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가 바라보는 시니어

사회의 기둥인 시니어 세대가 나서야 되지 않을까 사회에 어른이 없다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며


40년 넘게 회사를 다니고 얼마 전 정년퇴직을 맞은 나는, 요즘 동년배들과 만날 때마다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 우리가 과연 이런 모습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해도 되는 것인가. 이 질문이 밤잠을 설치게 만든다.


퇴직 후 3년이 지나면서 내가 목격한 우리 세대의 민낯은 참으로 참담했다. 한때 대한민국의 기둥 역할을 했던 우리가 이제는 사회의 짐이 되거나, 아예 존재감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꿈꿨던 노후의 모습인가.


세 부류로 갈라진 우리의 현주소


냉정히 관찰해보니, 우리 시니어 세대는 명확히 세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첫째, 사회에 봉사하는 세대


전체의 20% 정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퇴직 후에도 멈추지 않는다. 동네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청소년 멘토링에 참여하며, 홀몸노인을 돌보는 일에 발 벗고 나선다.


내 대학 동기 김 모씨는 퇴직 후 지역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청년 일자리 창출에 힘쓰고 있다. 또 다른 동기는 매주 두 번씩 쪽방촌을 찾아 독거노인들의 말벗이 되어준다. 이들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동시에 부끄러워진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젊은 시절 사회가 우리를 키워줬으니, 이제 우리가 사회를 키울 차례"라고.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불꽃이 살아있다.


둘째, 사회를 좀 먹는 세대


가장 문제가 되는 집단이다. 전체의 30% 정도로 추산된다. 이들의 모습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지하철에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받는 것을 당연시하면서도, 정작 자신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르신이 타면 모른 척한다. 식당에서 직원들에게 반말하고 큰소리치는 것을 자신의 권리라고 착각한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며 혀를 차지만, 정작 자신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어떤가.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극단주의에 매몰된 이들이다. 온라인에서 가짜뉴스를 무분별하게 퍼뜨리고,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댓글을 쏟아낸다. 자신들이 살아온 시대의 가치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 변화하는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아파트 동대표를 하는 한 지인은 이렇게 푸념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우리를 무시한다"고. 하지만 실상을 들어보니 그가 직원들을 하대하고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셋째, 방치하는 세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집단이다. 전체의 50% 정도. 이들은 그저 조용히 살고 싶다며 모든 것을 포기했다.


"나이 들어서 뭘 하겠어", "이제 쉬어야지"라는 말로 자신의 무기력함을 합리화한다. 사회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단절했다. 자식들과도 제대로 대화하지 못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도 퇴직 직후 2년간은 이 범주에 속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할 일이 없어 TV를 켜고, 점심 먹고 낮잠 자고, 저녁에 또 TV를 보는 일상의 반복. 이것이 내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자유로운 노후였다.


하지만 어느 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소스라쳤다. 생기 없는 눈, 축 처진 어깨, 의욕을 잃은 표정. 이것이 40년간 열심히 살아온 내 모습인가. 이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인가.


뼈아픈 현실 인식


젊은 세대가 우리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아는가. 그들은 우리를 '꼰대', '틀딱', '노인네'라고 부른다. 처음엔 화가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그들의 비판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리며 집값 상승의 수혜를 받았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평생직장의 혜택을 누렸다. 국민연금과 퇴직금이라는 이중 보장도 받았다.


반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어떤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수십억 원이다. 정규직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이 사치가 된 세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우리 때의 '힘들었던' 것과 지금의 '힘든'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었다. 노력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그 희망마저 보이지 않는다.


간절한 각성의 외침


우리는 지금 역사의 심판대에 서 있다. 후세들이 우리 세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만 생각하며 살았던 이기적인 세대였다"라고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까지 사회를 위해 헌신했던 책임감 있는 세대였다"라고 남을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의 건강한 노후는 길어야 10-15년이다. 이 짧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우리 인생 전체의 의미를 결정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 젊은 세대에게는 우리의 실패담을 솔직히 들려주고, 그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가 쌓아온 인맥과 경험을 활용해 그들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극단주의를 버리고 통합과 화합을 이끌어야 한다. 경제적으로는 소비를 통해 내수 경제에 기여하되, 과시적 소비는 자제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


변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


더 이상 추상적인 다짐으로는 안 된다.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먼저 배우자. 스마트폰 사용법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기술과 문화를 익히자. 젊은이들과 소통하려면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틱톡이 뭔지, 유튜브 어떻게 보는지, 온라인 쇼핑 어떻게 하는지 배우자.


둘째, 참여하자. 동네 도서관 자원봉사, 학교 급식 도우미, 청소년 멘토링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


셋째, 소통하자. 자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손자손녀들과 시간을 보내자.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우리의 경험을 나누자. 훈계가 아닌 대화로.


넷째, 견제하자. 잘못된 행동을 하는 동년배들을 보면 침묵하지 말자.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례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하자. 우리 세대의 품격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마지막 기회, 마지막 선택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변할 수 없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할 것이다.


우리는 폐허에서 일어나 기적을 만들어낸 세대다. 그 DNA가 우리 안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 마지막 한 번 더 기적을 만들어보자. 이번에는 물질적 성장이 아닌, 정신적 성숙의 기적을.


시니어 세대여, 각성하라. 우리의 마지막 과제는 아름다운 마무리다. 후세들이 우리를 기억할 때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기억하도록 하자.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인생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길이다.


더 이상 늦출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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