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지고 있는 게으름
띵동~
원룸 공부방에 벨이 울린다.
가끔 어떤 아이들은 똑똑 작게 두드리는 아이가 있고 어떤 아이들은 벨을 세네 번 눌러대는 아이가 있고 어떤 아이는 화난 아이처럼 문을 발로 쾅쾅 차는 아이들이 있다.
입장하는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처음엔 얘가 감정 있나 했는데 무심하게 그래도 애정을 담아
'왔어? 오늘 학교는 어땠니? '
'피곤하지?'
방학을 하고 요즘 같은 때는
'많이 추운데 일어나서 오느라 애썼네
추우면 난로 앞에 앉을까?'
'오늘은 아침을 먹고 왔나?'
등등 공부시작 전 애들 마음을 들여다보는 맨트를 날려본다.
늘어지는 방학 때 아이들은 늦잠을 잘 테고 아이들 중엔 여기 시간 맞춰 온다고 아침도 거르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 내 질문에 또는 내 인사에 반응하는 아이들을 보면 얘가 어제 자신을 위해서 뭔가를 했구나 아니면 밤새 피폐해지는 뭔가에 집중하다가 지쳤구나.라는 모습이 읽힌다.
밤새 게임하다가 또는 뭔지 모를 자기 계발과는 동떨어진, 전두엽발달에 방해될 만한 그 무엇인가를 열중하다가 오거나 아니면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다가 결국 말도 안 되게 적은 양의 숙제나 공부를 하려고 시늉만 한 아이들의 모습은 무척 지치고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타나기 일쑤다.
숙제도 떳떳하게 하고 자기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의욕적이고 당당하다.
쭈그리고 인상을 쓰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오늘도 이 학생과의 수업은 힘들겠구나 생각이 들지만 이제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마자 딱한 생각이 들지만.
'오느라 정말 힘들었구나. 어제 아주 재미난 시간을 보냈나 보네. 피곤하겠지만 그래도 오늘 할 것은 다 할 거야'
'어디까지 할 건데요?'
'어디 보자... 숙제가 덜 되어 있으니 일단 지난번 수업한 거 까먹으셨나 숙제마저 하고... 내가 적어도 여기는 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러니까 여기쯤? 넌 어때?'
'헉 15장이 나요?'
'애야 이거 장수만 많아. 게다가 장수 많아진 건 네가 숙제를 안 했기 때문에 더 늘어 난거지'
'게다가 난 분명히 말했다.
네가 숙제를 안 해오면 점 점 너만 괴로워 질거니 다음 수업에 괴롭지 않으려면 오늘 배운 것 잊어버리기 전에 집에 가서 숙제 바로 하고 다음날 이어서 숙제하고... 뭐 수학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니까. 다른 공부랑 조합하면서 그렇게 해야 적어도 안 잊고 와서 다음 진도를 빨리 나가고...
너 좋은 머리로 빨리 개념 이해하고 문제 풀고 나서 저 이렇게 이해 잘했어요 하면 집에 1시간 만에라도 보내 준다니까! 그런데 너 벌써 오늘은 늦었다. 오늘 일찍 가긴 글렀어. 숙제하는데 1시간, 진도 나가는데 2시간 정도 걸리겠는데... 그나마 3시간 안에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이 녀석은 조용히 띵동~ 벨을 한번 누르고 조용히 문 뒤에서 머리를 대고 내가 못 열게 손잡이를 잡고 기다리는 학생이다.
다 큰 녀석이지만 공부하기 싫은 자신의 마음을 그렇게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아마 축구할 때는 다른 모습인가 보다.
매일 난 이런 늘어진 엿가락 같은 모습만 보다가 축구를 한다니까 솔직히 바쁘게 공 좇는 모습이 그려지질 않는다.
매번 숙제를 안 해와서 내 속을 태우는 이 녀석이 오늘은 색다른 방법을 쓴다.
띵동~ 문을 여니
빵봉지를 내밀며 '선생님 뇌물이에요'
'무슨?'
'저 숙제 안 했는데 일찍 보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는...'
'아이고 *** 야 정말 맛있게 생긴 빵이구나 고마워... 뇌물을 받았으니 내가 대가를 줘야지.
내가 줄게 없지만 공부는 많이 시켜줄 수 있다.
네 뇌물 대가야.
오늘 여기까지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네 뇌물을 받고 생각이 달라졌어.
숙제 다하고 여기 진도 나가고 이거 증명까지 확실하게~
그럼 오늘 뇌물분까지 수업 끝!'
'크------ 그게 뭐예요. 선생니임!'
'빵 잘 먹을게'
오늘도 수업하다 잔소리를 잔뜩 했다.
게으름은 네가 지금 당장 먹고 살만 하기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라고.
부모가 먹여주고 입혀주지 않는다면 학원에 올 수도 없지만 이렇게 무기력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 내 자식대의 어린 시절은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경제적 차이가 있지만 아직도 주변에는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뉴스 외에 접하는 기회가 줄었고 학원을 하다 보니 오히려 학원 오는 학생들은 내가 보기엔 그나마 여유가 있어 삶에 있어 위기의식이 없다.
그래도 힘들다 한다.
뭐가 그렇게?
내 대답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을 이기기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애들아... 모두 힘들어! 나도 힘들거든! 나에게 붙어있는 나의 게으름을 이기기는 말이야 아주 힘든 일이야. 이기는 방법은 그냥 조금씩... 조금씩... 그러니까 안 한 숙제해! 몸이 괴로우면 조금씩 조금씩 깨우치겠지...라고 생각해... 아닐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기대한다.
나도 엄청 게으르다.
계속 게으름과의 싸움을 위해 계획하고 실천하고 다시 계획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어른이 되니 책임질 일이 많아지며 그 게으름을 어찌 다루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 아직 어린 10대 학생들이 타고난 게으름과 싸우긴 참 쉽지 않은 일이니 많은 연습이 필요할 수밖에...
어른들은 그저 지켜보고 살짝 밀어주고 화내지 말고 기다리고 밀어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