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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관찰자 Apr 26. 2021

감기를 떠나보내며

수필

  정확히 1년 만에 찾아온 감기였다. 쉽게 넘어가지 않는 온통 뾰족한 것을 삼킨 듯 목이 따끔따끔했다.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해 주말 내내 찜찜하게 보내다 월요일 아침이 되고서 냉큼 동네 이비인후과로 달려갔다.      


“두통은요?”
“아니요.”
“콧물은요?”
“없습니다.”
“몸살은요?”
“글쎄요. 그냥 좀 처지는 정도?”     


다른 곳은 멀쩡한데 목만 따가웠다. 음식을 못 삼킬 정도로 아프거나, 숨쉬기 괴로울 정도로 부은 것도 아니었다. 침을 삼키면 ‘적당히’ 따끔한 정도였다. ‘적당한 아픔’이라니, 생각할수록 우스워서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지만,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그 정도로 병원을 찾았다 싶어 후회할 때쯤 내 목젖을 들여다본 의사가 말했다.     


“많이 부었네요.”     


그 말에 나는 병원에 올만했음을 인정을 받은 것 같은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약은... 5일 치 처방해 드릴게요.
드시고 괜찮아지면 안 오셔도 돼요”
‘5일치라니? 적당히 아픈 것 아니었나?
 과잉진료 아니 과잉처방 아닌가?’ 


 의사 앞에서는 한마디도 되묻지 못하고 “네. 감사합니다.”하고서는, 약국에 와서야 이런저런 의심을 하다 이전에도 감기약을 5일 치 처방받은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짜내고 있었다. 결국 두툼한 약봉지를 받아 들고서 나는 이삼일 안으로 얼른 나은 뒤 남은 항생제는 잘 보관해두었다가 훗날 요긴하게 쓰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적당하다 믿었던 감기는 적당히 물러날 마음이 없었다. 3일째가 되자 목은 멀쩡한데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코가 막혔고, 4일째엔 종일 오한에 떨다 이따금 재채기를 발작하듯 했다. 5일째가 되자 그때까지 꾸준했던 몸살이 절정에 다다랐다. 얄밉게 요리조리 옮겨다는 감기를 항생제는 꽁무니 쫓아다니기도 버거워 보였다. 결국 마지막 약을 입에 털어 넣고도 나는 침대에 눕고 말았다. 5일 치를 먹어도 낫지 않았으니, 몇 일치를 더 먹어야 할지 한숨부터 나왔다.     


 약 기운에 몽롱해질 때쯤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내가 아픈 걸 어떻게 아셨을까? 흔히 남자는 모르는 여자의 촉이 있다던데, 자식이 아픈 걸 본능적으로 느끼는 엄마의 촉도 있는 걸까? 그래도 ‘아픈 티 내지 말아야지. 멀쩡한 척해야지. 괜히 걱정 끼쳐 드리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막상 그녀가 다정한 목소리로 “아픈 데는 없고?” 묻자마자 실토하듯, 괘씸한 감기 녀석을 일러바치듯 “나 감기 걸렸어.”하고 말았다. 이 나이를 먹고도 어째서 엄마 앞에서는 매번 철부지가 되고 마는지.    

 

“내일은 꼭 주사 맞아. 쎈 놈으루”      


 ‘맞다. 주사가 있었지. 난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역시 엄마는 대단해.’하며 감탄했다. 엄마의 염려와 위로가 이불 위로 한 장 한 장 덮일 때마다 몸도 마음도 더 따뜻해졌고, 그만큼 더 그녀가 그리워 참고 참다 전화를 끊자마자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그런 엄마의 목소리가 효과 좋은 약이었을까? 다음날 일어나니 전날보다는 훨씬 괜찮아졌음을 느꼈다. 부슬비가 막 그친 후 아직은 다소 흐린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몸에 있던 감기는 그렇게 옅어졌는데, 내 방에는 감기의 흔적이 온통 가득했다. 침대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차곡차곡 쌓여버린 집안일들. 정말 감기라서, 감기 때문에 이것들을 미뤘던 것일까? 아니면 감기를 핑계 삼아 그저 게으름을 피웠던 것일까?      


몇 해 전, 엄마와 나란히 누워 옛 시절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엄마가 주인집 이불 공장에서 일할 때였지.
 일이 얼마나 힘에 부치던지,
집에 돌아올 때는 완전 녹초가 되더라구.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벌러덩 드러눕곤 했지.”     

 그랬다. 지금 내 나이와 얼추 비슷할 그 시절의 엄마는 일터에서 돌아오신 직후 가끔씩 방에 꼼짝 않고 누워 계시곤 했다. 철없던 나는 그녀 곁에서 알짱거리며, 그저 쉬고 싶었을 엄마에게 내 하루를 쫑알쫑알 떠들곤 했다. 그렇게 그녀의 휴식은 채 삼십 분을 넘기지 못했다. 엄마는 이내 지친 몸을 일으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집 곳곳을 청소하셨다. 남편도 자식들도 거들어주지 않는 집안일을 그렇게 혼자 해결하면서도 그녀는 억울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어른이 된 나는 그녀를 닮고 싶었다. 나라는 존재가 그녀의 몸에서 나온, 그녀가 기른 자식이라면, 게으름은 그저 단점이 아닌 ‘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태함에 침대로 몸을 던 질 때마다, 그 옛날 녹초가 되어 돌아온 엄마를 떠올리고서 얼른 다시 일어나곤 했다. 그런데 고작 ‘적당한’ 감기에, 챙겨야 할 자식도 없는 주제에 나는 몇 날 며칠을 헛되이 보내고 만 것이다.  

 

 이 부끄러움을 잊지 말아야지. 아니 오히려 또렷이 기억하고 꼼꼼히 기록해서 또다시 ‘적당한’ 감기가 찾아올 때 꺼내봐야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생활을 미룰 때마다 각서처럼 들춰봐야지. 마침 ‘적당히’ 막혔던 코가 뻥 뚫렸음을 느꼈다.      


감기가 어느새 저만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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