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렌더링 Dec 29. 2021

새로운 문법, 이모티콘

이모티콘 시장의 성장 배경과 카카오가 그리는 미래

이모티콘이 없는 카카오톡을 상상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느새 일상적 소통의 당연한 일부가 돼버린 이모티콘, 이제 카카오에서 매달 단돈 4,900원에 이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문자 메시지 대체의 일등공신, 이모티콘


카카오톡과 문자 메시지(text message) 모두 텍스트를 활용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그러나 텍스트 위주의 소통 방식은 대면 담화나 통화와 같은 의사소통 방식에 비해 표현 방식이 다소 제한된다. 사람들이 서로 직접 대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에서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 표현 방식이 나타난다; (1) 언어적 표현, (2) 반(半)언어적 표현, (3) 비언어적 표현. ‘언어적 표현’은 '언어(말)'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것이고, ‘반언어적 표현’은 언어에 수반되는 음성적 요소로 ‘목소리의 억양, 어조, 강약, 높낮이’ 등을 지칭한다. '비언어적 표현'은 언어 외적인 표현으로 ‘표정, 몸짓, 손짓’ 등을 의미한다.
.
가령 A가 B에게 “저쪽 하늘에서 진짜 큰 비행기가 지나갔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하자. 하나의 언어로 구성된 이 문장 자체는 ‘언어적 표현’에 해당한다. A가 여기서 ‘진짜’나 ‘큰’과 같은 수식어에 강세를 주어 말하면 여기에 ‘반언어적 표현’이 추가된다. 그리고 A가 말을 하며 비행기가 지나간 하늘을 가리킨다면 이는 ‘비언어적 표현’에 해당하는 셈이다.
.
하지만 전화를 통해 두 사람이 의사소통을 할 경우, 소통 수단으로 ‘소리’만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1) 언어적 표현과 (2) 반(半)언어적 표현은 활용이 가능하나 (3) 비언어적 표현은 상대에게 전달되기 어렵다. 전화가 아닌 텍스트 위주의 소통 방식의 경우, (2) 반(半)언어적 표현 또한 활용하기가 어려워져 결국은 온전히 (1) 언어적 표현으로만 이루어진 소통 방식을 취하게 된다.
.
언어학적인 설명은 이쯤 해두고 다시 ‘문자 메시지’라는 시스템을 살펴보자. ‘문자 메시지’는 상술된 듯이 텍스트 위주의 유료 소통 방식으로써, 건당 요금이 부과되며 메시지가 일정 크기(SMS/MMS)를 넘어가면 추가 요금이 부과됐다. 대면 소통 방식과 비교했을 때 표현 방법이 다소 제한적이었기에 사람들은 텍스트와 더불어 ^^, ㅇㅅㅇ, :), :D와 같은 짤막한 비언어적 표현을 섞어 문자를 보내곤 했다.
.
이러던 중 2010년에 카카오톡이라는 무료 메신저 플랫폼이 출시됐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텍스트의 길이ㆍ전달 파일 유형에 구애 받지 않고 의사 소통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지점에서, 그림과 텍스트가 조합된 이모티콘은 ‘더 다양한 표현 방식을 활용하고 싶다.’라는 사람들의 니즈를 해소해주었고 카카오톡은 의사소통 플랫폼으로써 문자 메시지에 우위를 점하게 됐다




이모티콘의 정착과 확대


이모티콘이 한국에서 활발히 활용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한국 특유의 문화를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우회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일례로, ‘거절’이 미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국 특유의 사회 특성상 사람들은 거절할 때도 최대한 무례하지 않아 보이고 싶어한다. 따라서 최대한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내비치려 함에도 언어적 표현만 활용해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 지점에서 이모티콘과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미 전달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화를 끝내고 싶을 때 괜히 이모티콘을 하나 사용하는 것도 “대화를 끝내고 싶다”라는 메시지의 우회적 표현 전략이 아닐까?
.
반대로, 직선적 의미 전달을 보조하기 위해 이모티콘이 사용되기도 한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이모티콘 라인업 가운데 하나로 오버액션 토끼 시리즈를 꼽아볼 수 있다. 토끼를 비롯해 곰ㆍ강아지ㆍ고양이 등의 캐릭터가 특정 액션을 취하는 형식의 이모티콘 시리즈이다. 이모티콘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캐릭터들은 다소 과장된 액션을 취하고 있다. 이모티콘 시장에서 오버액션 토끼 시리즈 외에도 필요 이상의 과장된 액션을 취하는 이모티콘 시리즈를 더러 찾아볼 수 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더욱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 측에서 오해 없이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하는데 과장된 액션이 포함된 이모티콘은 이 목표 달성을 더욱 수월케한다.
.
이모티콘은 결국 이용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더욱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의미 보조의 수단으로써 정착돼왔다. 때로는 감정을 추가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장치로써 활용됐으며 때때로는 특정 행동을 묘사하기 위한 장치로써 활용됐다. 이처럼 사람들은 카카오톡이라는 의사소통 방식에서 이모티콘을 수식어술어와 같이 하나의 문장성분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
카카오는 자사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이모티콘과 더불어 웹툰 및 캐릭터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모티콘의 종류를 더욱 늘려갔고 급기야 2017년 4월에는 더욱 다양한 이모티콘 발굴을 위해 '카카오 이모티콘 스튜디오'를 열었다. 이모티콘 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이용자들은 이모티콘을 단순한 의미 보조 수단에서 자기표현(개성)의 수단으로도 활용해왔다.
.
당장 카카오 이모티콘샵에 들어가서 ‘사랑’이라는 키워드만 찾아봐도 448개의 이모티콘 세트를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이모티콘 세트에 포함된 ‘사랑 이모티콘’을 포함한다면 그 수는 훨씬 많으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이용자들은 ‘사랑’이라는 같은 감정이더라도 훨씬 다양한 캐릭터나 매개체를 통해 이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주어진 상황과 맥락에서, 어떤 이미지로 상대에게 보이고 싶은지에 따라 이용자들은 메시지와 함께 메시지를 전달하는 본인의 모습까지도 이모티콘을 통해 드러내게 됐다. 즉, 이모티콘이 ‘수식어와 술어’의 역할을 넘어 ‘주어’의 역할까지도 보조하게 된 셈이다.
.
그러나 이용자들이 매번 맥락에 따라 보유 중인 이모티콘 가운데 더 본인에게 적합한 이모티콘을 일일이 찾아 전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경우, 메시지를 보내는 데 시간이 더 오래 소모돼 소통의 동시성이 저해되게 때문이다. 따라서, 이용자들은 소위 쓰던 이모티콘만 계속 사용하게 됐고 어느새 그 몇 개의 이모티콘만이 본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했다.


'이모티콘 플러스'의 시대, 멀티 페르소나의 표출


이에 카카오에서는 2021년 1월, 카카오톡 이모티콘을 월정액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 플러스' 서비스를 출시했다. 매달 4,900원만 지불하면 150,000개에 달하는 모든 이모티콘을 사용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이모티콘 세트를 최대 5개까지 바꿔가며 다운로드할 수 있고 대화나 상황에 따라 더 적합한 이모티콘을 추천해주는 기능도 제공한다.

.

'이모티콘 플러스' 서비스가 기존의 이모티콘 구매 방식과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더 이상 이모티콘을 세트 단위로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비록 이모티콘 세트를 5개까지 다운받을 수 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이 통상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할 것 같은 이모티콘들에 불과하며 이용자들은 각 상황에 맞춰 훨씬 다양한 이모티콘들을 낱개로 탐색해 사용할 수 있다.

.

이용자들이 기존에는 여러 이모티콘을 보유하고 있다한들 번거로움 때문에 일부의 이모티콘만을 반복적으로 활용했다면 이제는 대화 맥락에 따라 더욱 적합한 이모티콘을 무제한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앞서 제시한 '사랑'이라는 이모티콘의 사례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전에는 내가 구매한 이모티콘들 가운데에서 '사랑'에 해당하는 이모티콘을 찾아 활용해야만 했다. 즉, 이미 내가 나의 정체성이라고 규정한 이모티콘들 사이에서 맥락에 더 맞는 이모티콘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채팅창에 치면 448개 이상의 '사랑' 이모티콘 가운데 상황과 상대에 따라 더 내가 보여지고 싶은 이미지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요약하자면 '카카오톡 플러스' 서비스에서 세트 단위로 내가 다운로드하는 이모티콘은 나의 가장 보편적 정체성인 셈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시작해 상대에 따라 서로 다른 낱개 이모티콘을 추가적으로 활용해나가며 상이한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구축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연인ㆍ친구ㆍ직장 동료 등,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카카오에서 최근 선보인 멀티프로필 기능은 사람들의 이러한 특성과 니즈를 반영하고 있다. 이모티콘 플러스의 등장 또한 멀티프로필 기능과 그 결을 같이한다고 생각한다. 각 사람이 보유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정체성을 인정하고 이를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최대한으로 보조한다는 기조를 표방하는 것 같다. 한 개인에 대해서 더욱 입체적인 스케치를 할 수 있게 된 카카오는 이로써 초개인화 서비스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