 수련하는 나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이것이 내 숙명임을 한번 더 느끼며 더 최선을 다해 받아들이기로 했다.


 분명한 것은 나는 분화수준이 낮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보웬 이론을 공부하며 상심한 이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래보며 글을 마무리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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