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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미음 Mar 31. 2021

안정, 변수, 또다시 폭발.

예상치 못 한 일은 언제라도 생긴다.

꾸준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전보다 주변 상황이 좋아졌다. 코로나 확진자 수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단 며칠이라도 갈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에 단 두 번, 점심밥 한 끼라도 나 혼자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크나 큰 탈출구가 되었다.




우울증이 호전되어간다고 느꼈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갔고 작게나마 평안함을 느꼈다.

치솟던 분노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으며, 거슬리던 사소한 소음쯤은 참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끝없는 요구와 투정에도, 윗집의 소음에도 어느 정도 눈 감고 지나갈 수 있게 되었다.

매일매일 식사 시간 챙기기가 너무도 싫었는데 이젠 '아이들 덕분에 나도 밥을 잘 챙겨 먹을 수 있다. 애들이 날 움직이고 먹게 해서 나를 살린다.'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 한 일은 언제라도 생긴다. 잠시나마 방심했던 틈을 타서 변수가 생겼다. 

2020년 11월, 코로나의 확산.

인근 초등학교 학생의 확진, 내 아이의 같은 학교 동급생이 밀접 접촉자로 지정됨으로 인한 등교 중지.

- 학교로부터 실시간 알림장을 받아본 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피해의식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새롭게 계약을 체결한 일도 코로나로 인해 못 하고 있는 처지인데, 

우리 아이들은 흔한 놀이터, 공원, 학원도 제대로 못 가보고 학교&어린이집-집에서만 지내고 있는데, 

여기저기 마음대로 쏘다니는 사람들 때문에 당장 내가 또 피해를 봐야 한다. 

(내 아이를 집에서 돌보는 것이 왜 피해 보는 것인가-는 여기서는 논외의 문제다.)


호전되어 간다고 여겼던 우울증이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다시 폭발했다. 

아직까지도 주변 상황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수준이다.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거기에 생리 전 증후군까지 겹쳤다. 약을 먹어도 소용없는 1주일을 간신히 버텨냈다.




일반적으로 공황장애는 최소 2년, 필요에 따라 또 개개인 상태에 따라 그 이상 약을 먹으면서 치료해야 한단다. 

우울장애 역시 3년이고 10년이고 개개인의 상태와 환경변화에 따라서 또 계절에 따라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꾸준히 지켜보고 상담하면서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우울장애인데다 그 뿌리가 너무 깊어서 상담 및 약물 치료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경과를 당장 예단할 수 없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함께 노력하자고 하셨다. 


하긴, 30년을 끌어안고 살아온 우울장애가 단 3개월의 치료로 호전될 리가.

꿈이 커도 너무 컸다. 


우울의 우물 안에서 희망의 풍선을 타고 두둥실 떠오르다가 그만 뻥 하고 터져서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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