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고양이의 방광염, 수술, 동물병원
살아있는 생명체와 살려면 병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사람이든, 아기이든, 개든, 고양이든 언제든 병원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그나마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대형 병원은 24시간 응급실을 운영하고 119에 전화를 하면 구급차가 온다. 하지만 동물은?
학생 때였다. 학교 벤치를 지나는데 반대쪽 벤치에 앉아있던 커플이 크게 놀란 표정으로 내 다리를 보고 말했다. 무언가 따뜻함을 넘어선 화끈한 기운이 정강이에서 느껴졌다. 시선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 왼쪽 정강이가 온통 피범벅이었다. 길게 찢어진 상처 사이로 흰 뼈가 드러나 있었다. 꼭 위에서 내려다보는 계곡 같았다. 계곡에서는 물 대신 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어디서 생긴 상처인지도 몰랐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데 생각하려는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쩔 줄 몰라하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시선 덕에 내 정신이 돌아왔다. 핸드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걱정하느라 놀란 사람들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내가 되려 달래주는 입장이 됐는데, 이게 오히려 통증을 잊는 데에 도움이 됐다. 별일 아니다. 구급차가 올 것이고 상황은 해결될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차분해졌다.
시로는 소변을 볼 때마다 서럽게 울었다. 아직 고양이의 울음의 의미를 잘 구분할 수 없었지만 이 울음만큼은 고통에 찬 목소리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소변을 볼 때면 시로의 미간은 단단히 찌푸려져 고통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서러워 울었고 화장실에 앉아서는 한참을 아프다고 울었다. 시로는 우리 집에 오기 전부터 방광염에 걸려 있었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길에 버려졌고 병원에 갇혀있다가 수술을 받았다. 스트레스 질환이 어떻게 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방광염에 걸리면 소변을 볼 때마다 통증이 온다고 했다.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있지는 않고 환경이 안정되어 빠르게 낫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시로는 방광염 처방 사료를 먹고 있었다.
고양이 사료는 크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연령별로 나눌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는 일반 사료와 처방 사료로 나눌 수 있다. 일반사료도 목적에 따라 분류가 되지만... 이건 할 말이 많아서 차차 사료에 대한 집중한 글에서 다루기로 하겠다.
우리 집에 온 지 며칠 지나 방광염 체크를 위해 용인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에서 시로가 서럽게 울었다.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모르는 아내는 이동장 옆에 난 작은 창으로 "괜찮아. 금방 갈 거야."만 반복하고 있었다. 이대로 우리를 원망해서 싫어하면 어쩌지?, 운전대를 잡은 손에 불안이 더해졌다.
"전혀 순한 아이가 아닌데요?"
진료실에서 나온 의사 선생님은 억울함을 호소하듯이 말했다. 팔에는 약간 불그스름한 두줄의 긴 상처가 나있었다.
집에서 보여준 시로의 친화적인 행동 때문에 우리는 시로가 너무 순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검진실로 들어가는 의사 선생님을 안심시키겠다고 혹은 자랑한다고 "엄청 순한 아이예요"라고 말했다. 걸핏하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던 모모하고는 다르게 시로는 한 번도 하악거리거나 발톱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검진실로 들어가자마자 처음 들어보는 시로의 하악대는 비명과 간호사와 의사가 힘주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의사 선생님께 면목이 없었다. 다행히 큰일이 없었기 때문에 갈 때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은 집에 돌아온 후에 터졌다.
"이거 피야!"
하얀 거실 바닥 위에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모를 핏방울이 떨어져 있었다. 아직 붉은색이 남아있는 것이 분명 최근에 떨어진 피였다. 몸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나도 모르게 발이나 팔꿈치를 다쳤나? 하지만 내 몸에는 상처가 없다. 아내의 몸도 살펴봤지만 어디에도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시로뿐이다.
급히 몸을 꼬고 앉아있던 시로를 살펴봤지만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시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하자 핏자국이 실처럼 따라붙었다. 놀라서 확인해보니 시로의 왼쪽 뒷발 종아리 뒤가 찢어져 있었고 하얗게 뼈까지 드러나있었다. 나도 아내도 생각이 멈춰버렸다. 과거 내 다리에 상처가 났을 때가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병원에서 다친 것 같았다. 병원 검진실의 케이지의 잘 다듬어지지 않은 날카로운 철창도 기억났고 그 철창에서 발버둥 치던 시로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거기서 버둥거리다가 창살에 발이 찢긴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고통 때문에 더 크게 비명 지르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선명한 위협보다 모르는 두려움은 더 큰 공포가 된다.
우리는 아는 것이 없는 초보 집사였고 고양이가 다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없었다.
밤이었다. 사람이었다면 구급차를 불렀어야 하는데 고양이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갔다 온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느닷없이 사막 한가운데 떨어져 길을 찾는 마음이었다. 우리에겐 나침반이 없었다. 급한 대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근에 24시간 병원 몇 개를 찾았다. 다행히 동물병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 있었다. 두 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는 마음으로 세 번째 병원에 전화를 걸었더니 통화가 됐다. 다행히 가까운 정자동에 있는 병원이었다. 현재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당장 병원으로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픈 시로를 이동장에 넣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었다. 이동장에 실려 병원에 가서 큰 일을 겪었으니 경기가 일어날 만도 했다. 두 발톱을 세워 이동장 구석구석에 박아 넣고 필사적으로 버티는 시로를 힘줘서 넣는 건 내 마음에도 깊은 스크래치가 나는 행동이었다. 특히 다쳐서 피를 질질 흘리는 아이에게 완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범죄처럼 느껴졌다. 이럴 땐 아내가 강하다. 아내는 시로의 머리를 쥐어 밀어 넣고 발버둥 치는 시로의 엉덩이를 밀어 넣었다. 그럴 마음의 여유는 없었음에도 진심으로 감탄했다.
놀랍게도 깨끗하고 큰 동물병원 대기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은 새벽을 향해 가는데 이 시간에 동물들을 안고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우리 아이가 응급 상황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한데 똑같이 급한 사람들이 앞에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줄지어 앉아 있었다. 사람과 동물이 다를 바가 없었다. 아내가 조심스레 하소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아내는 당장이라도 통곡을 하며 울 것 같았다.
한참을 기다려서 급한 마음에도 적응이 됐을 때쯤 시로는 이동장에 들어있는 그대로 병원 처치실로 들어갔다. 이 어린아이는 2주일 사이에 두 번이나 수술을 겪게 됐다. 시로가 처치실로 들어가던 그날의 나는 당황스러웠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에 매스를 대는 것처럼 쓰리고 눈물이 난다. 차후에 쓸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일이 있은지 2년 후 나는 시로의 마취 장면을 마주하게 됐고 큰 충격을 받았다. 시로가 마취를 받아야 했던 지난 모든 시간들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고양이가 수술을 하려면 마취를 해야 하는데 마취를 하려면 검사를 통해 마취를 잘 견딜 수 있는 컨디션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다행히 시로에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다음 날 수술이 진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병원에 시로를 남겨두고 새벽에 빈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어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병원비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양이 카페에서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되는 조건 항목이 있다. "경제력" 부분이다. 마음으로 키우는데 왜 경제력이 필요하다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경제력 안에서 마음을 쓰는 만큼 잘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비 영수증을 보고 깨닫고야 말았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사람이면 간단하게 진료비만 내고 나올 항목들인데 자릿수가 하나씩 더 붙어 있었다. 이것도 비용인가? 싶은 비용들이 잔뜩 적혀있었고 처치비도 앞자리 숫자가 달랐다. 게다가 인간이었으면 있었어야 할 '보험료' 항목이 빠져있다. 게다가 24시간 병원의 심야 진료였기 때문에 더 비쌌다.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담스러운 금액이 명치에 얹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걱정과 혼란스러운 마음에 밤이 유독 길었다.
회사에 있는데 수술이 잘 끝났다는 연락이 왔다. 오후에 찾으러와도 좋다고 했다. 비용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안도하는 마음으로 시로를 데리러 갔다. 시로는 이동 장안에서 반항할 힘도 없이 축 쳐져 있었다. 가끔씩 낮게 우는 것이 자기표현의 전부였다. 집에 돌아온 시로는 수술과 마취의 후유증으로 하루 종일 기운이 없었다. 이동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시로는 소파 밑을 찾아 기어들어가려고 했는데 이내 자신 목에 둘러진 이상한 플라스틱 원통 때문에 못 들어간다는 것을 깨닫고 괴로워했다.
고양이는 항상 그루밍을 한다. 이것도 고양이 특성답게 냥바냥(고양이 바이 고양이, 고양이 별로 다 다르다는 뜻)이어서 그루밍을 덜하는 아이와 더하는 아이가 있는데 덜하는 아이는 심하면 아예 안하는 아이가 있고(이후에 소개할 럭키라든지) 더하는 아이는 하루 종일 그루밍만 하는 아이가 있다. 시로는 더하는 아이에 가까운 아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서 핥으면 안 되는 상처가 있다거나 몸에 스며드는 약을 발라두었거나 하면 이를 핥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이럴 때 '넥카라' 소위 말하는 UFO를 씌운다. 강아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에게 UFO를 씌우면 묘한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몸에 뭔가 걸쳐서 균형감각이 사라지는지 똑바로 못 걷고 이상하게 걷는 아이도 있고 심하면 털썩 털썩 쓰러기지도 한다. 특히 좁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 특성 때문에 어딘가 들어가려다가 끼는 경우도 많은데 시로의 경우 끼는 경우가 많았다. 불편해 보이는 시로 때문에 몇 번이나 넥카라를 벗겨줄까 싶었지만 괜히 상처가 덧 나기라 도하면 어쩌지? 싶어서 그만두었다. 또다시 병원에 데리고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넥카라는 몇 가지 이유로 씌울 일이 많았는데 그래도 넥카라에는 적응이 빠른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