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연의 현대음악 평론
삼성전자(Samsung): 무반주 세탁기 독주를 위한 변주곡 A장조 “송어” (Variation for Solo Washingmachine in A major "The Trout”)
삼성전자 생활가전 개발팀이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Die Forelle)’ 를 세탁기 독주곡으로 편곡한 변주곡.
2시간 남짓한 긴 인트로에서의 첨벙첨벙하는 물소리는 마치 산란을 위해 물가를 거슬러 올라오는 송어의 힘찬 지느러미질을 연상케 한다. 이윽고 빨래를 끝낸 연주자는 마치 산란을 마친 송어처럼, 헤엄치는 것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다는 듯 그제야 연주를 시작한다.
얼핏 들으면 원곡과 같은 A Major 스케일로 연주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주제 멜로디가 반복되는 두 번째 도막에서의 마디의 첫 음이 첫 번째 도막과 같은 “솔 도(A)도미미도~”의 A가 아닌 반음 도약한 A#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마디의 첫음을 반음 올린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Eb Dorian 스케일로 바뀌었다가 한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A Major로 돌아왔다고 보는 게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어딘가 불안하기까지 한 이 과감한 전조에서 우리는 편곡자의 예술적 소양과 기술적 역량을 엿볼 수 있다.
우선 원곡인 슈베르트(Franz Schubert)의 가곡 ‘Die Forelle’의 가사를 살펴보자. 이 곡은 독일의 시인이자 음악가인 크리스티앙 슈바르트(Christian Friedrich Daniel Schubart)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것이다. 주제 멜로디의 가사는 ’In einem Bächlein helle, da schoss in froher Eil’로 번역하면 ‘반짝이는 시냇가에서 잽싸고 명랑하게..’이다. 이어지는 두 번째 도막에서의 가사는 ‘die launische Forelle vorüber wie ein Pfeil.’ (변덕스러운 송어가 쏜살같이 노니네), 그러니까 Eb Dorian 스케일로 급작스럽게 전조 된 마디의 가사 내용은 ‘die launische Forelle’ 즉 ‘변덕스러운 송어’이며 첫 번째 도막의 첫음에서 반음 도약한 A#이 노래하는 단어는 ‘launische’(변덕스러운)이라는 것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송어의 급작스러운 몸놀림과 파도를 거스르는 힘찬 도약의 순간을 표현주의적으로 그려낸 편곡은 어찌 보면 원곡보다 더 고증(?)에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웃트로, 음악은 지금까지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짤막하고 아방가르드한 멜로디와 함께 끝을 맺는다. 바로 이 곡의 핵심 주제를 나타내는 부분이다. 인간이 만든 이 곡이 단순히 기계에 의해 ‘모방’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굳건히 하는 대목으로써 편곡자뿐만 아니라 기계인 연주자에게도 ‘고스트(자아)’가 있으며, 인간다움의 상징이던 음악이라는 영역도 기계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음을 ‘마치 인류를 비웃는 듯한 무조의 냉소적 멜로디’로 표현해냈다.
삼성이 이름을 내걸고 야심 차게 내놓은 이 변주곡은 단순한 음악이 아닌 것이다. 여기엔 국내 최고의 엘리트 공학자들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슈베르트의 송어를 비틀고는 유유히 퇴장하는 기계, 마치 산란을 마치면 죽고 마는, 어부의 낚시질에 희생당하고 마는 송어처럼 결국 기술의 진보의 끝은 인류의 종말이라는 것을 시사하는 한 편의 ‘머신 아포칼립스’ 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