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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nx May 18. 2023

국밥게임

나에겐 초중학교를 같이 다닌 여섯 명의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때는 갈라졌지만 그 후로 성인이 돼서도 계속 만나는 사이였다. 어떤 사연으로 인해 소원한 사이가 된 건 아니지만, 다들 나이가 먹고 가정을 꾸리고 살다 보니 미스틱 리버의 그들처럼 '예전엔 친한 사이였지'가 되어버렸다.

한참 자주 만나던 시절, 지금은 없어진 단성사 맞은편, 피카디리 극장 옆 국밥집에 간 일이 있었다. 누구의 제안인지는 모르겠지만, 허름한 국밥집에 우리는 두런두런 앉아있었다. 국밥이 한 그릇씩 차례로 나왔고 왁자지껄 떠들던 우리는 반주로 마실 소주를 시키고 국밥을 먹었다.

열심히 국밥을 먹고 있는데 고니프(이하 별명)가 벌써 다 먹었는지 먼저 일어나더니 같은 테이블에 앉은 콧구녕에게 등을 두드리며 "잘 먹었어'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다들 '이게 뭐지'하고 있는 순간 역시 순발력 좋은 찹쌀이 일어나며 콧구녕에게 2차 공격을 가했다.

'잘 먹었어',

숫자를 세며 일어나는 눈치게임도 없던 시절, 우리들의 눈치게임 아니 국밥게임은 시작되었다. 나머지 네 명은 국밥을 떠먹으며 서로의 눈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혼자 장사하시던 주인아주머니의 동공은 흔들리고 있었다.

다음으로 콧구녕이 일어났고 그다음은 새우가 일어났다. 친구들 중 유일하게 반주를 곁들이던 주당인 나와 똥퍼는 먼저 나간 친구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자적하며 천천히 국밥을 먹고 있었다.

먼저 밖에 나간 친구들은 밖에서 낄낄대며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똥퍼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놈이 끝에 남아 밥값을 뒤집어쓸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자, 막잔'하며 내가 소주잔을 채워주니 이때다 싶었는지 잔을 홀짝비운 똥퍼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잘 먹었다'라고 하고는 나가버렸다.

새삼 당황한 기색의 주인아주머니. 나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국밥과 소주를 끝까지 먹었다. 밖에서는 웃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고 밖의 친구들이나 가게 안의 주인아주머니나 나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드디어 국밥과 소주잔을 비운 내가 물 한 모금으로 입가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의 친구들은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주인아주머니도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주머니에게 다가가는 순간, 주인아주머니는 가격을 말하려는 듯했고 나는 순간적으로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려니 아주머니는 당황해서 (그건 니들끼리 하는 얘기고 밥값은 내고 가야지 그냥 가면 나는 누구한테 국밥값을 받냐)는 표정을 보였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열고 나오는 나를 보고 친구들도 당황해서 모아놓은 국밥값을 아주머니에게 드리는 것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속담이 있다. 그 어린 시절, 그 속담을 몸소보여주며 일깨워준 그때 그 친구들에게 감사드리는 아침이다. 국밥 먹으러 가야지.

국밥만 먹는게 아나라 가끔은 가로수길에서 이런 것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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