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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이 Nov 02. 2024

사주를 무시하다니, 제가 오만했군요!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건 없다



지인이 갑자기 사주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다. 대기하고 있던 병원 접수처에서 마침 내 이름이 호명된 순간이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척수반사처럼 답장했다. ‘저 사주 극혐해오’. 동시에, 아마 내 답장과 함께 작성 중이었을 메시지가 도착했다. ‘제가 요즘 사주가 재밌어서 엄청 공부하는 중이거든요’... 앗!


‘어마ㅓ’

‘앗’

‘죄송해요’

‘그러시군요…ㅋㅋㅋ’


곧바로 서로 머쓱함을 나타내는 감탄사들이 쏟아졌다.


평소 나와 사고방식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던 지인이었기에, 어쩌다 갑자기 사주에 관심이 생긴 것인지 궁금했다. 비과학적인 것을 믿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추가로 질문했다. 다소 사회성 떨어지는 질문이지만, 그런 질문이 통할 거라 믿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태어난 사주와 운명 사이의 연관관계를 과학적으로 납득하셨어요? 저 좀 납득시켜 주세요.’


그분은 대답하셨다. 자기도 원리를 납득한 게 아니라고. 단지 때때로 공학자에게는 본질보다 활용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에 사람들은 열역학에 대해 몰랐고, 에테르를 믿던 시절에도 천체의 움직임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근본원리를 모르더라도, 현상만을 파악해도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무도 일리가 있었다.


내가 사주를 믿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보기에 논리적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나는 혈액형 성격설도 믿지 않았다. 단순히 믿지 않는 걸 넘어서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걸 믿는 사람들을 무시했다. 그 사람들은 혈액형이 단순히 적혈구의 당단백질의 종류 차이라는 걸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나 자신에게 불쑥 의문이 들었다. 그럼 당단백질이 성격에 절대 영향을 안 미칠 거라고 너는 장담할 수 있어? 확신해?


현대 과학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새로 발견된 사실들로 과학 교과서 내용이 바뀌거나 인체에 무해하다고 믿고 써오던 물질들의 위험성이 나중에야 밝혀지는 경우는 최근에도 많다. 그동안 제로음료를 아무 거리낌 없이 마셔오고 있던 나도 대체당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줄이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 했다. 대체당이 장내 미생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을 줄은. 그럼 장내 미생물이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연구 결과가 뒷받침 해주지 않았다면 그 역시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듯,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내가 모르는 인과관계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렇다면, 사주와 운명은 정말 상관관계가 없을까?


나에게 사주는 종교 같은 거였다. 논리와 상관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것. 맹목적이기 위해서는 적당히 눈을 가릴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눈 가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를 그만 다니게 된 것도 성경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창조론보다 진화론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입학해 보니, 생명과학 분야에서 국내 가장 저명한 교수님들 중에도 기독교인이 있었다. 당연했다. 오히려 연구하면 할수록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논리를 무시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게 아니라, 논리가 우리가 인식하는 영역의 밖에서 설명될 거라는 논리적인 믿음을 가진 거였다.


사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지의 범위에서는 사주와 운명의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 사실 정말로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경향성조차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우리 조상들은 ‘개구리가 울면 비가 온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등의 속담을 관찰을 통해 얻어냈다. 개구리나 제비가 비를 오게 만든 게 아니다. 그 사이에는 당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을 테지만 상관관계가 있다. 그런데 설명이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아무렴 어떤가. 낮게 나는 제비를 보고 비 올 준비를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을. 이렇게 설명되지 않더라도 현상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도 있는 건데, 원리를 납득해야만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내 강박 때문에 활용하지 못한 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사주에 대해서도, 종교에 대해서도, 그 외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도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은 게 당연하다. 내가 납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틀렸다고 할 수 없다. 그간 내 기준으로만 세상을 보던 내가 참 오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만함은 받아들일 수 있는 많은 것을 놓치게 만든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다. 말 혈액형에 따라 성격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주가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한 번 공부해 보기로 했다. 결코 그분이 풀이해 준 내 사주가 잘 들어맞아서 그런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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