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자친구는 작년 8월에 만났다. 정확히는 광복절이다. 내가 사는 싱가폴에서 강력했던 코로나 락다운을 해제한 6월 이후 몇번의 소개팅 끝에 이 남자를 만났다.
인연이었을까. 아님 서킷브레이커 3개월간 만난 사람이라곤 경비아저씨, 택배기사님 뿐이었던 코로나 고독지옥 탈출을 위한 성급한 선택이었을까.
여튼. 두살어린 이 남자를 남친이자 약혼자로 받아들인지 어언 11개월째다.
사실상 공식적으로 외국인을 만나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 좋은점도 나쁜점도 죄다 처음 경험해 본 것들이 대부분인데.
요즘들어 부쩍 싸움도 잦고, 헤어질까도 여러번 고민하게 된다.
코로나 지옥, 재택 감옥을 함께 견뎌온 바. 전우애가 생기는게 되려 맞을텐데, 부쩍 부딪히는 일도 많고...사소한 일로 다툼도 잦고...걱정이 드는 요즘이다.
그러다가도 좋을 때는 한없이 좋고, 다툴때는 원수가 되고...약혼반지를 뺏다 다시 꼈다. 변덕이 무쌍하다.
최근 회사일로 힘든 일을 겪었고 (앓던글. 코로나백수가 된다는 것 참조), 1년 반이나 이어진 재택근무에 가뜩이나 좁은 집에서 햄스터처럼 붙어 있는 탓도 있었겠고. 외쿡인은 첨이라 서로 알아가며 문화충격도 적지 않았을게다.
외국에서 10년 이상을 떠돌이처럼 살아오며 그토록 기다려왔던 진정성 있는 남자임에도, 소싯적 어린 치기에 남친을 막대하던 버릇이 다시 올라오는 이유는 뭘까. 안맞아서일까. 내가 못돼서일까. 누구말처럼 배가 불러서일까.
코로나 커플로 만나 언제 끝날지 모를 코로나 감옥에서 고국땅을 밟을 그날만을 기다리는 유배자의 심정 이라서 여유가 부족한 탓일까.
코로나 커플이라서 같이 해본 것이라곤 책상 나란히 두고 재택근무하기, 서로의 컨퍼런스 콜을 엿듣기, 손바닥만한 싱가폴에 갇혀서 호텔 스테이케이션(Staycation)하기, 장보기, 가구사기, 자전거 타기, 쇼핑하기 등 뻔하고 한정되고 지루한 데이트만을 되풀이 하다보니 권태감이 일찍 찾아와서 일까.
언제쯤 이 친구를 한국에 데려가 여기저기 구경도 시켜주고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러 갈 수 있을까.
점점 더 여유 없어 지고, 뾰족해져만 가는 우리 코로나 커플은 언제쯤 편해 질 수 있을까.
그래도 이 친구 덕에 코로나 백수가 될 뻔했던 위기도 극복하고 타지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그나마 재미나게 코로나 시대를 살아왔음에도...
문득 날카로워진 내 자신의 무례함과 조급함과 여유없음을 마주할 때마다 남탓을 하다가도 죄책감과 자괴감이 밀려온다.
마흔넘은 누나를 선택해준 이 친구에게 좀더 부드러워 져야 겠다는 다짐은 이제 매주 일상이 되었다.
제발 다음주에는 다투지 않기를...
그렇게 오늘도 버릇처럼, 코로나 시절을 잘 넘기고, 함께 여기 저기, 구석구석 자유롭게 여행하고 돌아다니는 평범한 커플의 삶을 꿈꿔본다.
PS. 그러고보니 우리는 첫뽀뽀도 마스크 끼고 했더랬다. 언젠가는 이 모든 비정상이 추억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