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었는데요 가까웠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강원도 여행이 그렇게 인기라더니, 일찍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가는 길이 꽤 막혔다. 길 막하는 데에만 신경 쓰다가 마지막 휴게소를 놓쳤고, 멀미를 심하게 앓으신 할머니는 결국 점심도 못 드셨다.
강원도는 그토록 먼 곳이었다.
오래 쓴 가구의 경첩 부분이 대개 그러하듯이 할머니의 몸도 직선이 끝나고 새로운 직선이 시작되는 구간마다 성한 곳이 없다. 그래서 평소에는 주로 누워 계신다. 침대에 누워서는 라디오를 들으시고 소파 앞에서는 TV를 보신다. 엄마는 그런 유를 답답해한다. 좀 움직이셔야 한다고.
할머니가 움직이지 않는 건 반쯤 엄마 덕분이다.
딸이랑 함께 사는 집에서 유는 청소도, 설거지도 할 필요가 없다. 가끔 나물을 다듬고 빨래를 개키지만 딸을 노모에게 도통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 다치고 아플까 봐서다. 할머니는 이제 뼈도 쉽게 부러지는 데다가, 평생을 일만 하면서 살아온 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
엄마는 할머니가 노동 대신 운동을 하기를 바랐으나, 유의 하드웨어는 더 이상 운동스러운 운동을 수행하기엔 어려운 상태라 걸어 다니기 까지가 최선이었다. 얼마나 약한 상태냐면, 스트레칭마저도 자칫했다가는 갈비뼈나 척추가 바스러질 수도 있는 정도다. 그러니 살살 걸어 다니기 정도가 최선인데, 걷기를 하기엔 동기부여가 부족했다. 동네에 지인도 딱히 없고, 코시국이라 자매와도 통화만 한 지 벌써 몇 개월 째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희의 아이디어였다. 희는 유에게 우리 함께 떠나 모녀만의 추억을 쌓고 싶으니, 공원 좀 돌면서 차근차근 하체를 단련해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놀러 가려면 힘을 키워야 한다고 말이다. 나는 순간 할머니가 '아휴 이 나이 먹고 놀러 가기는 뭘 놀러 가, 무릎도 아프고 너도 고생이다 얘 됐어'라고 하는 모습을 상상했으나, 유는 맘에 없는 소리가 입에 밴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
짧은 답변. 우리 신랑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단호박인 편인 우리 할머니 말투를 틈만 나면 흉내 내고는 한다. 고상하고 세련된 어휘를 애써 찾아 헤매거나 어른으로써 의미 있는 조언을 남기려 애쓰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처럼 가벼운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그런 노인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당신을 '나'로 칭하거나, 아예 생략한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할머니가 해줄게'를 종종 들었던 것도 같다. 지금은 '응 그거 내 거야'라던가, '내 가방 앞 주머니에 있어'라던가, 혹은 '이리 주면 돼'처럼 '나'라는 지칭 명사 자체를 안 쓰시기도 한다. 할머니는 마치 스스로를 그 어떤 호칭에도 구애받지 않는 존재로, 그냥 '나' 자신으로 정의하시는 듯하다.
우리 할머니는 자유롭구나.
유를 항상 '자유로운 자'로 정의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유의 속을 도통 모르겠다고, '잘 모르겠는 자'로 여기던 편이었다. 우리 아빠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자주 얘기하는데, 아빠보다 더 늙은 할머니는 캐묻지 않는 이상 입을 잘 떼지 않으신다. 속으로만 삭히고 삭히다 아예 잊으신 건지 싶다가도, 그렇게 억울한 표정은 또 아니어서 나는 그런 할머니가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낯설었다.
화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핀잔도, 잔소리도 딱히 없는
작고 하얀 여자로 살아간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우리 집에서 몸무게가 제일 가벼운 유는 입도 무겁고 표현도 무겁다. 할머니는 나의 엄마가 나에게 하듯이 엄마를 대하지 않았다. 희는 나를 걱정하고 아끼고 안아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유가 희를 쓰다듬거나 매만져주거나 손가락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냉담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희를 보고 그린 '엄마'의 정의에 비하면 유의 온도는 좀 먼 편이다.
희가 온몸을 던져 사랑을 쏟아내는 방식은 아무래도 유에게서 배운 건 아닌가 보다고, 그러면 우리 엄마는 어디서 이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걱정도 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집이 아닌 곳에서 엄마라 불리는 두 여자와 시간을 보내고서야 깨달은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희의 온도는 내가 걱정할 게 아니었다. 둘째, 유는 자기 스스로 존재하는 사람이다.
희는 태양 같은 사람이라, 주변에 온도를 뿌릴지언정 다른 사람의 온도를 탐내지 않는다. 연료를 투입해야 타오르는 화력발전소마냥 열효율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고, 엄마 같은 사람도 있다. 태양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소모하지 않는 건 아니다. 핵융합이 끝나면 적색거성인가 백색왜성인가가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리고 그 이후로도 세대에 세대를 걸쳐 오래오래 따스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유는 다른 차원의 존재다. 유는 어쩌면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건강한 정신세계의 소유자다. 유도 한때는 시집살이에 마음을 태웠고, 고추를 더 중히 여기고, 담배 좀 끊으라는 잔소리를 달고 살았으나, 모두 한 때의 일이다.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과거가 없는 건 아니다. 부러운 점은, 그럼에도 지금을 살아간다는 점이다.
여느 날들에 비하면 지금의 유는 몸 구석구석이 쿠크다스여서 기껏 케이블카 타고 올라와도 겨우 정류장 안과 밖 벤치에나 앉아있다가 도로 내려가야만 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이미 몇 번 와 봤으니 괜찮다던가, 너네가 즐거운 게 더 중요하다던가, 그런 차원의 여유가 아니었다. 이 나이 먹고도 여기까지 왔으니 만족한다는 식의 타협도 아니었다. 그 어떤 거창한 의미부여가 없어도 충분히 현재를 산다.
할머니는 마치 '라떼시절'의 '검은 백조' 같다. 나이를 먹는다고 누구나 다 과거에 집착하는 건 아님을 증명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아자아자 노인도 할 수 있어! 식의 모범 전형에 편승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인생의 산첨고랄을 까맣게 잊은 것도 아니면서 현재를 살 수 있다니. 사회가 부여하는 여러 역할 중 하나에 자신을 끼워 넣지 않아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제일 부럽다.
그런 점에서는 희도 자기 엄마를 꽤 닮은 듯하다. 호칭은 사람 간 관계를 정의하기 위한 장치다. 희는 나와 대화를 할 때 '내가'와 '엄마가'를 섞어 쓰지만, 그렇다고 엄마라는 직책에 매여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내가 굳이 희를 희라 부르지 않아도 희의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은 많기 때문이다. 정체감이 명확한 사람은 몇몇 호칭이 더 많이 들리거나 덜 들린다 해도 휘둘리지 않는다. 파도처럼 오고 가는 속에 해안가에 뭐가 남을지 전전긍긍하지 않는 점이 닮았다.
앞바다의 깊이, 수평선 위의 풍속과 해수면 아래 유속이 어느 방향으로 몰아치는지에 따라 어떤 풍경의 해안가가 될지 결정된다. 뽀얗고 고운 모래사장이 남을 수도, 반대로 무겁고 굵직한 바위만 남기고 모두 깨끗하게 쓸려가기도 한다. 내가 괴롭다고 보내버리거나 외롭다고 붙잡으려 하다가는 날개 달린 새도 밀물에 빠져 죽는다.
바위섬이 갈매기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할 뿐이다. 희는 희대로 세상을 사랑하고, 유는 유대로 삶을 사랑한다.
멀미에 시달리고 나서도 할머니는 아무것도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멀미를 했다면 운전자보다는 쉬운 타깃인 약해 빠진 내 몸뚱이라던가 개같이 운전하는 인간들에게 화살을 돌렸을 것이다. 아니면 강원도는 왜 이렇게 머냐고 좌절하거나 분노했겠지.
강원도는 잘못한 게 없다. 세상 모든 일에 인과관계를 찾고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이유는 대개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틀렸다는 두려움,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선 인과관계와 선후관계를 혼동하지 않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