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맞이한 여행사 직원의 쉼
한 달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유급휴가는 어느덧 세 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세 달 동안 나는 무엇을 해왔던 걸까. 석 달 전 코로나 바이러스는 느닷없이 세상을 덮쳤고 나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집에 보내졌다. 여행업계는 유례없는 최악에 상황에 치달았다. 외환위기를 넘어 IMF 시절에도 돈 있는 사람은 해외로 나갔었는데,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여행신문에서는 해외 출국자 수가 0명이라는 뼈아픈 신기록을 토해냈다. 이 와중에 내가 정리해고당하지 않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었다. 동종업계에 있는 지인 중에는 나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한풀이는 절대 금물. 스스로도 입단속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편이 심란했고 홀로 집에 있다 보면 쨍쨍한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한 동굴에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흔히 나와 비슷한 증상을 두고 ‘코로나 블루(Corona Blue)’라 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박탈감, 우울증, 무기력감 등 공허한 기분에 사로잡혀서 도무지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나는 다이어리에 빼곡한 스케줄을 적으며 만족하는 자칭 ‘프로 스케쥴러’로 새벽부터 운동 후 출근하고 틈틈이 독서까지 하며 빡빡한 하루에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송두리째 계획이 틀어지고 나니 망연자실한 느낌이 드는 게 당연했다.
‘뭐라도 해야 해’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준비 없이 길어지는 휴식이 두려웠다.
불안함에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건 ‘책’이었다. 대학시절부터 책이 좋아 기분이 꿀꿀할 땐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의 겉표지를 읽으며 기분을 풀곤 했는데 하며, 먼지 풀풀 날리는 책장에서 하나 둘 꺼내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집 안에 처박혀 골방 철학자처럼 책 읽는 날들이 많아졌다. 학생 때 이후로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읽는 것도 또 오래간만이었다. 주로 지난 몇 년간 사놓고 삼십여 쪽만 읽기만 했던 앞쪽만 손때 뭍은 도서 위주로 읽기 시작했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커피 테이블에 손과 턱을 얹어 구부정한 자세로도 읽고, 라면을 끓이며 식탁에서 혹은 빨래를 널며 베란다에서도 읽었다. 이래저래 귀찮은 기분에 사로잡히면 침대에 드러누워 책으로 얼굴을 덮어 낮잠을 잤다.
책과 함께 공상의 나날을 펼치고 있을 때 우리 집 고양이 ‘짬뽕’이가 가만히 책 읽던 내 가슴품으로 점핑하며 그르렁 소리를 냈다. 그동안 녀석도 혼자 있는 날이 많았을 텐데 애잔한 마음에 쓰다듬어 보았다. 그런데 쓰다듬던 손에 녀석의 털 뭉치가 한가득 묻어있는 손을 보고 화들짝 놀라 바닥을 보니 웬걸, 털 뭉치가 바닥을 말 그대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내친김에 청소기를 들고 구석구석 청소하기 시작했다. 와이프는 웃음을 지으며 칭찬해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던데 그때부터 화장실이며 바닥이며 아침마다 청소를 했고, 아침식사를 준비해서 와이프 출근을 보내는 내조를 시작했다. 직장 다닐 때는 귀찮아서 손 서리 쳤던 아침식사. 그랬던 내가 꼬박꼬박 아침을 챙겨 먹고 있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바뀐 긍정적 변화였다. 그동안 가족들에게 소홀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짬뽕이게 제시간에 밥 한 그릇 챙겨주지 못했고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할 거라 떵떵거리며 자부했던 결혼생활의 무게가 와이프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음을 알게 되어있다. 아주 보통의 일상이 주는 즐거움은 이런 것일까. 어쩌면 지금의 평범한 하루는 앞으로 내가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될 기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는 코로나도 종식될 것이다. 삶을 두꺼운 책 한 권으로 본다면 지금의 시간은 고작 반 페이지에 몇 문장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한 쉼표에서 마침표의 여정 사이 나는 보통의 일상을 좀 더 즐겨보기로 다짐했다. 고작 몇 페이지에 불과한 지금의 시기에 과감 없이 쉼표를 잠시 찍어본다. 그리고 그 쉼표에 영원히 기록될 소중한 일상의 기억들을 한 가득 담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