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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관찰자 Jan 19. 2022

한 마디만 더

'사랑'이라 씁니다

 좋은 사람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죽이 잘 맞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든다.  사소한 일에 의미 붙이고 별걸 다 기억하는 나라서 대화가 중단될 일이 좀처럼 없다. 더군다나 호기심도 넘치고, 궁금한 것도 많다. 그래서 상대의 반응만 괜찮다면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다. 또 그만큼 농담하는 걸 즐긴다. 코드가 맞다싶으면 주저 없이 내 방식의 유머를 구사하고, 토크에 MSG도 심심찮게 친다. 그러다보니 말이 많아지고, 또 그만큼 말실수도 하게 된다.     


 이 나이를 먹고서도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선을 지키며 말하는 것이다. 내게 그어놓은 마음의 선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가족이라 해서 짧은 것도 아니고, 자주 만날수록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함께한 세월이 오래된 만큼 더 말하기 어려운 주제도 있고, 더 긴 시간을 보내는 만큼 감추고 싶은 것도 많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어진 선이 내 눈에 보일 리 만무하고, 흡사 알아차렸다한들 계속 고정되어 있을 리도 없다. 부단한 노력으로 상대가 마음의 문을 더 열었어도 그 안에서 무엇을, 얼마나 꺼내고 받아들일지는 오로지 그에게 달려있을 뿐,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하고 지레짐작을 하다 상대방이 그어놓은 선을 넘을 때도 많다.      


그렇게 선을 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넘자마자 섬뜩할 정도로 표정이 바뀌며 정색을 한다. 그럴 때면 무안해진 나는 반사적으로 사과부터 하고서 얼른 대화의 주제를 돌려보지만,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내 마음도 더 크고 빠르게 닫힌다. 

 또 어떤 이는 들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다 뒤늦게 자기식대로 대응을 한다. 다음에 만날 때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 너무 달라서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함께 아는 사람들에게 내 실수를 은근슬쩍 흘리는 이도 있다. 물론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아무런 눈치나 언급도 없이 단칼에 인연을 끊어버리는 사람들이다. 

     

 젊은 날, 말 때문에 망신을 당하거나 인연을 잃기도 했던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말실수들이 쌓여갈수록 스스로를 검열하는 기준도 점점 높였다. 핸드폰으로 오는 스팸문자를 거를 때 전화번호를 차단하거나, 특정 단어 또는 문구를 필터삼아 거르듯 내 실수들을 따로 기록하거나 특별히 기억하려 애썼다. 전화번호를 아무 웹사이트에 공개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과 자리를 가려가며 만났다. 한마디 말도 조심해야할 상황에서는 그냥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도 몇 번의 실수를 거듭하며 얻어진 버릇이었다.    

 

 그래서 젊은 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가장 달라진 점 중 한 가지는 말의 양일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면 필터 없이 일단 뱉고 봤던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그 때보다 분명 말을 가려서 한다. 보다 더 눈치를 보고, 조금 더 입을 다문다. 그럼에도 아직도 감정에 북받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픈 욕망 때문에, 그냥 철이 덜 들어서 선을 넘을 때가 있다.     


그렇게 말실수를 하고 나면 나는 상대방의 반응과 관계없이 자책을 한다. 오히려 그 말을 들었던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서 괴로워 이불킥을 할 때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말에 상처를 쉽게 받기 때문이다. 내가 말 한마디에 민감하고 예민하니까 남들도 그럴까 싶은 거다. 내가 아파봤으니 난 그러지 말아야지 싶은 거다. 그래서 나는 무겁고 단단한 사람이 부럽다.      


입은 무겁고 마음은 단단해서 말을 쉽게 뱉지도, 휘둘리지도 않는 사람이 정말 대단하고 멋지다. 평생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또 노력했지만 난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 밖에서 열심히 말을 참았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알아듣지도 못할 고양이에게 한풀이하듯 주절주절 떠들 때, 좀 짓궂긴 했어도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농담이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가사처럼 귓가에 하루 종일 맴돌 때, 들어갈 때는 ‘입 닫고 귀만 열자’고 그렇게 다짐하고서도 나올 때는 ‘왜 쓸데없는 말들을 했을까’ 괴로운 날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한다.

한 마디만 더 줄이고. 한 마디만 더 넘기며. 한 마디만 더 듣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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