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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Aug 26. 2024

너 프리다이빙 강사 생각 없니?

프리다이빙 일기 3

복직한 지 고작 한 달 남짓 지난 시기에, 그리고 회사가 중요한 감사로 바쁜 시기에 나는 대뜸 또 연차를 써버렸다. 바로 보홀 프리다이빙 투어를 가기 위함이었다.


나라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라서 꽤 오래 망설였다. 그렇지만 결국 이번 보홀 투어를 오기로 결심한 것은 여러 가지 우연과 의도와 운명이 작용했다. 우선, 이번 투어를 주관한 강사님은 길리에서 만난 동행 S의 스승님이다. S는 나에게 프리다이빙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이다. 내가 번아웃으로 휴직하고 발리한달살기를 하던 중 만난 S는 퇴사 후 프리다이빙 강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배 위에 앉아 바다를 보며 S는 말했었다. 여기에 이러고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고 뭐든 해도 행복할 거 같은데, 한국 가면 다시 남들과 똑같은 것을 쫓으며 살게 되겠죠.


S와 함께 한 스노클링 투어에서 나는 처음으로 구명조끼를 벗고 잠수해 보는 경험을 했다. 그 순간 느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압도되는 기분, 그걸 평생 잊지 못하리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만난 날은 S의 여행 마지막날이었고,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는 없었다. 그날 단 하루 시간을 함께 보낸 것뿐이지만, 헤어지기 전에 나는 S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내가 정말 프리다이버가 된다면 넌 내 인생을 바꾼 귀인이 되는 거야.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 S는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었고, 나는 프리다이버 자격증을 땄다. 돌이켜보면 때 길리에서 얻은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성취는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프리다이빙을 배운 거였다. 그러니 정말 S는 나에게 귀인인 셈이다.


이번 투어는 그 S의 스승님이 여는 투어이자, 프리다이빙 강사가 된 S가 보조강사로 참여하는 투어였다. 그래서 S의 인스타에서 홍보글을 보자마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복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연차를 쓰는 게 눈치 보여서 한참을 망설였지만, 한국의 시장 바닥 같은 좁은 잠수풀을 보자 넓은 바다가 미친 듯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S에게 대뜸 연락해서 투어에 참가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렇게 오게 된 나의 첫 프리다이빙 투어는 사실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다 같이 노는 분위기가 아니라 마지막날까지 데면데면한 상태로 투어가 끝났다. 물론 나는 애초에 프리다이빙이 목적이었으니 프리다이빙만 실컷 할 수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프리다이빙마저도 많이 하지 못하는 상황의 연속이어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상황에 최대한 많이, 그리고 깊게 잠수하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고래상어를 보든, 사진을 찍든, 배에서 쉬든 관심 없이 나는 나대로 다이빙 연습을 하고 바닷속을 구경했다. 항상 물속에 가장 오래 있는 건 나였다. 그러고도 아쉬워서 실수로 귀국 비행기를 잘못 예매해서 나 혼자 남겨지게 된 일요일에도 또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했다.


투어의 마지막날 토요일,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갑자기 강사님이 나를 따로 불러내더니 대뜸 물으셨다.


너 회사 재밌니?


지금 같은 시기에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그 말에 나는 헛웃음을 치면서 당연히 도리질했다. 아뇨, 요즘 퇴사하고 싶어서 아주 죽겄는데요. 그러자 강사님이 바로 본론을 꺼내셨다.


너 혹시 프리다이빙 강사 할 생각 없니?



!? 저는 잘 못하는데요? 나는 기겁했지만, 강사님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 말하셨다. 너처럼 물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고, 그런 사람은 정말 강사 하면 즐겁게 잘할 거야. 내가 보기에 넌 천직이야. 그렇게 물 안 무서워하고 물속에서 안 지치는 것도 재능이야.


강사님이 나를 눈여겨보신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날도 픽업 차량이 오기 직전까지 물속에 남아있던 것은 나와 강사님 둘이었다. 강사님이 입으로 동그란 도넛 모양의 공기방울을 발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처음이라 내 도넛은 금방 흩어져버렸지만, 거기에 재미 들린 나는 숙소 돌아가자마자 내내 수영장에서 연습하다가 결국 완벽한 도넛을 만들어서 강사님께 자랑했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이 열심이라고 감탄했다. 그러고 있으니 길리에서 매일매일 수영장에 거꾸로 매달려서 이퀄라이징을 연습했던 때가 떠올랐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건 나한테 드문 일이었다. 프리다이빙이 그 드문 것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강사님은 그러면서 자기한테 배워서 나중에 같이 일하자고 권유하셨다. 그 뒤로 몇 마디 더 현실적인 얘기들을 주고받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저녁식사 자리에 합류했다. 그렇지만 그분이 던진 말들 때문에 마음 한 구석이 내내 일렁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바다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내가 바라는 삶이 사람들을 대하면서 보람을 얻는 삶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 물에 들어가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삶은 나의 이상 그 자체일 것만 같았다.


저녁을 먹고는 또래 몇 명과 칵테일을 마셨다. 그중 한 친구는 최근 그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최근 내 주변에는 이렇게 자신의 꿈을 좇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뭐냐고 물어본 내 질문에, 그 친구는 가까운 친구의 죽음이 계기였다고 대답했다. 언니, 저는 그 친구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하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저녁에 강사님과 있었던 일을 얘기하는 내게 되물었다.


그런데 왜 안 해요? 좋아하고, 재능 있는데, 왜…?



흔히들 재능은 숨길 수 없다고들 한다. 자신이 모르더라도 주변에서 먼저 알아본다고 한다. 내게도 그런 것들이 몇 개 있었고, 그중에는 나 역시 진정 사랑하는 것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재능 있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 하는데,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있는 건 진정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 외에 업을 선택하는데 뭐가 더 필요할까? 입밖에 내진 않았지만, 온갖 이유들이 마구마구 머릿속에 떠올랐다. 언제 또 코로나 같은 사태가 생길지 모르고, 내가 언제까지 신체가 건강할지 모르고, 프리랜서가 되면 혼자서 모든 것을 챙겨야 하는 게 걱정되고, 일과 삶의 분리가 없을 거고,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고객으로 대할까 봐 무섭고…, 이런 생각들 끝에 문득 깨닫는다. 아, 이래서 내가 지금 다니는 이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는 거구나. 그리고 또 이어지는 지배적인 생각.


… 무엇보다, 내가 정말 이 분야에서 프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있는지 모르겠어.


사실 강사님 말고도 내게 대단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많았다. 프리다이빙에 대한 열정도 그렇지만, 망고를 먹기 위해서 알러지 약 처방을 비롯한 온갖 준비물을 챙겨 오고, 하루종일 다이빙하고 돌아와서는 또 러닝을 하겠다고 밖에 나가는 나를 보고 한 친구는 내가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도 나는 일단 부정했다. 아냐, 네가 몰라서 그래. 나는 사실 뭐든 대충 해. 내가 좋아하는 것만 열심히 할 뿐이야.


항상 그런 식이었다. 누군가가 나한테 해주는 칭찬에 늘 내가 반사적으로 하는 말이 떠올랐다.


에이, 아니에요. 이 정도는 뭐… 아무것도 아니죠.


그렇게, 나는 늘 나의 재능을 부정할 뿐이었다.

왜?


결국 언젠가 내가 가진 재능이 보잘것없다는 걸 깨닫고 실망할까 봐 무서워서, 기대하지 않으려고.


그때, 강사님이 또 급히 나를 찾아오셨다. 강사님은 대뜸 내가 다음날 예약한 투어를 취소하라고 하셨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자기랑 친한 다이빙 강사도 내일 나랑 같은 곳을 간다며 차라리 거기를 따라가서 배우라고 하셨다. 솔깃했지만, 이미 늦은 밤이라 취소는 불가능했다. 고민하는 나를 보고 강사님이 지갑을 꺼내셨다. 너 투어 비용 내가 내줄 테니까 그냥 예약해 둔 곳 버리고 여기 따라가. …헐!


감사하다고 넙죽 받고 돌아섰지만 내 머릿속에는 의구심이 가득했다. 이것은 나의 재능을 보고 투자해 준 것인가, 아니면 수강생 한 명 꼬드기기 위한 마케팅 비용인가. 그렇다면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 5만 원이었다. 나는 남의 호의에 쉽게 홀랑 넘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강사님은 고민해 보고 강사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으로 떠나셨다.


강사님은 아마 모르셨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당연히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나는 나대로 프리다이빙에 진심이었다. 다만, 나라는 사람이 애초에 큰 기대나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쉽사리 강사가 되겠다고 선언할 수가 없었다. 그게 나 자신에게 부담으로 다가올까 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지금 이 단계에서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일단 해봐야 한다. 조금씩 내가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과한 욕심 내지 않고, 한 단계씩 밟아가다 보면 내가 어느 정도의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 더 선명해질 것을 안다. 그래서 강사 할 거야? 물었을 때 망설인 것은 단지 아직 Advanced도 안 땄는데 내가 정말 강사가 될  수 있을그 미래를 정말 모르겠다는 의미였다. 강사 과정을 도전해 볼 건지 내 의지를 묻는다면, 당연히 Why not?이었다.


길리에서 처음 프리다이빙을 도전하면서부터 나는 재능이 있다면 강사 될 거라는 말을 농담 섞어 내뱉었다. 그 말이 자꾸 변주되어서 내 내면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들려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느끼는 건 확실히, 나는 결국 대단히 과감한 도전은 하지 못하고 계속 살짝살짝 건드려보는 정도의 사람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이런 마음가짐으로 뭐를 이뤄내려나 싶긴 하지만, 못 이뤄내도 상관없다. 결국 지금의 경험들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그저 재밌게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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