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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on de Madame Saw Jul 30. 2022

스타벅스와 인증된 고급스러움

대중, 촌스러움을 말하다.

<사진- 안종열 기자>


스타벅스가 올해 여름부터 진행 중인 '좋아하는  좋아해' 캠페인이 소비자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여름 프리퀀시 굿즈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하철역 등에 소규모 점포를 내는 것에 대해서도 '브랜드 이미지가 희석된다'라며 소비자들의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스타벅스가 올해 여름부터 진행 중인 '좋아하는  좋아해' 캠페인에 대해 소비자들이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좋아하는  좋아해' 스타벅스의 올해 여름 시즌 주력 캐치프레이즈로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기획된 브랜드 캠페인 'FIND YOUR TASTE' 일환이다. 해당 슬로건에 대해 소비자   (34·) "스포츠나 패션 브랜드에  어울리는 문구 같다. 음료와 더불어 시간·공간·감성을 함께 판매하는 스타벅스와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슬로건"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소비자   (37·) 역시 "매장 통유리창에 떡하니 슬로건이 붙어있는데 너무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라인이라면  덜했겠지만 오프라인 매장에는 맞지 않는 슬로건인  같다"라고 비판했다.”

매년 스타벅스 굿즈를 구입했다는   (26·) "예년의 상품은 심플하면서도 스타벅스의 특징이 담긴 디자인이었는데, 이번 상품은  촌스러운 느낌이라 구입하지 않았다" 말했다.”

<김현우 기자, "스타벅스, 이마트 때문에 변했다는 지적… 진실은?” 글로벌 경제신문, 2022. 05. 26. https://www.getnews.co.kr/news/articleViewAmp.html?idxno=585731>


스타벅스의 새로운 슬로건과 디자인이 촌스럽다는 대중들의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sns 내에서 스타벅스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굿즈 디자인이나 브랜드 이미지가 점점 촌스러워진다는 글을 한 무더기로   있다. 심지어는 키치한 것을 좋아하는 정용진 부회장의 촌스러운 취향을 반영한 싼 티 나는 디자인이라며 ‘구단주가 묻어 오염된 스벅이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에게 힙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던 스타벅스가 어쩌다 그러한 평가를 받게  걸까?



스타벅스와 스타벅스스러운 것은 더 이상 대중들에게 특별히 고급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의 등장으로 대중들은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기 시작했고 싸이월드가 그러했듯 ‘힙함 정의하는 어떠한 새로운 틀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싸이월드 시절 스타벅스를 소비하는 것이 사치의 상징이었다면 인스타그램 시대인 지금의 아이콘은 자신의 안목,  비싼 것과 싸구려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무려 글로벌 브랜드인 스타벅스의 디자인과 정용진 부회장과 같은 최상류층의 취향을 비웃을  있는 안목 말이다.


<출처- 스타벅스 공식 인스타그램>



그러나 대중문화는  미래의 촌스러움이다. 싸이월드 갬성이 몰락했듯이 말이다. 앞서 말한 싸구려란 ‘대중들로부터 마침내 촌스러움의 자격을 얻은 한물  스타일’ 일뿐이다. 그러한 고급스러움과 촌스러움을 구분 짓는 것은 결국 대중들, 그러니까 ‘일반적인안목이기 때문이다. 대중적 합의가 이루어진 고급스러움은 결국 진짜 고급이라기 보단 ‘요즘 유행하는 고급스러움 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사람, 가난한 사람이 생각하는 부자, 무식한 사람이 생각하는 유식한 사람의 이미지와 같다. 따라서 스타벅스가 예전의 스타벅스 다움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더 이상 예전처럼 힙함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질  없었을 거다. 그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일반인들과 자신들을 구분 지을  있는 새로운 ‘과시 아이템 팔아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스타벅스가 새롭게 내놓은 상품은 그러니까 정형화된 고급스러움이 뭔지 이미 알아버린 대중과 미래의 스타벅스 소비자들을 구분 지을 과시 요소는 바로 정용진처럼  촌스러움을 자신 있게 소비할  있는 문화적, 정서적, 금전적 여유다. 박찬욱의 예술이 촌스럽지만 결국 고급스러운 이유는 그가 예술가이기 때문이고 정용진의 취향이 촌스럽기만 한 이유는 그가 그러한 예술마저 ‘소비하는 최상류 층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눈에 보이는 촌스러움을 자신 있게 소비할  있는  고급문화를 향유할 능력이 되는 부자들만의 특권이다. 그들은 이렇게 그것을 생산하는 예술가마저 대중 앞에 자신 있게 드러낼  없는, 대중적 세련됨으로 포장된 틀켜버릴 가난과 촌스러움을 애초에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인스타그램>


그러니까 고급스러운 문화를 향유할  없는 사람들이 ‘고급과 저급을 구분 짓고 평가하는 행위자체가 키치 한 ,  비쌈을 흉내 내는 싸구려일 뿐이라는  알고 있으며 그들이 기피하는 ‘싼티 되려 소비하는 여유, 대중들 입장에선 무려   내고 저딴  하는 가성비 따위는 따질 필요가 없는 여유,  세상에 산타클로스 같은  끝내 없었다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산타가 없는  여태 몰랐냐고 앞서 말한 종류의 ‘여태 계몽 조차 안된사람들을 깔보는 것이 아니라 무려 이 세상에 없는 산타를 기다리면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며 웃을  있는 여유다.



이것은 새로운 시도인  같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사실 스타벅스가 그동안  추구해온 가치 일지 모른다. 대중들이 ‘꼿꼿한 자세 촌스럽다며 등을 돌릴  어떤 이들은 비웃음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이다. 스타벅스가 된장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구시대적 프레임이 이제는 비웃음 받듯 결국 미래에 비웃음 당하는 것은 당신들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그런 사람들과 함께, 그것이 가능한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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