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근무시간을 거의 풀을 찍어서 욱하는 마음으로 힐링을 위해 떠난 제주도 여행. 여행 자체는 아주 평이했다. 애초에 혼자 여행이란 다이내믹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감정적 요동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니까. 혼자 보내는 시간은 대체로 평온하고 평화롭고 조금은 외롭고 따분했다. 맛있는 거 먹고, 카페 가고, 노을을 보고, 걷고. 혼자 여행을 하면 내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방식을 알게 되고, 나의 경우에는 그게 일상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일상에서도 여행에서처럼 좀 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써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오면 여행은 그 사람과 함께 쌓는 추억들로 가득 찬다. 혼자 여행을 오면, 그 여행지와 추억을 쌓는다. 그래서 별로 특별한 걸 하지 않았음에도 더 제주도가 애틋하고 좋아지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세상이 뒤흔들리는 일이 일어났다. 화요일, 무심코 본 사내 메신저에 그룹장님으로부터 메신저가 와있었다. ‘연차 중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금요일부터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돌아오셔서 인수인계 해주세요.’ 네???
사실 2024 하반기를 맞이하면서 내가 세운 목표가 몇 개 있었다. 첫 번째, 하프마라톤, 두 번째, 프리다이빙 LV3. 그리고 공공연하게 말은 못 했지만 나 혼자 속으로 생각한 세 번째, 부서이동. 나는 가능성 낮은 일은 입밖에 내지 않는 편이다. 앞 두 개는 내 의지만 있다면 가능하지만 세 번째는 내 의지로 안될 수도 있다. 그래서 주변에 말은 안 했고 나 자신한테도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정말, 복직 이후 지금까지 몇 개월 동안 부서이동 하려고 온갖 사람들과 면담을 했지만 결과는 늘 안 좋았고 나는 마음을 다잡고 지금 있는 부서에서 버틸 방법을 고민하던 참이었다. 파트장님과 내가 힘겨워하는 업무에 대해서 개인면담을 요청하였고, 업무 비중을 조절해 보자며 서로 으쌰으쌰 했던 게 바로 지난 주였는데. 갑자기 며칠 만에 그 모든 게 뒤바뀌어버렸다.
원하던 부서이동이 이루어졌다기에, 그 소식을 들은 순간 내 기분은 착잡하고 화가 났다. 내가 지금까지 가고 싶어서 노력했던 부서가 아니라 엉뚱한 부서였다. 부서 내 분위기가 험악하고 워라밸이 없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 부서에서 하는 주된 업무는 어떻게 인력을 더 효율적으로 갈아 넣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였다. 물론, 그동안의 업무가 적성에 안 맞아서 힘들었던 걸 생각하면 어쨌든 부서이동은 희소식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앞으로도 잘해보자고 말씀하시던 지난주의 파트장님이 먼저 떠올랐다. 파트장님께 어찌 된 영문이냐고 메신저를 드렸지만, 파트장님도 지금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토로하셨다. 저도, 너무 무력감을 느낍니다…….
회사에 무엇을 기대했을까. 나한테 미래를 기약했던 보직장들이 다 갑작스레 조직을 이동하고 그 어떤 미래도 기약할 수 없다는 걸 보면서, 그보다 더 맡은 게 적은 나의 이동은 그보다 더 갑작스럽고 뜬금없을 수 있다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으쌰으쌰 해보려고 하는데, 익숙해지고 정들라치면 갑자기 바꿔대는 조직도 아래에서 우리가 어떻게 안정적으로 근무를 하길 바라는 걸까. 나는 입사 이후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해왔었다. 언젠가 내가 부서를 옮기게 된다면 잘 준비해서 그 시간들을 잘 정리해서 정든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소속이 바뀌게 되어서 당장 사람들에게 내 업무를 던지고 떠나게 되었다. 제대로 인사도 못 나누고. 친한 동료들에게 소식을 전하니 다들 당황스러워했다. 회사는 원래 이렇게 매정한 곳인가? 그래, 우리 모두 알고 있었지.
그날 밤에는 또 뉴스에서 계엄이라는 믿기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세상을 디톡스 하며 평화롭고 쓸쓸한 여유를 즐기려 했던 내 여행은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 더 요란하고 격정적이었다. 내가 내 자리를 이탈하고 갑자기 제주도를 와버려서 세상에 난리가 난 건 아닐까, 괜히 오타쿠 같은 생각도 해보았다. 세상 일은 참 한 치 앞을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다. 분노가 훌륭한 동력이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분노하기에 지쳐서 그냥 한 발짝 물러서고 만다. 그래, 세상엔 원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게 당연하지. 다음 주부터는 또 어떤 일들이 생길지, 불안하면서도 그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생각을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