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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Sep 06. 2024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복직 두 달째

시간이 진짜 빠르다. 내가 복직한 지도 두 달을 꽉 채워 간다.


내가 복직하자마자 바통을 이어받듯 휴직하셨던 분이 그새 돌아오셨다. 돌아오는 게 무섭다고 하시며 떠나신 분이었다. 자기가 돌아오는 한 달 뒤에는 환경이 바뀌든 상황이 바뀌든 사람이 바뀌든 내가 좀 더 잘 지내고 있길 바란다고 하셨었다. 그분이 돌아오셨고,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이 나는 그분을 맞았다.


복직한 첫 주에는 각종 장비 계정이나 권한이 초기화되어서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 그분이 멀뚱히 자리만 지키고 앉아있는 게 보여서 커피를 사드리겠노라 불렀다. 마침 내게 할 말이 많았다는 그분이 반가워하셨다.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서 근황을 주고받다가 우리의 대화는 본론으로 접어들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복직 후 나는 어떤 시도들을 하고 있는가? 나는 여차저차 내가 휴직 중에 했던 생각들과 회사에서 면담했던 얘기들을 공유했다.


우리의 상황은 병가를 썼다는 것만 같고, 사실 그 외엔 완전히 달랐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걸 깨닫고는 좀 더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서 업무를 바꾸려고 한다. 반면 그분은 우선 단순히 이 부서 탈출하는 게 목표라고 하셨다. 이 부서의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냐는 말에, 그분은 대답하셨다. “저는 파트장님이 싫어요.”


그것마저 나와 완전 반대였다. 나는 오히려 파트장님이 마음에 걸려서 끝까지 휴직을 미뤘기 때문이다. 웃긴 표현이지만, 파트장님은 내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세 달의 휴직 이후 돌아와서 나는 미묘하게 달라진 부서 분위기를 느꼈다. 파트장님의 말투가 묘하게 부드러워졌고, 그에 반해 사람들의 태도는 파트장님에게 더욱 적대적이었다. 내가 휴직하기 전에다소 강압적인 파트장님의 화법에 우리 모두 불만을 느끼고 있긴 했다. 파트장님은 당근보다 채찍을 쓰는 리더였다. 내게 번아웃이 온 것도 나는 당근이 필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파트장님이 밉거나 싫않았다. 그냥 우리를 다루는 전략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파트장님도 리더 역할을 하는 게 서투르신 거고,  우리가 서로 소통을 하면서 점차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파트장님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계시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합리적인 분이셨다.


그런데 휴직 후 돌아오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원래는 다들 아쉬운 점은 있지만 파트장님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엔 대체로 동의했다. 그런데 돌아오니 모두가 파트장님을 싫어하고 있었다. 원래 부서 시니어들과 함께 드시던 점심도, 왜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혼자 드신다. 그렇게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와중에 급기야는 파트장님과 관계가 아예 틀어져서 병가를 쓰는 사람까지 나온 것이다.


나는 이 상황이 답답했다. 크게 보면 회사 자체도 그렇지만, 하나의 부서는 사실 하나의 팀플이다. 부서 업무를 공동의 목표라고 생각하고 서로 돕는 게 이상적이다. 부서장은 공동의 업무를 개인적으로 나누어주는 팀플 리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파악한 부서 분위기는 ‘vs 파트장님’이었다. 파트장님이 업무 지시를 내리면 사람들은 일단 반감부터 가졌다. 나는 그게 답답했다. 강압적이든 뭐든 간에, 일단 파트장님은 업무를 시켜야 하는 입장이지 않나? 꼭 해야만 하는 긴급 업무가 생겼다면,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나? 파트장님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우리의 리더이자 우리와 한편이 되어야 하는 사람인데, 왜 우리는 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못하지…?


아마 내가 파트장님께 유독 우호적인 것은 내 성향도 있지만, 경력직이신 파트장님과 신입이었던 내가 입사동기였기에 쌓인 각별함, 그리고 파트장님이 유독 정신적으로 힘들어했던 나를 배려해주신데 대한 감사함도 클 것이다. 나의 파트장님만 좋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카페에서 얘기를 나누면서 그분은 파트장님과 대놓고 직장 내 괴롭힘일 수도 있는 갈등을 겪었다고 하셨다. 그분이 병가를 쓰기 전에 파트장님이 그분에게 연락하셨다고 했다. 일이 힘든 건지, 사과를 받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냥 파트장님 본인이 싫은 건지 물어보셨다고. 그에 그분은 그냥 파트장님이 싫은 거라고 말했다고 하셨다. 인사팀에도, 우리 부서 사람들 모두가 파트장님을 싫어하고 있다고 얘기하셨단다. 그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날뻔했다.


그분과 얘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파트장님 말투가 부드러워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모두가 본인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가뜩이나 일이 많은 이 회사가 얼마나 더 외롭고 힘들까. 그 생각에 울렁이는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원인은 분명 파트장님에게 있다. 납득되지 않는 강압적인 업무 지시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부서원들에게 신뢰를 잃은 것이다. 그렇지만 그건 단지 모르셨던 거다. 그게 누군가를 싫어할 이유가 되는 건 너무 속상하다.


파트장님은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계실까. 점점 나빠지는 부서 분위기에 문제의식은 있으실까. 병가를 쓰겠다는 나에게 “생각을 많이 하면 불행해져”라고 말하셨던 것처럼, 그냥 생각을 안 하고 모든 것들을 흘려보내고 계실까. 생각을 안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차라리 끊임없이 생각을 해서 답을 찾아내버리자는 각오로 살고 있는 나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휴직하기 전, 나는 계속해서 병가 쓰는 날짜를 미뤘다. 망설이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뭐가 마음에 걸리는 거냐고 물어보셨었다. 나는 내가 놓고 갈 업무들과, 부서가 바쁜데 일단 휴직하고 쉬겠다는 게 회피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린다고 대답했었다. 결국 이게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은 되지 못할 거고, 정답은 사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하면서 인력을 늘려달라고 하거나 업무를 줄여달라고 촉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때 의사 선생님이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건 부서장들이 해야 할 일이에요. 소연씨는 자꾸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을 고민하고 있어요. 그게 문제예요. 그러면 본인만 힘들어요.”


생각할수록 답은 명확하다.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냥 부서를 이동하든지 해서, 이 스트레스 환경을 벗어나는 게 최선이다. 의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자꾸 그렇게 생각하려 하지만, 그러면 남을 사람들은… 그렇게 자꾸 파트장님의 외로운 뒷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걸 보면, 아직 생각이 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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