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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수 Sep 10. 2023

4번째 49재

어머님 편히 잠드세요

월요일아침 6시 반쯤 시어머니께서 숨을 가쁘게 쉰다고 급히 전화가 왔다.

남편은 올 일이 너무 급하게 왔구나 생각하며 바로 출발했지만 월요일아침에 서울 가는 길은 출근시간과 겹쳐서 무척이나 막혔다.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로 상황파악하며 119를 부를 것인지 병원으로 바로 모실 것인지 전화하며 속 끓이는 게 전부였다.

나는 집에서 중간중간 슬프고 안타까운 남편의 전화목소리만 듣는 일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숨을 이제 편히 쉬게 되셨다는 전화를 받고 119도 도착했다니 이제 병원으로 가시면 되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119에 실려가는 도중 심정지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그다음은 돌아가셨다는 통보를 들었다.

그렇게 시어머니께서는 마지막을 맞이하셨다.


아직 이승에 미련이 남아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을 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한동안은 딸네 집에서 손수 키워 이제는 성인이 된 손녀를 안쓰럽게 쳐다보고 계시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시면 내게 서운했던 일도 다 떠나보낼 수 있다고 하던데... 부랴 부랴 마련한 장례식장에서 어머님의 영정사진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정신없는 마지막을 지켜본 건 어머님이 가장 예뻐하던 손녀였다.

조카는 문득문득 그 순간이 떠올라 그리움과 충격으로 며칠을 못 자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마지막 순간을 꼭 선택하신 듯했다.

깔깔하고 뒤끝 없으셨던 어머님은 자식들에게는 쿨한 어머니였지만 내게는 말씀을 모질게 하시는 시어머니셨다. 뒤돌아 보면 모질게 하시려 한 것보다 어머님이 쓰시는 워딩이 내게는 모질게 느껴졌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쁜 시어머니는 아니셨지만 내게는 푸근한 시어머니는 아니셨다.

그런데 돌아가신 그 상황을 보니 참 시어머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가끔 얼굴 보며 하시는 말씀에 상처받을 일이 없다.

상처주려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다는 것을 살아계실 때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 돌리는 게 그렇게 되지 않더니 돌아가시니까 이제 마음이 돌려지긴 한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것을 아니까 그런 것은 아닌지...


그렇게 나에게 네 번째 49재가 시작되었다.

오늘 방금 초재를 하고 왔다.


그 절에는 갓 태어나 아장 거리고 다니는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

우리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49재를 부탁한 절에서도 49재 중 굶어 쓰러져 있던 아기고양이를 데려다 놓은 아기 고양이를 모두들 가서 구경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집에 아기고양이를 데리고 온 기억이 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돌아가신 재를 올리러 가서 아기고양이를 보며 미소 짓는 시간을 잠시 갖는다.


내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르며 시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르며 죽음에 대한 생각들...


시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으로 49재라는 재를 접하게 되었다.

입재부터 7일마다 절을 하며 불경을 들으며 기도를 올리는 일은 한번 한번 갈 때마다 조금씩 돌아가신 분에 대한 감정과 기억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굉장히 좋은 시스템이라 생각된 적이 있었다.

돌아가신 분에게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산 사람에게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가 절에 다니게 되기까지는 여러 인연이 있었다.

아버님 돌아기시고 10년 정도 후...

다행히 친정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절에 다니며 그때 아버님께 해드린 것처럼 우리 부모님도 49재를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절에 다니지 않는 형제들에게는 말은 못 하겠고 내가 혼자 돈을 모아서라도 해드리고 싶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리 형제들은 슬픔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내게 물어봤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네가 스님을 잘 아니 부탁드려도 될까?

그렇게 우리 친정부모님의 49재는 형제들의 마음이 하나 되어 잘 치를 수 있었다.

종교를 떠나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주는데 수긍하게 하는 시간이었고 부모님을 위해 마지막으로 자식들이 마음을 모아 부모님의 가시는 길이 편안하기를 빌 수 있는 집중된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돌아가신 분을 위해 확보된 시간이고 그 시간에는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이 부모님의 편안한 사후세계를 비는 일뿐이었다.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나고 가는 인연은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내 마음 정리하는 일은 내가 힘쓰면 가능할 수 있다. 돌아가시면 한 줌 재인데 너무 아동 바동 속 끓이며 살지 말자. 떠나가신 분들이 우리에게 남기는 마지막 교훈이다.


시어머니께서 이승에게 못다 이룬 인연에 연연하지 마시고 훌훌 미련 없이 가시길 바란다.

이 바람을 49일 동안 하나씩 정리하며 내 마음의 미련도 함께 정리할 것이다.

어머님께 좋은 며느리는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나쁜 며느리는 아니었기를 바라며 어머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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