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인칭관찰자 Jan 21. 2022

마지막 사랑니

- 1 - 


오랜만에 치과를 방문했다. 스케일링을 받으며 그간 미뤄온 충치치료까지 해치울 참이었다. 빠듯한 살림에도 달마다 3만원씩 꼬박꼬박 내는 치아보험 혜택을 받을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치는 예상보다 훨씬 많았고 비용도 문제였지만 치료기간만 한 달이 걸렸다. 과잉진료 안하는 곳을 찾겠다고 집 앞에 치과들을 두고 굳이 멀리 있는 곳을 선택한 것도 자업자득이었다.     


 치료를 받으러 의자에 앉으면 눈앞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에는 늘 처음 왔을 때 찍은 X-RAY 사진이 떠있었다. 의사는 사진 속 이빨들을 가리키며 “오늘은 여기 여기를 치료할거에요.”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사진에는 충치가 보이지 않으니 난 그저 그녀의 권위에 기대어 “네. 네.” 할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치료를 받다 가글을 한 뒤 한 숨 돌리는데, 늘 보던 사진 속에서 묘하게 거슬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굵직한 어금니에 구부정하게 기대어 삐딱하게 난 이빨, 그것은 하나 남은 사랑니였다.      


*


 십여 년 전 스케일링을 받았을 때 치과의사는 사랑니를 뽑으라 권했다. 나는 딱히 불편함도 없는데 생니를 뽑으라는 것이 괜히 돈 더 벌어먹겠다는 수작 같아 무시했다. 그러다 아래 쪽 사랑니 하나가 곁에 있던 어금니의 뿌리를 밀어버리고 나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결국 어금니를 뽑고 임플란트를 박으면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고 말았다. 분한 마음에 다른 사랑니도 몽땅 뽑아달라고 아우성치자 의사는 한꺼번에 뽑는 것은 불가능하며, 하나는 잇몸 속에 숨어있는 매복치니 그냥 두자고 했다. 의사의 충고를 무시하다 그 사단이 났으니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 때 남겨둔 것이 오른쪽 윗 사랑니였다.    

  

 그 기억이 떠올라, 이참에 남은 하나를 마저 뽑고 싶다고 하자 의사는 굳이 치료과정을 설명했다. 잇몸을 찢어서 이빨을 조각낸 뒤 꺼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내겐 이미 달아오른 쇠뿔에 불과했다. 결국 충치 치료가 모두 끝나고 사랑니를 뽑기로 예약했다.      


 사랑니를 뽑는 날, 주사를 맞고서 완전히 마취가 될 때까지 기다릴 때였다. 치과 스탭들은 정신없이 바빴고 나는 잠시나마 홀로 앉아 있었다. 그 시간동안 수십 년간 내 몸에 박혀 있던, 잠시 후 영원히 떨어져 나갈 그 한마디 뼈를 빤히 바라보았다.





- 2 -


  코로나는 치과 X-RAY 사진처럼 적나라했다. 이 사회에 곳곳에 숨어서 박혀 있던 사랑니들을 새하얗게 드러냈다. 모두들 순위를 매기며 사랑니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갔다. 개인은 쓸데없는 지출을 줄였고, 기업은 무가치한 것들을 처분했으며, 사회는 불투명한 것들을 철회했다. 


 하지만 X-RAY 사진에서 충치를 볼 수 없듯 코로나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이참에 썩은 것들을 모두 도려내자 소리쳤다. 그러나 어디가, 얼마나 썩었는지 알 수 없어 사회지도층, 언론사라는 이른바 권위있는 자들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맹렬히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나도 있었다.     


 코로나 직후 직장을 잃었다. 그때까지 나는 스스로를 가장 어둡고 깊숙한 곳에서 굳은 일을 도맡아하는 마지막 어금니라 믿었건만, 그들은 내가 그 어금니를 위협하는 사랑니라 말했다.

 그동안 이런 위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회가 흉흉해지면 늘 위태로웠던 것은 경계에 있던 나 같은 말단 노동자 또는 비정규직들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사랑니처럼 한꺼번에 뽑을 수는 없으니 그때마다 일부를 남겨두었을 뿐이고, 나는 지금까지 운 좋게 그 중에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러다 이참에 뽑히고만 것이다. 

 사랑니가 뽑힌 자리는 한동안 구멍으로 남지만 천천히 잇몸으로 매워진다고 한다. 내가 있던 자리도 이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매워지고 있다고 들었다. 뽑은 이빨을 다시 심을 리 없듯 내가 돌아갈 자리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


그러한 생각들로 사진 속 사랑니에 묘한 동질감이 들 때 쯤, 의사가 다가와서 누우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그냥 둬도 큰 상관은 없나요?”

“그래도 뽑는 게 낫죠.”

의사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더는 할 말이 없어 의자에 누워 입을 벌렸다. 잠시 후 요란한 기구 소리와 몇 차례의 기분 나쁜 진동이 스쳐간 뒤 사랑니는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치료가 끝나고 치과를 떠나기 전 나는 그 X-RAY사진을 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기념으로 간직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냥 치과를 빠져나왔다.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날 내 주먹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