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언젠가 가족 모임 때 일이다. 주말을 맞아 고향을 찾은 우리는, 늘 그렇듯 셋째 삼촌댁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큰 방에서는 엄마와 나 그리고 작은형 가족이, 건너 방에서는 삼촌과 큰 형 그리고 조카들이 자고 있었다. 목이 말라 새벽녘에 깬 나는 냉장고가 있는 건너 방으로 향했다. 방문을 열자마자 우렁차게 들려오는 코골이 소리. 경쟁이라도 하듯 엄청나게 코를 골던 큰 형과 삼촌. 그 두 사람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고 있는 조카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다음날 아침, 산소에 갈 채비를 할 때였다. 새벽에 돌아오셨던 삼촌이 혀를 내두르며 큰 형에게 말씀하셨다.
“와. 니 코 장난 아니게 골데? 잠을 못 자겠더라. 임마.”
큰 형의 코골이가 가장 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삼촌의 코골이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걱정을 하며 삼촌을 거들었다.
“아이구~ 쟈(큰 형)가 코를 그리 골아서 어쩌노?”
작은 형이 말했다.
“살이 쪄서 그래. 살이 저렇게 찌니까 골지.”
은연중에 나도 한 마디 보탰다.
“코 심하게 골면 무호흡증이 온데.”
그렇게 큰 형 한 사람을 두고 너도 나도 한 마디씩 하고 있을 때, 작은 형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방도 전부 다 고시던데요?
조카를 재우고 가장 늦게 잠든 형수는 다른 가족들의 코 고는 소리에 억지로 음악을 들으며 잤다는 것이다. 형수의 얌전하지만 묵직한 증언에 우리 모두는 입을 맞춘 듯 껄껄 웃었다. 나도 따라 웃다가 순간 그 “전부 다”라는 표현에 놀라 형수에게 물었다.
“형수. 저도요?”
“네.”
“제가 코를 곤다고요?”
“네. 고시던데요.”
“… …”
세상에 … 내가 코를 곤다니.
돌아가신 아버지는 정말이지 엄청난 잠버릇을 가지고 계셨다. 코를 우렁차게 고셨고, 이빨도 뽀득뽀득 가시고, 한 번씩 잠꼬대도 하셨다. 그래서 곁에서 주무시던 엄마는 잠을 설치던 날이 많았다. 다른 방에서 자던 나도 아버지 코골이에 가끔 잠이 깰 정도였으니, 엄마는 오죽했을까?
그러다 언제부턴가 엄마도 코를 고시기 시작했다. 이따금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그 품이 그리워 굳이 엄마 곁에서 잠을 청했던 나는, 그녀의 코골이를 이겨내고 잠드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아침이 오면 나는 막 잠에서 깬 엄마에게 묻곤 했다.
“엄마. 코를 왜 그리 고세요?”
그러면 그녀는 그때마다 전혀 몰랐다는 듯, 믿을 수 없다는 듯,
“진짜로? 내가 그리 코를 곤다고?” 하며 놀라 되물으셨다.
그리고 나도 몇 년 전부터 코를 골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혼자 자는 날이 많았으니 정확히 시기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가끔 나와 한 방에서 잠을 잔 지인들은 아침이 오면 내게 말해주곤 했다.
“너 임마. 코 골면서 잘 자더라.”
그러면 나는 엄마가 내 물음에 그러셨듯,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정말? 내가 코를 곤다고?” 하며 물었다.
그런 나의 정색에 친한 형 J는 내 코 고는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듣고서도 나는 여전히 코를 골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또 묻는 것이다.
“내가 코를 곤다고?”
언젠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남편의 코골이에 지쳐 각방을 쓰다, 이혼을 고려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신혼 초부터 시작된 남편의 코골이에 불면증, 우울증까지 겹쳐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그녀는, 각방을 쓰는 문제로 남편과 다퉜고 진지하게 이혼을 생각한다고 했다.
누군가는 고작 코골이로 이혼까지 해야 하냐며 반문하겠지만, 나는 그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얕게 자고, 작은 소리나 미세한 움직임에 쉽게 깨는 나는, 살면서 푹 잤다고 느낀 적이 흔치 않다. 혼자 잠을 자도 이런데, 곁에서 함께 잠든 이가 코를 크게 골거나 뒤척임이 심하면, 그날 밤은 내내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잠이 부족하면 하루 종일 두통에 시달리고, 축 쳐져서 무기력하게 지내니 잠을 못 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코골이에 수십 년을 시달리셨던 엄마도, 그녀에게 왜 그리 코를 고냐며 책망하던 나도 모두 코를 곤다. 이유를 따지자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살이 쪄서, 술을 마셔서, 피곤해서 그리고 나이를 먹어 그 세 가지가 다 겹쳐서 코를 고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의 절반이 코를 곤다니 엄마도 나도 그 50%의 확률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렇게 나이 들어 생긴 단점이 한두 가지겠냐 마는, 한해 한해 늘어가는 쓸데없는 고집, 아래로 쳐져만 가는 뱃살 그리고 코골이는 젊은 시절에 내가 그런 어른들을 보며 나는 결코 저러지 않으리라 믿었던, 그리고 내 것이 되리라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그러니 누가 내게 코를 곤다고 할 때마다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내가 코를 곤다고?”라며 되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고집 세고 뱃살 쳐지고 거기다 코를 고는 어른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내 의지로는 그것들을 쉬이 제어할 수 없고, 앞으로 더 늘어간다는 것이 서글프다. 언젠가 코를 심하게 곤다는 나의 놀림에 “너도 나이 먹어봐라!”라던 엄마의 항변은 결국 틀린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