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youn Sue Jung(융이라고 읽어야 함)의 인스턴트 문화칼럼$
<산양 우유(산양유 아님)에 담긴 철학>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산양유의 장점은 우유에 함유된 A1 카제인 함량이 적어서 소화가 잘된다는 점이고 단점은 대신 특유의 향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고 비싸다는 것이다.
그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무려 우유와 산양유를 블랜드 한 제품을 소개합니다!! 산양유 향이 산양유 원액보다 덜하고 가격도 덜 비싸다고요!! 대신 산양유가 함유되어 있으니 산양유의 향이 여전히 나긴 나며 소화도 잘 안됩니다.
정말 감탄이 나온다. 아무리 봐도 이건 말아서 들고 다니는 휴대용 횡단보도나 식사 중 혀 데임 방지용 혀 커버나 두루마리 휴지가 달린 모자처럼 ‘어떤 문제를 해결하지만 다른(더 큰) 문제를 유발하여 실용성이 전혀 없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감탄을 하게 된 점이 바로 여기 있다. 이 제품엔 앞서 말한, 일본의 쓸모없는 발명품이라고 알려진 ‘진도구’처럼 뭔가 파타피지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파타피직스는 과학적 연구라기보다는 예술적 유희에 가깝다. 미로와 뒤샹의 참여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다다이즘이 연출하던 부조리와 무의미 미학을 닮았다. 그것은 어쩌면 철학과 과학의 영역에서 다다이스트 퍼포먼스 인지도 모른다. 우리 일상에서도 파타피직스에 근접한 예를 볼 수 있다. 가령 인터넷 유머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을 생각해보라. 이 유머에 따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자기만의 방법을 갖고 있다고 한다. 먼저 전산학의 방법. 코끼리’를 low pass filter에 통과시킨다. 그럼 ‘고기리’가 나온다. ‘고기리’에 circular right shift 연산을 한다. 그럼 ‘리고기’가 된다. ‘리고기’를 증폭비 5인 Non-invert OP-Amp 회로에 통과시킨다. 그러면 ‘5·리고기’가 된다. 이제 오리고기를 냉장고에 넣는다.” 이어 양자역학의 방법. “코끼리가 자신을 이루는 입자를 두 개씩 짝짓는다. 스핀이 1/2의 정수배인 페르미온은 한 공간에 둘씩밖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스핀이 정수배인 보존은 한 공간에 무한히 들어갈 수 있다. 즉, 모든 페르미온을 둘씩 짝지어 정수배 스핀으로 만든 뒤 한 장소로 모아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 - 진중권 <아이콘>-
진도구의 존재 이유는 애초에 실용성이 아니라 예술적 유희이다. 식품영양학이나 병리학이나 경영학이나 심지어는 형이상학이라는 틀 안에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철학적 의미가 담겨있다는 뜻이다. 단적인 예로 ‘창의적 사고’가 있다. 아무리 ㅂ신같아도 막상 저런 도구를 발명하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다. 누구든 아마 지금 당장 떠올리려고 하면 상당한 창의력이 요구된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발전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대체 이런 ㅈ같은 건 왜 만든 걸까?” 따위의 사소한 의문에서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곳인가? 현실 자체가 초현실이 아닌가. 가령 얼마 전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 본인은 분명히 발언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문제의 발언을 들었다. 정상 과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이다. ‘AA’라는 동일률 자체를 거부하는 이 현상 앞에선 형이상학도 무력해진다. 하지만 파타피지션은 외려 여기서 중요한 학적 발견을 끌어낼 것이다. 가령 성대를 통해 야기된 공기의 진동 없이 소리를 전달하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매질이 존재할 가능성이라든지.” - 진중권 <ICON>-
아무튼 무심코 고른 젖 덕분에 철학적 사고를 하게 되는 기회를 얻었고 더불어 우유에 함유된 A1 베타카제인이 분해되면서 나오는 카소 모르핀(일종의 마약성분)의 환각작용까지 더해져 상상력이 배가 되는 것이 아주 좋네^^ 여러분도 커피나 우유나 산양유나 술이나 대마나 코카인 대신 오늘은 산양 우유 한잔 해보시는 거...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