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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민 Jul 21. 2024

미국은 어떻게 자본주의 세계의 종주국이 되었을까?-2부

거대한 국토를 연결하며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한 산업혁명의 총아, 철도

  인류사를 보면 갑작스럽게 팽창한 대제국이 그로 인해 내분을 빚으며 분열하고, 심지어는 그 분열을 이기지 못한 채 팽창한 직후 멸망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건설한 헬레니즘 제국은 대왕이 요절한 직후 여러 왕국들로 분열했고, 서로마를 멸망케 만들고 전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훈족의 아틸라 제국은 지도자이자 구심점이었던 아틸라가 급서한 직후 급속히 와해되며 소멸했다. 한때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 자리까지 노렸던 중앙아시아의 강대국 호라즘 제국이 칭기즈 칸이 지휘하는 몽골 기병대의 맹공 앞에 순식간에 와해하며 몽골 제국의 세계정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제물로 전락했던 배경에도, 호라즘 제국이 너무 빠른 속도로 영토를 확장한 탓에 내부의 결속력이 되려 취약해져 버린 문제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너무 빠른 속도로 팽창한 대국이 그 때문에 되려 분열하고 몰락해버린 사례에서, 미국이 예외가 되지 말라는 보장도 할 수 없었다. 실제로 미국은 남북전쟁(1861~65)이라는 피비린내나는 분열과 내전을 겪지 않았던가. 남북전쟁은 얼핏 보면 노예제를 둘러싼 ‘선과 악의 대립’처럼 보일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상공업이 발달했던 미국 북부와 대규모 면화농장 위주의 경제구조를 가졌던 남부의 이해관계 차이, 그리고 강력한 연방정부를 중시하는 연방주의(북부)와 각 주의 자치권 극대화를 추구하는 반연방주의(남부)의 대립이 폭발한 결과였다. 빠른 속도로 팽창한 거대한 영토는 자칫 미국의 자본주의 발전은 물론 국가의 안정의 발목까지 잡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국에게는 또다른 천운이 따랐다고 볼 법한 것이, 미국이 영토를 대대적으로 확장했던 19세기 중·후반은 산업혁명이 서구 각국으로 퍼져가며 그 절정기를 열어가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산업혁명의 절정은 철도와 열차로 그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다. 강철 선로를 증기의 힘으로 달리는 철도는 기존의 우마차나 내륙수로 같은 교통수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효율적이었다. 사실 초창기 기차의 속력은 시속 30㎞ 정도에 불과해, 우리가 생각하는 기차의 속도보다 훨씬 느렸다. 하지만 기차의 증기기관은 소나 말 같은 동물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낼 수 있었고, 계속해서 달리거나 움직이면 지치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 가축과 달리 연료 공급이 뒷받침되고 주기적인 수리와 정비가 이루어진다면 긴 시간동안 계속해서 쉬지 않고 달릴 수도 있었다. 열차는 기계의 힘으로 달리는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속도를 통제하기도 쉬우며, 그러다 보니 정해진 시각에 정확하게 역에 도착하고 출발할 수 있다는 또다른 장점도 지녔다. 보니 여러 량의 객차 또는 화차를 이은 기차는 대량의 여객과 화물을 우마차난 운송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기차는 철로를 부설한 곳으로만 갈 수 있고 역에서만 정차할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자동차가 보편화되지 못했고 여전히 우마차가 교통수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19세기 중반의 관점에서 이는 단점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운송의 효율성만으로 보면 내륙하천을 오가는 증기선도 철도 못지않게, 또는 그 이상으로 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증기선은 하천, 그 중에서도 선박이 항해하는 데 문제가 없을 정도의 폭과 깊이를 가진 하천, 아니면 운하로만 항행할 수 있다. 반면 열차는 철로가 놓인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물론 철도부설도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지만 운하에 비할 바가 아니며, 한 번 철도를 부설하면 오랫동안 그 선로를 쓸 수 잇다는 장점까지 가진다. 19세기 철도와 기차의 위상은 오늘날의 인공지능이나 스텔스 전투기에도 뒤지지 않는 기술혁신과 국력의 상징이었고, 당대의 열강은 앞다투어 철도부설에 열을 올렸다.

  국토가 거대하고 특히 중·서부의 인구밀도가 여전히 낮은 미국의 지리적 특성상, 철도는 마치 미국을 위해 등장한 발명품과도 같았다. 영국에서 최초의 상용철도가 개통된 지 5년 뒤인 1830년 미국 북동부의 도시 볼티모어와 일리코트(Ellicott)를 잇는 길이 20㎞의 철도가 부설된 것을 시초로, 미국 철도망은 빠른 속도로 미국 전역에 부설되기 시작했고 철도산업은 눈에 띄게 발달해 갔다. 인구에 비해 국토가 넓은 데다 빠른 속도로 영토가 커져 갔던 미국의 철도는 유럽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미국의 철도노선 총연장은 1840년대 약 8천 ㎞, 1850년대에는 3만 2천 ㎞로 증가했으니 십수년만에 400배, 3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무려 1,600배나 증가한 셈이며, 남북전쟁 발발 직전인 1860년을 전후해서는 미국 철도의 총연장은 영국, 프랑스, 독일 철도의 총연장을 합한 길이보다도 더 길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또한 당대 자본주의와 산업화의 선도주자였고 철도부설에 앞장선 나라였고,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철도부대까지 운영하며 병력과 군수물자의 수송에 철도를 적극 활용했던 나라였음을 감안하면, 과장을 조금 보태어 19세기 중‧후반 미국의 경제와 사회는 철도가 주도했다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 싶다.

  철도는 여객은 물론 재화와 물자의 수송도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 덕분에 미국 내에서의 물류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면서 경제의 생산성도 한층 증가했다. 철도 덕분에 증가한 물자수송의 속도, 효율성, 정시성의 증가와 비용의 감소는 물자의 생산과 유통을 크게 촉진했고, 이는 상공업의 발전과 경제규모의 확대로 이어졌다. 철도와 기차를 만드는 데는 품질 좋은 강철이 많이 쓰였고 기차가 움직이려면 대량의 석탄이 필요했으니, 철도 노선이 늘어나고 기차의 사용량이 많아질수록 산업자본주의의 근간이었던 철강업, 석탄산업의 양적‧질적 발전도 자연히 뒤따랐다. 철도 자체가 생산하는 이윤도 상당했다. 1880년대 미국에서는 철도 간설 부문에 20만 명, 철도 운용 부문에 25만 명의 노동자들이 고용되었고,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에서 1895에 이르는 기간 동안 생산된 철강의 절반 가까이가 철도 건설에 쓰일 정도였다.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미국 서부와 태평양 연안, 그리고 미국 중‧동부를 경제적으로 통합했다.(https://www.historictrains.org/railroad-maps)

              

  이러한 철도는 서부 영토를 비롯한 미국 전역을 아우르며 미국의 경제를 통합했고, 그렇게 통합된 경제는 지역 간 불평등이나 불균형, 또는 특정 지역의 고립이라는 자본주의를 위협할 요인을 줄이며 미국의 경제와 자본주의를 더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869년 5월 10일 완공된 미국 대륙횡단철도의 첫 노선(중태평양 철도(Central Pacific Railroad),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네브라스카주 오마하)은 미국 중부와 서부 해안을 철도를 통해 온전히 이었다. 이는 철도를 통한 미국 경제의 지리적 통합이라는 대전환점이었다. 중태평양 철도의 완공을 시발점으로, 20세기 초반까지 미국 전역에는 여러 대륙횡단철도 노선의 부설이 이루어지며 미국 서부와 태평양 해안지대는 중부, 동부와 조밀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 말이나 포장마차를 탄 카우보이들이 풍찬노숙하며 개척했던 미국의 서부 영토는, 대륙횡단철도 덕분에 19세기 후반 이후 동부, 중부와 긴밀하게 연결되며 미국 경제에 온전히 통합될 수 있었다. 미국 서부는 카우보이의 땅이 아닌, 미국 자본주의 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땅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대륙횡단철도의 서쪽 종점인 미국의 태평양 연안 해안도시들은, 태평양을 미국 경제의 영역으로 편입하며 20세기 이후 미국이 자본주의 세계를, 나아가서는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자본주의 종주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가 미국과의 무역, 경제교류와 협력에 의존하는 부분이 절대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미관계가 우리나라의 경제, 사회, 외교, 안보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미국 철도, 특히 대륙횡단철도는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와 경제는 물론, 외교와 안보, 사회와 문화 등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미국 철도망은 미국 전역을 연결하며 미국을 자본주의 세계의 종주국으로 떠오르게 해 주었을뿐만 아니라, 미국 자본주의의 태평양 진출을 가능케 해 주어 한미관계를 물리적‧지리적으로 가능케 해 주고 한국 자본주의 발달에까지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표현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잠깐 우리나라로 돌려 보면, 한반도는 엄연히 유라시아 대륙과 연결되는 반도이다. 한반도는 이미 고대부터 유라시아대륙과 활발히 교류하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형성‧발전되어 온 땅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철도를 통해 만주, 중국과 연결되었으며 고등학교에서 기차를 타고 만주로 수학여행을 다녀 온 사례도 있다. 하지만 분단현실로 인해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한반도는 마치 유라시아대륙과 단절된 하나의 섬처럼 여겨지고 있으며, 이로 인한 물류 등의 불이익 등도 무시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정부는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가 현대판 실크로드라 부르며 추진하고 있는 유라시아를 총연장 약 14만㎞의 고속도로로 잇는 계획인 아시안 하이웨이(Asian Highway)에 참여해 오고 있지만, 분단현실로 인해 한반도가 아시안 하이웨이를 따라 유라시아와 또다시 물리적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우리나라가 통일, 그리고 세계에서의 경제적‧사회적 위상 제고를 위해 미국의 철도발달사 및 철도망이 미국 경제와 자본주의 발달에 미친 경제지리적‧역사지리적 영향과 의미에 주목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앨런 그린스펀‧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저, 김태훈 역, 2020,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세종.

황유정 저, 2020, 《미국과 캐나다: 자연‧산업과 도시들》, 이담.

Winchester, S. 2013. The Men Who United the States. New York: Har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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