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신의 삶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수범 Mar 12. 2021

5년도 더 된 일에 울컥하곤 한다

자신의 삶 #4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린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옛날 같았으면 눈물을 흘릴 법한 순간에, 언젠가부터 울기보단 그 상황으로부터 나만의 의미를 찾는 방식으로 상황에 대한 대응방식이 전환된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상에서 울컥하는 순간은 종종 있다.

과거의 어느 순간이 갑자기 아련하게 다가올 때, 하루하루가 흐르며 지나가는 게 애틋하게 다가올 때, 그리고 밖으로 꺼내기는 힘들어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문득 맞닥뜨릴 때 등.


평소와 같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마치고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려는데, 창밖으로 비에 젖은 공원이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의 뒷편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공원인데, 거의 매일마다 보는 것 같다.

문득 축축해진 그 공원을 바라보는데, 15년도에 친구들과 떠났던 제주도가 떠올랐다.

그러곤 갑자기 울컥해졌다.



스무 살 여름, 우리 7명은 제주도를 갔었다(사실 7명보다 많긴 했다).

지금 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초라하고 거칠게 다녔다.

히치하이킹으로 차를 얻어타서 이동했고, 매번 거추장스러운 텐트와 코펠을 들고 다녔으며, 공중화장실에서 물통에 물을 받아 씻거나 가끔은 유료화장실의 뒷문으로 들어가 무료로 샤워를 했다.


이 여행은 여전히 안주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근데 누군가 꺼낸 기억에 다른 친구들이 기억난다며 동조할 때, 사실 나는 나도 기억난다며 이야기에 끼어들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그렇다.


그 당시의 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몰랐다. 고집은 있어도 나만의 잣대는 아직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무언가를 기억하려고 하기보다는, 매번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엄지를 치켜세우고 팔을 흔들 때면 대체 언제쯤 차가 우리 앞에 서 줄지를 생각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여기서 텐트는 어떻게 세우고 밥은 뭘 어떻게 해먹을지를 생각했고, 오늘도 어김없이 설거지는 내가 걸렸구나 하며 최대한 빨리 설거지를 끝내고 싶어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클라우드에 제주도 사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난 기억이 잘 안 난다.


근데 왜 그렇게 기억도 잘 안 나는 제주도여행을 떠올리곤 울컥해졌을까?

글쎄. 그냥 그 당시에 함께하던 우리가, 진로나 앞으로의 계획 그런 것들 없이,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던 그 여행이,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애틋하게 혹은 아련하게 다가와서 그런 게 아닐까.


내 친구들은 이제는 모두가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다행인 건지, 서로가 다 다른 길을 말이다.

경찰을, 회계와 사업을, 누구는 제약 쪽을, 누구는 영상 쪽을 준비하고 있고, 같은 공대 쪽이라 해도 전공이 서로 다르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다 같이 모이기도 힘들어졌다.


언젠가 내가 갖고 있는 '친구'라는 관계에 대한 생각은 내 앞에 있는 친구의 그것과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응당 '친구'라는 건 이래야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해왔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라는 걸 깨달은 후부터는 그냥 나만의 생각으로만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각자가 다르게 생각하는 우리의 이 친구라는 관계가 오래 갔으면 좋겠다. 영원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점점 더 모이기 힘들어질 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정말 오랜만에 한 번 만났을 때 예전과 다름 없이 편하게 웃고 떠들고 실없는 소리를 해댔으면 좋겠다.


어떤 와인샵 사장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아가는 거야."

그래, 우리 인생의 절반쯤은 추억을 기반삼아 살아가는 게 아닐까.

우리가 눈을 감는 그 순간에, 눈을 감기 직전까지 붙잡을 수 있는 건 결국 지나온 날들에 대한 추억이 아닐까.

각자가 그 순간을 맞게 될 때, 그 순간에 우리의 지난 추억이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도, 또 너도, 우리가 함께한 순간을 떠올리며 눈을 감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서로가 갖고 있는 친구라는 관계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다는 걸 인정한다.

너희들 중 브런치를 모르는 누구는 이 글을 영영 보지 못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이렇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날것 그대로의 거칠었던 지난 날 우리처럼, 이 글도 퇴고없이 날것 그대로 올린다.

나의 친구들에게.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도 난 하늘을 바라보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