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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민 Aug 03. 2022

<캐치! 티니핑>을 오래도록 보기 위해서는

2022년 현재 <캐치! 티니핑> 시리즈(2020~, 이하 티니핑)가 여아 타겟 캐릭터 시장에서 독보적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전체적인 스토리나 연출 상 특징을 검토해본 부모가 지금보다 많았다면 상황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햄스터처럼 귀엽게 생긴 요정들이 기껏해야 다소 짓궂은 장난밖에 더 치겠냐는 예단 덕에 티니핑은 일부 국산 애니메이션 유망주를 좌초시킨 준엄한 심의의 잣대를 피해 갈 수 있었다. 대개 부모 된 입장에서 티니핑을 비판할 때 새 완구 구입을 조장하는 시즌 별 주요 인물 교체 혹은 과도한 방귀 표현 정도만을 문제 삼는다. 여느 어린이 못지않게 티니핑에 대한 애착이 큰 입장에서 실로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저마다 하나씩 감정이나 관념(사랑, 용기, 희망 등)을 관장하는 요정인 티니핑들 중 다수는 본국인 ‘이모션 왕국’ 내 모종의 음모 때문에 지구 상에 흩어져 있는 상태이다. 지구로 파견된 로미 공주와 심복 티니핑들은 합심하여 이들을 포획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매 시즌마다 비교적 가볍게 일상 속 좌충우돌로 일관하는 전반부와 달리 최후반부의 비장미는 가히 삼국지에 비견할 만하다.


시즌1을 예로 들면 원래 로미 공주의 최측근이던 행복의 요정 해핑이 왕국 내 반역세력의 정신지배를 받아 한동안 공주 일행을 방해하던 중, 기억을 되찾는 시점부터 극의 분위기가 급격히 무거워진다. 막후에서 해핑을 조종하며 암약하던 이기심의 요정 앙대핑은 우선 지구인들이 서로 시기하고 다투도록 마법을 걸어 인간 사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앙대핑이 부리는 식인식물의 막강한 공세에 공주 일행이 마법 무기까지 빼앗기며 궁지에 몰리자 해핑이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공주와의 행복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작별인사를 한 뒤, 동귀어진하고자 자폭을 감행하는 것이다.


자폭 공격 후 의식을 잃고 석화해버린 해핑(중앙 회색)과 그를 추모하는 동료 티니핑들. -유튜브 채널 티니핑TV <캐티! 티니핑> 52화 갈무리

해핑의 희생으로 앙대핑은 치명상을 입고 역습의 기회를 얻은 공주와 동료 티니핑들은 끝내 승리한다. 해핑 또한 다행히 금방 부활하지만, 아무도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을 것 같던 밝은 분위기의 극에서 <드래곤볼 Z>(1989~1996)를 방불케 하는 자폭 돌진을 보고 나면 이것이 과연 아동용 애니메이션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게 된다.


흔히 티니핑에 영향을 주었다 평가받는 <리루리루 페어리루>(2016~2019), <프리파라>(2014~), <코코타마>(2015~2020, 국문명 코코밍) 시리즈 등 비교적 근래의 여아 취향 일본 애니메이션 중 그 어느 것도 티니핑만큼 정치극 성격을 띠지는 않는다. 사실 이들 작품과 티니핑 사이의 유사성이라고는 소녀와 요정들이 등장한다는 점 외에는 거의 없다. 주인공 일족에게 지켜내야 할 권좌가 있고 이를 호시탐탐 노리는 정적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서사적 측면에서 티니핑은 오히려 과거 <세일러문> 시리즈(1992~1996)가 개척한 미소녀 마법전사—갈등 양상이 첨예하지 않고 개인적 층위에 머무는 마법소녀와는 차별화된다—애니메이션의 계보를 잇는다 할 수 있다. 단지 3D 애니메이션이라는 기술적 특징과 지나치게 귀여운 캐릭터의 힘 때문에 이제 갓 영상물을 보기 시작하는 유아층에게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장르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자녀와 함께 티니핑을 유익하게 즐길 여력이 있는 보호자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KBS는 TV 방영 당시 티니핑의 시청 등급을 12세 시청가로 심의한 바 있다. 이는 <나루토>(2002~2007나 <강철의 연금술사>(2003~2004)처럼 명백히 청소년 이상을 타겟으로 하는 작품들과 동일한 등급이다. 시청 등급을 정할 때 단순히 총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지가 아닌 작품의 전반적인 메시지, 은유와 암시 속에 품고 있는 뉘앙스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속 요인 암살이나 인체실험 장면을 자녀에게 보여줄 리 만무한 보호자 중 티니핑의 시청지도 필요성을 자각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캐릭터도 물론 다채롭고 매력적이지만 어디까지나 서사에 힘이 실려 있는 티니핑을 <뽀롱뽀롱 뽀로로> (2003~) 등의 유아용 콘텐츠와 동일선상에서 취급한다면, 종영 전 언젠가 한 번은 유해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어린이에게는 시기상조인 인터넷 밈 패러디 등 12세 시청가라는 점을 무시한 채 문제 삼고자 한다면 충분히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요소들이 축적되고 있다. 지난해 <포텐독>(2021)의 몰락을 통해 실감할 수 있었듯, 일단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자행하는 어불성설성 비난마저 설득력을 얻게 된다.


드라마 <야인시대> 속 심영을 패러디한 졸음의 요정 코자핑. "내가 코... 코 자다니"라며 자책한다. -유튜브 채널 티니핑TV <캐티! 티니핑> 37화 갈무리

장기적으로는 애니메이션을 단순히 아동들의 철없는 취미로 치부하여 범주화하는 데 소극적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이는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때문에 국내외 노련한 제작사들은 보통 작품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교묘하게 시청 등급을 낮추고자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기획 의도에 비해 실제 향유층이 훨씬 더 넓어지고 특히 주로 어린 나이대로 확장되는 시점에서, SAMG 엔터 또한 보다 영민한 전략을 세우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이모션 왕국과 지구의 평화를 위해 봉사해야 할 티니핑 3개 소대 중 아직 제1소대만이 재집결해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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