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호기심으로 삶의 주도권을 움켜쥐다
슬기로운 콘텐츠 생활 하고 계신지요?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5시간 정도를 스마트폰을 보며 보냅니다. 앱 사용 시간을 보면 주로 콘텐츠와 SNS가 순위를 장식합니다. 1위가 유튜브(33.6%)이며, 2위 카카오톡(10.7%), 3위 인스타그램(6.9%), 4위는 네이버(6.6%)입니다. 우려되는 통계는 더 있습니다. 한국 인구의 50%는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령대별 취미 목록을 살펴보면, ‘독서’는 한국인이 즐겨하는 취미 7위(4.2%)지만 남성의 경우 나이가 어릴수록 독서에 관심도가 떨어집니다. 특히 남성의 경우 10 ~ 40대 1위 취미는 게임입니다. 여성의 경우, 20대 중 11%, 30대 7%의 비중이 독서를 즐기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언론을 통해 자주 논의된 바 있는 문해력 문제는 어떤가요. 외래어 사용 생활화, 독서인구 감소로 인한 어휘력 감퇴, 삶의 파편화 등으로 인해 이제 말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서로 공감하기 어려운 사회로 치닫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또한 걱정되는 것은 영상 콘텐츠와 숏폼 콘텐츠의 범람입니다. 인간의 학습 방법 효율성을 정리한 연구를 보면 수업을 듣는 방법(영상과 음성)의 평균 기억률은 20%에 불과합니다. 보통 1분 이하의 숏폼 영상의 경우, 중독성이 매우 강력해 OTT 사용 시간보다 5배나 많다고 합니다. 숏폼 콘텐츠 사용자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를 숏폼 영상에 쓴다고 합니다.
서두의 질문을 다시 던져봅니다. 슬기로운 콘텐츠 생활을 하고 계신지요? 하루 평균 5시간을 스마트폰에서, 이 중 높은 비중의 시간을 각종 콘텐츠에 쓰면서, 성장(학습), 재미, 치유, 해소라는 콘텐츠의 네가지 효용 중 어떤 것을 얻고 계신지요?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와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위 통계도 시사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그렇습니다.
김창옥 강사는 삶이란 열정, 권태, 그리고 성숙의 3단계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콘텐츠와의 관계는 열정과 권태를 끊임없이 오가는 시간으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금세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다가 권태기가 찾아오는 연애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콘텐츠를 폭식하고 덕질하지만 내면에 충족되지 않은 어떤 욕구가 남아있는, 정신은 피로하지만 몸은 체력이 남은 불편하고 우울한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콘텐츠 생활도 3단계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금세 빠져 중독적으로 탐닉하는 시기와, 힘이 빠져 권태롭게 지내는 시간, 그리고 자신만의 루틴을 정립해 건강하게 보고 듣고 배워나가는 시기로 정리해 봅니다.
[열정] 간헐적 폭식: 업무, 학습, 덕질 등의 목적으로 특정 콘텐츠를 단기간 폭식. 역량 강화를 위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성장을 도모하거나, 휴식을 위해 주말 중 오랜 시간을 바쳐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연속시청. 단기간 콘텐츠를 폭식하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음.
[권태] 에너지 고갈: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선택, 소비, 활용해나갈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수동적인 콘텐츠 소비자로서 시간을 보냄.
[성숙] 슬기로운 콘텐츠 생활: 콘텐츠 소비 시간의 적어도 20%는 목적을 가진 ‘구독’과 ‘관계’ 활동으로 이루어짐. 접한 콘텐츠를 직접 생활과 삶에 적용하며, 종종 자신의 아카이브에 콘텐츠를 기록하고 나만의 콘텐츠를 창조함.
일본의 빨리먹기 선수 고바야시 다케루는 오랜 폭식의 영향으로 식욕도 배부름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건강을 해킹하다: 장의 비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식욕과 배부름 뿐만 아니라 삶에서 느끼는 행복을 비롯한 감정에 무감각해졌다고 말합니다. 장내 미생물의 생태계가 무너진 것인가 검사를 마친 과학자들은 그의 장내 미생물의 균형은 문제가 없다고 설명해주죠. 심리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그는 오로지 음식물을 빠르게 먹는 일에 몰두한 나머지, 무엇을 먹고 있고, 어떤 맛이며, 어떤 기분인지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요. 그는 결국 빨리먹기 대회 선수 생활을 은퇴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콘텐츠의 간헐적 폭식과 에너지 고갈의 굴레는 콘텐츠와의 유의미한 관계 형성을 방해하는 습관인지도 모릅니다. 중독되어 몰아서 보고 읽고, 몰아서 보고 읽는 일이 반복되며 자신만의 취향의 세계를 발전시켜 나갈 기회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콘텐츠와 건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건강한 관계의 핵심은 ‘시간의 주도적인 활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침대에 누워 쇼츠를 넘겨보다가 죄책감을 느끼거나, 웹소설, 웹툰, 흥미용 영상 등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내가 좋아하고 관심을 가진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접하는 것이죠. 특히나 학습과 성장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면 콘텐츠와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유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최소한의 습관’이 유지의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스트레스 해소나 사회적, 실용적(커머스 등) 목적으로 콘텐츠를 활용하는 시간이 항상 필요할 수 있지만, 그 와중에도 내 학습, 취미, 부수입, 성장 등을 위해 주기적으로 콘텐츠를 활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겁니다.
일상의 변화 속에서도 최소한의 습관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면, 학습을 통해 전문성을 쌓거나 나만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역량이나 감각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습관이 최소한이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복잡한 시스템은 유지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써야하기 때문에 실천이 어렵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루 수시간씩 따로 공부하거나 읽은 모든 책을 엑셀이나 노션에 정리하는 일은 유지비용이 높죠.
콘텐츠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3단계(관계, 습관, 기록)로 간단히 정리해 봤습니다.
관심 분야의 변화를 업데이트 받을 수 있는 간행 콘텐츠를 선정해 큐레이션 받는다.
특정 분야의 덕질하는 크리에이터, 전문가, 고수, 거장의 콘텐츠라면 더욱더 좋다.
지나치게 많으면 꾸준히 볼 수 없으니 가능하면 매일이나 매주 볼 것을 소수 정예로 결정한다.
필요할 때마다 더 깊게 들어갈 나름의 레퍼런스 목록(영상, 아티클, 논문, 책, 해외 것도 좋다)을 만든다.
[액션 아이템]: 꾸준히 구독해보고 싶은 콘텐츠의 도메인, 서비스나 브랜드를 적어본다. 좋아하는 전문가, 고수, 거장, 크리에이터, 채널의 목록을 만들어본다.
기존의 루틴과 습관에 새로운 것을 엮어서 자동적으로 실행하게 되도록 만드는 방법을 활용한다(습관 쌓기(habbit stacking)). 가능하면 매일, 매주 콘텐츠 습관에 할애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한다. 이동시간이나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오전 15분-1시간, 밤에 자기 전 30분, 토요일 저녁 1시간 등)
리마인더를 활용한다(노트, 잡지, 신문과 같은 물리적 도구나 구글 캘린더와 같은 디지털 도구 활용). 캘린더에 넣고 가능한 한 스케줄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액션 아이템]: 캘린더 업데이트. 이미 가진 일상 속에서 매일, 매주 짧게 콘텐츠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캘린더에 저장한다.
콘텐츠를 모으고 다시 볼 수 있는 도구를 활용한다. (유튜브 영상 목록, 네이버 Keep, 노션, 에버노트, Pocket 앱)
특별히 기억에 남은 콘텐츠는 스크랩 & 아카이브한다. (에버노트, 노션, 구글 노트, 애플 노트 등)
소박하게 나만의 콘텐츠 만든다. (메모, SNS 채널 구축과 공유) 쪽글부터 시작해 쌓아나가며 이 와중에 ‘맥락’을 구축한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 때 특정 도메인을 정하는 것도 좋고, 서브 카테고리를 정해 교집합의 영역에 관해 깊게 고민해 보는 것도 좋다.
[액션 아이템]: 아카이브 세팅. 내가 선호하는 아카이브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플랫폼을 골라서 자주 활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스템을 만든다.
지금까지 완벽하게 실행하지 못해온 아이디어들을 한번 쭉 정리해 봤는데요, 나름대로 위 지침대로 꾸준히 실천해보고 추후에 한번 리뷰하는 글을 올려볼까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구독하는 콘텐츠 서비스나 브랜드, 활용하는 방법이나 툴을 나누고 새로운 것을 소개받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뇌과학자 박문호 박사님은 한 영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의 80%는 돈을 모으고,
인간의 30%는 사람을 모으며,
인간의 약 5%만이 지식을 모은다.
무엇을 모으던,
자신의 목적과 방향을 설정해
꾸준하게 모아 콘텐츠와 관계를 맺고 기록을 쌓아나가며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나간다면
복잡하고 혼란한 이 시대에도 삶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슬기로운 콘텐츠 생활은 단순히 일에서 성취, 승진이나 부의 축적이 아닌, ‘삶의 주도권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강력한 힘을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일 뿐이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이나 각종 소프트웨어 툴을 배우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키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슬기로운 콘텐츠 생활의 주도권을 쥐어 창조하는 사람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요.
건강한 호기심은 삶을 의미있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의식적으로 환기하지 않는다면 질문보다 결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아요. ‘건강한 호기심’은 멋진 삶, 지적인 삶, 창조적인 삶의 가장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궁금한 사람은 더 찾아보고 알아보게 되고, 다른 관점으로 사태를 바라보며, 색다르거나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