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맛보맨! 이리 와서 김치말이 국수 한번 먹어봐.”
쉬는 날이면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던 아빠는 무엇이든 잘 먹는 동생을 맛보맨이라고 불렀다. ‘맛을 보는 사람’이라는 뜻에 슈퍼맨, 호빵맨과 같이 ‘맨’을 붙인 별명이었다. 영웅적인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의 ‘맨’ 보다는 캐릭터의 특성 뒤에 이름을 붙인 호빵맨, 세균맨, 식빵맨의 ‘맨’에 가까웠으리라 짐작하지만, 편식하는 어린이였던 내게 동생의 ‘맛보맨’이라는 별명은 슈퍼맨처럼 들렸다.
나는 안 먹는 게 많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먹지 않는 회, 회가 올라간 초밥, 굴, 조개류, 해삼, 멍게.. (해산물은 먹는 종류를 세는 게 더 빠르겠다), 익히지 않은 향이 강한 생 야채들. 스무 살이 넘어서 먹기 시작한 곱창, 순댓국. 덕분에 가족 외식을 하는 날이면 나는 언제나 입이 댓 발 나와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에게도 문제가 있었다. 아빠는 유난히 해산물을 좋아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족 외식 메뉴들만 해도-당연히 갈등이 있었던 것들만 잘 기억이 나겠지만- 장어구이, 조개구이, 생선회, 생선구이, 아구찜, 해물탕 등 가면 어린이용 볶음밥을 시키거나 햄버거 세트를 테이크 아웃해서 가야 하는 식당의 음식들이었다. 가족 외식이라면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즐길 수 있는 식사 메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해물을 대체로 안 먹는 내게 너무한 처사였다.
편식하는 어린이의 고충은 집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급식을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은 언제나 밥을 다 먹고 식판 검사를 한 뒤 깨끗이 먹은 아이들만 집에 갈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안 넘어가는 익은 무와 밥을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눈물과 함께 삼키며 나는 언제나 거의 마지막으로 집에 갔다. 눈물을 삼키던 이 어린이는 머리를 굴려 안 먹는 반찬들만 마지막까지 남긴 뒤에 그 반찬들을 한 입에 넣고 삼킨 척하며 식판 검사를 받자마자 가방을 메고 화장실에 가 뱉는 지경에 이르렀다.
편식하는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편식하는’의 꼬리표는 따라다녔다. 남들은 좋아하는 연어회, 회덮밥, 조개구이를 먹지 않아서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될 거 같아 겁이 났다. 뼈해장국의 뼈나 치킨을 남은 살 없이 깨끗이 먹지 않아서 사람들이 나랑 밥을 먹기 싫을까 봐 그런 메뉴는 피하게 되었다.
편식하는 어른은 그래도 편식하던 어린이보다는 먹는 게 많아졌다. 한번 몸이 아프고 난 뒤, 스스로 야채를 챙겨 먹게 되었다. 자취를 하면서부터는 내가 먹는 요리를 내가 하고, 그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를 내가 사고, 그걸 사는 돈은 내 주머니에서 나오다 보니 만든 음식은 남기지 않게 되었다. 찜닭에 들어간 양파와 파, 생 양송이버섯이 들어간 크레페, 쌈에 싸 먹는 삼겹살, 간식으로 먹는 생 당근이 얼마나 맛있는지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을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마 그랬더라면 조금은 안심이 되었을 텐데.
무엇이든 잘 먹는 ‘맛보맨’ 동생과 안 먹는 게 많았던 나는 자연스레 자주 비교됐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서럽다. 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해보니 동생도 ‘맛보맨’ 타이틀을 지닌 나름의 고충이 있었단다. 그냥저냥 먹을 수 있으니까 먹는 건데 맛있다고 말해야만 할 거 같았다고. 배부른데도 잘 먹으니까 자꾸 먹여서 싫었다고.
“아이고, 어린애가 이런 것도 잘 먹네”라는 말은 과연 누굴 위한 칭찬이었던 걸까?
편식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미각이 예민한 사람일 수 있다고 했다. 향이 약한 북유럽 슈퍼의 야채들은 잘 먹지만 지금도 같은 브로콜리나 양상추여도 한국에서는 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나는 편식하는 어린이가 아니라 미각이 예민한 어린이였던 것이다. 어린이도 개개인의 취향이 있는데, 어른이 안 먹는 음식은 취향으로 받아들이고 어린이가 안 먹는 것은 고쳐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물론 아이가 골고루 잘 먹고 컸으면 하는 부모님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나는 해삼을 잘 먹는 아이를 보면 “해삼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오이를 안 먹는 아이를 보면 “오이를 안 먹는구나, 나돈데.”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