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회사를 다니며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원래는 주 40시간 (넘게) 근무하는 풀타임 직장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아주 적은 시간만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궁금하실 것 같아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여러분도 가능하십니다. 저는 지금 육아휴직과 비슷한,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를 활용해서 이렇게 일하고 있거든요.
물론 실행에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요. 당시 저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겹쳐, 육아휴직을 다 소진하고 퇴사까지 생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저도 이 제도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이래도 정말 괜찮을까', 하며 주 15시간 근무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으로 인해서 저와 제 가족들의 삶이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껴요.
지금의 삶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 월, 화, 수 3일만 출근합니다. 9시부터 3시까지만 업무를 보고요. 회사와 집이 멀어서 출근하는 날은 신랑이 아이들을 등원시키지만, 그 외의 날들은 모두 제가 아이들의 등하원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등원 때 아이의 하루를 응원하며 꼭 안아줄 수 있다는 것. 하원할 때 엄마를 부르며 달려 나오는 아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모두 제 삶의 만족도를 크게 높여줍니다.
출근하지 않는 목요일에는 주로 밀린 집안일을 합니다. 계절에 맞게 옷장을 정리한다거나, 아이들이 쓰지 않는 장난감과 책을 처분하는 등 따로 시간을 내야 할 수 있는 집안일을요. 이 날은 큰 아이의 방문수업이 있어 선생님이 집으로 오시기 때문에, 평소보다 아이들 하원도 이르고 집 청소에 신경을 쓰는 날이기도 해요.
그리고 금요일에는 주로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을 냅니다. 사실 일하는 엄마에게는 휴일이 없습니다. 일주일 7일이 모두 근무일이지요. 이 날은 제가 저만의 휴일로 정해둔 날입니다.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운동을 하거나 미용실을 가기도 해요. 가끔은 집에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빈둥대기도 하지요. 이 날의 몇 시간만큼은, 내가 맡은 모든 역할을 툭 내려놓고 쉽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일하는 워킹맘의 삶이라기에는 꽤나 여유롭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근무시간을 줄여 생활을 하면서 저도 매번 놀라고 있거든요.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고요.
좀, 다르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를 키우며 풀타임으로 회사를 다닐 때가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떤 하루들을 보냈는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바쁘고 버겁게 보냈다는 뜻이겠지요. 제 주변의 다른 워킹맘들도 다들 그랬었어요. 그래서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이 방법밖에 없는 거구나 하고 그냥저냥 살았습니다. 선배 워킹맘들의, 조금만 더 버티면 나아진다는 말만을 되뇌면서요. 아이가 돌이 지나면, 어린이집을 가면, 조금 더 크면. 어쨌든 지금은 어쩔 수 없는 거구나, 그때가 언제 올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때까지는 버텨야 하는구나, 하고요.
아무도 나에게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첫 아이를 낳고 기를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힘들게 워킹맘 생활을 버텨내거나,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육까지 이십몇 년을 마치 사회 속에서 이 자리를 얻기 위한 것처럼 살았는데, 갑자기 일을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일도 중요했던 저에게 풀타임 워킹맘의 삶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가진 이상, 그냥 닥쳐온 일이었지요.
"그래, 일을 그만두는 건 너무 아깝잖아. 애들이 조금만 크면 더 수월해진대. 혹시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실 수 있으셔?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 이모님을 써야지. 참, 가사도우미는 쓰고 있지?"
첫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한 후, 복직을 앞둔 저에게 선배 워킹맘들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것뿐이었습니다. 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다른 방법이 안보였거든요. 그나마도 저는 육아휴직이라도 비교적 자유롭게 쓴 편이에요. 저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선배들 중에는 아이를 낳고 짧게는 100일, 길어야 6개월 만에 복직한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야 했던 때였어요. 복직한 후, 제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도 저 말들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선택할 수 있기를
제가 두 번째 육아휴직을 마치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통해 복직했다는 사실이 (그것도 주 15시간 근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회사에 알려지고 나자, 여자동료들이나 후배들에게서 메신저가 많이 왔습니다. 어떤 제도인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그럼 월급은 얼마나 받는지 많이들 궁금해했어요. 다들 그 제도가 있는 건 알았지만 정말로 쓸 수 있을 줄은 몰랐다며, 저보고 대단하다고 했습니다. (대단히) 용감하다는 얘기였죠. 그러나, 저라는 첫 케이스 이후, 한두 달 사이에 벌써 두 명이나 더 그 제도를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에 대해 모르는 분들도 많지만, 알면서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요. 주변에 이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실제로 어떤지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면 용기내기가 쉽지 않지요. 근로시간 단축을 선택하기까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것을 감수했는지, 막상 근무시간을 줄여서 살아보니 어떤지. 저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라도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저 역시 근로시간 단축을 할지 말지 고민할 때, 실제 사용했던 분들의 후기를 찾지 못해서 불안했었거든요.
사실, '적은 시간 근무하는 삶'에 대한 제 개인적인 만족도는 매우 크지만, 여기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근무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월급이 줄어든다는 큰 단점이 있어요. 그리고 근무시간이 줄면 배분되는 업무의 양도 줄어야 하는데, 맡은 일의 종류에 따라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선택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 있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떠밀리듯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과, 여러 가지를 신중히 고민하고 선택해서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래서 제 이야기의 많은 부분은, 제가 생각하는 삶에서의 소중한 가치와 그 가치의 경중을 재어보는 고민들로도 채워질 것 같습니다.
신형철 작가의 어느 글에서 인생은 질문하는 만큼 살아진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도 어느 한 때,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십몇 년차 직장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스스로에게 여러 차례 질문했고, 그 답의 결과로 많이 달라진 삶을 꾸리고 있으니까요. 만약 여러분께도 삶의 어느 순간이든 스스로에게 비슷한 질문을 하게 되는 때가 온다면, 제 이야기가 위로나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