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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철 May 29. 2020

패왕별희와 장국영

1993년이니 거의 30년이 되어간다. 패왕별희의 재개봉은 1993년에 가위질 당했던 15분 가량의 분량이 추가되어 무삭제본으로 개봉했다. 그래서 제목도 ‘패왕별희 디 오리저널’이다. 영화내용 만큼이나 충격적인 장국영의 자살, 패왕별희가 말하고자 했던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인 이야기들, 영화는 여전히 보는 사람을 철저하게 압도한다. 3시간 가까운 상영시간 동안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압도당한다.

매춘부인 데이(장국영)의 엄마는 홍등가에서 사내아이를 키울 수 없어, 데이를 경극단에 입단 시키려고 한다. 육손이(손가락이 여섯개)라는 이유로 극단장이 데이를 거부하자 엄마는 데이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 버린다. 데이는 경극 패왕별희의 우희역을 위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요받고 그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그를 평생 혼란스럽게 만든다.

어린시절 데이는 경극단의 힘든 훈련과정에서 힘이 되어주는 샤오러우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패왕의 역할을 맡은 샤오러우와 극안에서 그리고 극밖에서 데이는 경계의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그의 세계를 홀로 만들어 나간다.

첸카이거 감독은 1924년 군벌시대의 북경을 시작으로 국공내전, 일본의 침략시대와 항일전쟁, 국민당시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근대사의 굴곡과 비극을 패왕별희안에 담았다.

데이와 샤오러우는 경극이 다른 시대와 이념을 만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과 비극에 차례차례 부딪히면서 서서히 무너져 간다. 군벌, 국민당, 일제침략, 국민당의 몰락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공산당 내부의 파벌싸움과 마지막 문화대혁명까지 각 시대가 내세우는 정의와 이념이라는 거대한 담론 앞에 개인이 서있을 자리는 없다. 오로지 집단과 그들 스스로 지칭하는 그들만의 민족이 존재할 뿐이다.

권력을 쫓는 자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민족의 이름으로, 당의 이름으로, 그들이 공유하는 이념의 이름으로 개인들을 무참히 파괴한다.

데이와 샤오러우는 시대의 이념이 바뀔 때 마다, 권력집단이 내세우는 정의에 의해 단죄되고 고통받았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그러나 결국 문화대혁명의 광기 아래서 데이와 샤오러우의 삶은 부정되고, 개인이 가지는 인간으로서 존엄이 무너지면서 모든 걸 체념하고 만다. 문혁 11년후 겨우 살아남은 데이와 샤오러우는 마지막 장면에서 데이의 자살로 끝을 맺는다.

2003년4월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등진 장국영은, 그가 주연을 한 아비정전, 춘광사설(Happy Together), 패왕별희 등에서 보여준 모습과 현실의 삶에서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 현실이고 연기인지 경계를 가르기가 쉽지 않다.

개봉당시에 영화를 볼 때는 장국영이란 개인의 삶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삶과 영화를 넘나들면서 그를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귀동냥으로 들은 평론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로 아비정전의 아비 그리고 패왕별희의 데이가 그의 실제 모습과 겹치는 면이 꽤 많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를 힘들게 했던 삶과 성적정체성이 왜 패왕별희에 투영되었는지 조금 더 이해가 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패왕별희의 데이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 그의 삶이 처참히 무너졌고 또한 성적정체성으로 고통받았다. 현실의 장국영은 다른 이유들로 그 삶이 슬픔으로 점철되고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사랑했고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은 데이 그 자체였다.

#패왕별희 #장국영 #첸카이거 #문화대혁명 #경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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