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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가린 진정한 사과(謝過)

- 한상림 칼럼

by 한상림

최근 모 의원의 딸 축의금 파문은 방통위원장 사퇴와 끝없는 변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단순한 축의금의 액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앞에서 권력을 이용한 오만한 변명과 겸손하지 못한 태도를 보였기에 국민적 공분과 함께 지난 잘못까지 소환시킨 결과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실수를 할 수 있다. 즉각적인 자기반성과 사과로 용서를 청하였다면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권력 뒤에 숨어 변명만을 거듭했기에 오히려 화를 키운 셈이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지만, 고액의 축의금을 되돌려주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려다 취재진 카메라에 잡힌 후 일어날 파장에 대하여 추호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심지어 딸의 결혼식을 전혀 알지 못하다가 유튜브를 보고 알았다는 둥, 노무현 대통령 정신까지 운운하였으니 이 얼마나 얄팍한 변명인가? 이런 해명 방식이 이른바 ‘권력형 사과문’이라면 이는 결코 진정한 사과일 수 없다. 뒤늦게 SNS에 올린 글을 보면 해명서가 사과문보다 더 길었다. 거기에 더 황당한 일은 당 대변인까지 ‘죄 없는 자는 돌로 치라’며 두둔했다는 점이다. 이는 아주 잘못된 비유의 표현이다. 진정한 사과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정치적 야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법을 유용하던가 편법으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으며, 실로 짧고 허망한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쥔 자는 마치 맑은 하늘로 떠오르는 아침 해와 같이 힘차게 솟구칠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교만과 오만함으로 가득 찬 권력은 서쪽 하늘로 기우는 석양과 같다. 어리석은 권력을 손에 쥐면,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이상한 논리를 먼저 내세우려 한다. 남의 허물은 샅샅이 들춰내면서 자기 허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의 눈부터 먼저 가리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 수천만 눈을 그 무엇으로, 또 어떻게 가릴 수 있겠는가?


늦가을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沙果)를 보면, 둥글고 탐스러운 붉은빛에선 달콤한 자연의 향기가 난다. 그 향기와 붉은빛은 눈이 부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것은 사과가 단지 과일 중에서 으뜸이어서가 아니다. 그 껍질 속에 담긴 사과만의 독특한 향기와 맛에서 우리는 용서와 배려, 그리고 진정한 ‘사과(謝過)’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나무는 추위와 눈보라에도 메마른 가지로 꽃눈을 틔우며 이른 봄 하얀 꽃망울을 터트린다. 한여름 동안 가뭄과 비바람, 천둥번개와 땡볕에 타협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붉은빛과 탐스러움을 만드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따가운 햇살을 겸손하게 받아들이며, 지난여름 모진 시련과 고통과 화해하며 붉은빛을 푸른 몸통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사과(沙果)의 열매를 매달고 사람들의 눈빛을 자랑스럽게 사로잡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달콤하고 향기로운, 자연이 빚어낸 사과(沙果)의 참모습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타협하려 들거나 변명하지 않는 사과(沙果)처럼, 잘못을 깨달았을 땐 진정한 마음으로 사과(謝過)하여 용서를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권력이 아닌 진심이 담긴 사과의 힘이다.


아직도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만든 법 중에는 애매모호한 법의 사각지대가 많다. 이번 일만 해도 ‘국회의원 경조사 금지법’을 만들려다가 반대한 모 의원으로 인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따라서 국민에게만 엄격한 법을 들이대고, 정작 정치인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어긋난 논리는 더 이상 절대로 용납해선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권력이 가린 진정한 사과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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