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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션대리 Feb 23. 2023

SNL 'MZ오피스'를 보며 편하게 웃을 수 없는 이유

우리는 모두 MZ오피스 직원이었다.

 최근 쿠팡플레이 SNL <MZ오피스>를 많이들 즐겨 보셨을 겁니다. 테이블에 물을 엎질러도, 회식 때 삼겹살이 타들어 가도, 부장님이 커피를 산다고 해도 아무도 먼저 나서지 않는 회사. 업무 시간에 당당하게 브이로그를 찍는 주현영, 사무실에서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일의 능률이 올라간다는 맑은 눈의 광인 김아영을 보고 있으면 “와, 맞아, 우리 회사에도 저런 선배, 후배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MZ오피스가 인기 있는 이유는 한 번쯤 회사에서 봤을 법한 ‘넌씨눈’ 캐릭터를 욕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MZ오피스>를 보며 웃다가도 잠깐씩 현자타임이 오곤 합니다. 극 중 캐릭터들에게서 가끔 과거 신입 시절의 내 모습이 보여서요. 어느새 선배 연차가 되어 돌아보니 신입 션대리 역시 <MZ오피스> 주인공들 못지않았더라고요. 오늘은 지우고 싶은 제 사회생활 흑역사 에피소드들을 풀어보려 합니다.


1. 조금만 조용히 있을 걸

 15년도 입사 당시 저는 참 당돌했습니다. 취업 준비 기간도 없이 졸업하기도 전에 덜컥 원하던 회사에 바로 취업했으니 얼마나 어깨에 뽕이 가득했겠어요? 그런데 그게 회사 생활에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좋게 말하면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소신껏 피력하는 편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윗사람들한테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개기는’ 신입이었어요. 내 생각은 A가 옳은 거 같은데 상사의 선택은 B라고 할 때, 굳~이 A가 옳은 이유에 대해 내 의견을 전달해야 직성이 풀렸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화장품 회사, 다들 화장품 업계에서는 날고 긴다는 최고의 인재들만 모아놓은 곳에서 윗사람들이 신입의 의견을 듣고 본인들의 선택을 바꿀 리도 없는데 말이죠. 또, 선배들이 뭔가 잘못하면 굳이 콕 꼬집는 후배가 저였습니다. 누구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실수한 게 알려지면 기분이 상할 텐데, 그게 하필 후배인 저였습니다. 제 딴에는 업무에 도움이 되겠거니 말한 거였는데, 미쳤던 거죠. 선배에게 또박또박 말대답하고 실수 지적하면서 “아닌 걸 아닌 거 같다고 말하는데 무슨 문제라도…?”라고 말똥말똥 쳐다보는 후배. 선배들이 보기엔 제가 바로 그 사무실의 ‘맑은 눈의 광인’이었을 거예요.


2. 에어팟이 뭐 어때서?

 저는 확실히 주변 소음에 예민한 편이에요. 전자레인지 문이 열려 있을 때 흘러나오는 전자파 소리도 신경이 쓰이고, 대중교통이나 비행기 탈 때는 에어팟은 필수입니다. 예전에는 항상 이어 플러그를 챙겨 다닐 정도였어요.

회사가 신사옥으로 옮기면서 파티션이 사라지고 학교 도서관의 공동 좌석 같은 오픈된 공간에서 일을 해야 했던 적이 있어요.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라든가, 회의하는 소리, 전화받는 소리 등 집중을 하려야 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제가 예민한 것도 있지만 단언컨대 모든 직원이 괴로워하던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에어팟을 꽂고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상사의 눈에 좋게만 보이진 않았을 것 같아요. 혼자 일하는 공간도 아니고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거나 택배가 온다거나, 전화가 오면 응대해야 하기도 하는데 말이죠. 저는 못 들었으니 몰랐겠지만, 에어팟을 끼고 있으니 상사가 불러도 못 듣는 경우도 종종 있었겠죠? 쓰면 쓸수록 제가 MZ오피스의 김아영 씨 같은데 이건 기분 탓일까요…?


3. 열정 만수르와 일하는 기분?

일은 못 하는데 열정만 넘치는 신입, 어느 회사에나 있지 않나요? 자기 혼자 신나서 이 일도 하겠다, 저 일도 하겠다 벌여만 놓고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 책임 못 지는 직원. 제가 그랬던 것 같아요. 18년도에 팀을 옮기게 돼서 업무도, 팀원들도 새롭게 바뀌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전 팀에서 3년 정도 경력을 쌓고,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라 너무 들떠있었어요. 팀 이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급하게 호주 출장이 잡혔습니다. 제가 맡고 있던 브랜드가 호주 세포라 매장에 론칭해 세포라 매장 직원분들께 우리 제품 트레이닝을 가게 된 거예요. 오 호주라니, 팀 옮기자마자 이런 좋은 기회가! 나를 아직 잘 모르는 팀원들에게 내 능력을 보여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호주 시드니 3박 5일 출장을 가게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미련이 남는 출장이에요. 10시간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제가 한 것은? 호텔 방에 짐을 던지고 시드니 시내의 세포라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시장 조사라는 명목으로 세포라 매장 안에서 몇 시간을 보냈어요. 파운데이션, 립스틱 등 온통 내 팔에다가 발색도 하고 사진 찍어보고… 심지어 매장 내에서 진행하던 미니 뷰티 클래스까지 워크인 고객으로 참석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시간이 정말 재밌었어요. 전 팀에서의 출장은 늘 메이크업 쇼 목적으로 출장을 갔었기 때문에 시장 조사의 목적으로(주로 화장품 개발자 BM 분들이 시장 조사를 갑니다) 간 건 처음이었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함께 간 선배님이었죠. 출장 목적이 호주 세포라 트레이닝 세션이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쉬고 있으면 됐지, 사실상 굳이 시장 조사 한답시고 몇 시간씩 세포라 매장에 있을 필요는 없었긴 했거든요.

트레이닝 세션 또한 준비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 밖에 없어서 밥 먹고 산책하며 각자의 파트 스크립트를 외웠는지 계속 체크했습니다. 어느 정도 적당히 외우고 스크립트 카드 만들어서 진행했어도 됐을 텐데… 다시 말하지만, 요령은 없고 무식한 열정만 넘쳤던 시기였습니다. 만약 혼자 간 출장이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쓰든지 간에 별문제 없었을 테지만 그분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열정 투머치한 연차 낮은 놈이랑 호주 출장을 가서는 제대로 시드니에서의 시간을 즐기지도 못하고 왔겠습니까 (약간의 여유 시간조차 시드니 시내 세포라에서 보내고 그나마 밥은 오페라 하우스 테라스에서 먹긴 했음) 후배의 어떤 제안에도 그저 우쭈쭈 해줬던 그 선배가 참 감사하고 지금도 미안합니다.


‘또라이 보존의 법칙’. 사무실에 또라이가 없으면 그 또라이가 나라는 유명한 드립이 있죠.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아차, 싶은 실수를 하기도 하고 지나고 나면 그때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는 일들도 많더라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MZ오피스의 직원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처음이니까, 경험이 없으니까, 모르니까 하는 행동들이니까요. 알고 보면 맑은 눈의 광인 김아영 씨에게도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 절대 제가 김아영 씨 같은 캐릭터였기 때문에 감싸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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