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인간> 외향인은 내향인의 구원자가 아니다.
저녁을 먹으며 넷플릭스로 일본 영화 한 편을 보는 중이다. 아직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서 전체 내용은 모르겠지만 무슨 내용인지 대충 훑어보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끌 생각으로 플레이를 눌렀는데 시작부터 “남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으면 남에게 상처를 줄 필요도, 상처 받은 남들로 인해 내가 상처 받을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는 남주인공의 독백에 무한한 공감을 느끼고 보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나오는 여주인공이 제발 아니길 바랬던 ‘머릿속이 꽃밭인 대책 없이 긍정적인 캐릭터’였던 게 문제다.
그녀는 남주인공에게 초면부터 외향인의 전형적인 행동 패턴인 [액티브 스킬]불쑥 다가가기, 반말하기, 옆자리에 앉아버리기 등을 시전함으로써 물리적, 정서적 영역을 멋대로 침범하는 극딜을 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모두가 진심으로 바라면 전쟁은 사라질 거야.”라는 무한 긍정적 헛소리로 크리티컬을 날려줌으로써 나로 하여금 끝내 뒷목을 잡게 만들고 말았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으로서 이런 “언제나 혼자였던 주인공에게 누군가가 밝은 미소로 다가와 마음을 열어버리고 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류의 진부한 클리셰로 대표되는 외향, 긍정 만능주의가 매우 불편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회의식은 그동안 스스로 내 타고난 기질이 마치 타인에 의해 치료받아야 하는 질병이라도 되는 양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의견을 따르고 흉내 내지 않고는 그룹에 합류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에게 끌리는지와 같이 지극히 사적이고 본능적인 일에 대해서 조차 당신은 스스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의 믿음을 모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룹에서 가장 지배적이거나 카리스마 있는 사람의 의견을 따를 겁니다. 말을 잘하는 것과 아이디어를 내는 것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죠. 전혀요.” - 수잔 케인(Susan Cain), <내향적인 사람들의 힘(The power of introverts)>, TED 강연, 2012 , 정소연 번역-
불쑥불쑥 다가오는 외향인들의 행동을 보고 말을 들어보면 이들은 자신들이 마치 나 같은 내향인들을 구제해줄 날개 달린 천사라도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무례가 아닌 친절이라 굳게 믿는 이유는 앞서 말한 진부한 클리셰를 반복하는, 인문학적으로 편협한(부들) 사상을 담은 드라마가 아주 많이 나와주시는 덕에 그들이 내향인을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지만 내심 누군가가 다가와 주길 바라는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멋대로 정의 내리기 때문일 거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나뿐만 아니라 아마 대다수의 내향인에게) 나와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지 않는 불특정 다수는 그저 파리나 모기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나는 모기장을 치고 모기향을 피우면서도 내심 모기가 날아와 날 물어뜯어주길 바라는 마조히스트가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나에게도 머릿속이 꽃밭인 페르소나가 있긴 하다. 그래, 이 녀석이 그동안 많은 것을 망쳐놓았지.
나도 외향형인 연인을 뒀던 경험이 있다. 늘 긍정적이고 판단이 빠르며 개방적이라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온 것만 같았고 내가 가지지 못했고 절대로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진 그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어떤 이는 외향적인 사람과 내향적인 사람이 서로 연인이 될 경우 상호보완관계가 될 수 있기에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기능적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의 얘기다. 연애란 단순히 외적인 행동만 맞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외향형 연인과 나 사이에는 죽어도 뛰어넘을 수 없는 어떤 벽 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상대방이 내가 불편해하는, 가령 모임에 데려가기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에게 맞출 수는 있다. 그러나 그는 내가 그러한 것들을 왜 불편해하는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저런 내용의 작품이 여태 지겹도록 양산되는 걸 보면 아직 사회가 외향적인 성향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물론 서로의 비슷한 면에 끌려서 연애에 성공하는 스토리는 많지만 주인공들이 내향적인 캐릭터일 경우 역시 “같은 찐따끼리 만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었습니다.”류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것 같다. 한마디로 아직도 내향적인 성향은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내향적인 기질은 타고난 뇌 구조와 신경의 영역인 것이지 ‘해결할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사연자님이 외부 자극에 쓸 수 있는 에너지에 ‘한계’가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사회 부적응자라면 직장을 다니는 일 자체도 거의 어렵습니다. 대인관계 상황에서 대체로 부적절한 반응을 하고요.” -이성찬, [<Doctor’s mail> 저는 사회 부적응자일까요?], 정신의학신문, 2021. 11. 29 -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따르면 외향인은 외부 세계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반면 내향인은 내면세계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한마디로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이 내향인들이 외향인들 보다 어딘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애플의 mac o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windows처럼 서로 운영체제가 다른 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외향인 입장에서 내향성이 일종의 결함으로 받아들여지듯 나로선 외향인들의 행동이 종종 공격으로 느껴지고 나아가 외향성 그 자체가 결함으로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아직 주류인 만큼 전자는 차별이지만 후자는 저항이 되는 법. 비주류 내향인으로서 권력(?)에 맞서 좀 더 완강한 투쟁을 하기 위해 이제부터 외향적 성향을 ‘머릿속이 꽃밭인 병’이라 부르고자 한다.
판데믹으로 인해 늘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향이 단점으로 작용하는 시대가 오고 말았다. 시대에 맞게 이제는 내향적 성향의 연인이 만나 관계에 시너지 효과를 내는 로맨스 영화가 주류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다가가도 끝까지 회피기를 시전하는 상대로 인해 머릿속이 꽃밭인 병이 치유되어 한층 배려심 깊고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신중하며 성숙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주인공의 성장 스토리를 그린 작품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마이너스 인간인 나는 오늘도 그런 세상을 꿈꾸며 조용히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