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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범 Jan 21. 2021

시골의사(Ein Landarzt)

타인의 삶 #2 - <너, 나, 우리 : 코로나 시대의 카프카들>


모두가 카프카(Franz Kafka)가 되어 볼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우리 모두가, 적어도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이 ‘코로나 시대’ 속에서는 말이다.




<시골의사(Ein Landarzt)>는 매우 단편적임에도 불구하고, 채도 없는 흑백바탕 속에서도 카프카라는 인간이 그가 살았던 당시에 느꼈던 감정과, 세상을 바라봤던 시선 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Ein Landarzt(Moviepilot.de)

     

작품 속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시골의사’를 바라보고 있자면 참으로 고독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공의로서 마을 변두리까지 담당하며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의사는, 꼭 필요한 존재일 순 있으나, 외롭다. 사람들에게 진료를 통해 무언가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그는 그렇게 고독하게 일을 한다.

<아직 나는 로자를 돌보아야 하고 그 다음에야 소년이 권리가 있을 터이며 나 역시 죽고 싶다. 여기 이 끝없는 겨울에 내가 무엇을 하겠는가!>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출구 없는 삶에 대해 절망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의무감을 느끼는 존재로서 의사는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 작품 속 카프카 그 자신과 가장 닮아 있는 등장인물이 바로 이 의사가 아닐까 한다.



법률가로서 자신의 직업적 의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밤에는 글을 쓰고자 했던 사람.


아버지와의 불화와 동생들의 죽음 등 불우한 가정환경, 유대계인 그의 생전 당시 팽배해 있던 유대혐오(Judenhass)·반유대주의(Antisemitismus) 및 혼란했던 20세기 초의 상황 등은 카프카로 하여금 세상을 희망 없이 흑백으로 바라보고 그를 고독한 존재로서 살아가게끔 만들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거센 눈보라’, ‘희망이 없어 보이는 소년의 상처’, ‘맨몸으로 극한 시대의 혹한에 내던져진 의사’ 와 같이 사건과 배경의 서술 등에서 스스로가 느꼈던 삶에 대한 절망적 태도를 그려낸 카프카는, 그런 자신을 알게 모르게 이 <시골의사> 속 공의에게 투영했을지도 모르겠다.


Franz Kafka(thefamouspeople.com)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으로 확인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 1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많이 다른 형태를 띠게 되었다.

재작년까지 우리가 지내왔던(혹은 누려왔던) 그 일상들을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우리 각자와 세상과의 관계는 ‘연결’보단 ‘단절’에 가깝다.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지니 참 일상이 퍽퍽하게 느껴지곤 한다. 이전에는 당연한 걸 넘어서 종종 피곤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던 ‘인간관계’ 속의 만남들에 대해, 지금은 그 만남들이 그립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주저하고 경계하며 눈치를 보게 된다. 잠깐의 만남도 그 정도인데, 마땅한 여행을 생각해보기는 더 어렵다. 작년에 제대로 된 여행을 해봤다는 사람은 보기 드문 게 사실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많이 만나지도 못하고, 휴가도 제대로 떠나질 못하니 자연스레 마음은 퍽퍽해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리고 마음도 마치 흑백 같다.


다행히도 이제 모두가 쓰고 다니는 마스크는, 적어도 이런 부분에서는 ‘흑백이라는 속성을 강조해주는 도구만 같다. 우리의 소통 방법 중에는 ‘대화를 통한 언어적 의사소통’이 매우 높은 비중을 차지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두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그런 대화라는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입이 대부분 희거나 검은 마스크로 양쪽 모두 가려져 있으니, 소통의 단절이 한층 와닿기만 한다.


sisahan.com



다시 돌아가서, 앞서 말했듯 카프카는 불우한 가정환경 및 생전 당시 유대계 독일작가라는 출신적 특성으로부터 느꼈던 소외감을 그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시골의사> 속 공의를 통해 우리는 외롭고 쓸쓸했던 그의 감정과 그 감정에 기반했던 삶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코로나 시대를 지내고 있는 우리는 전례 없는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바깥과 단절된 채, 세상과 동떨어진 각자의 공간에서 각자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중이다.

카프카가 느꼈던 소외라는 감정은 그의 ‘출신이나 경험 등에서 비롯된 독특한 것’ 이라면, 지금 우리는 모두가 ‘같은 이유’로 ‘비슷하게 닮아 있는 소외감’을 느끼며 지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고로 다분히 의존적인 존재이다. 태어나서 죽기까지, 가족부터 시작해 친구, 친인척, 선후배, 동료 등...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어 나가고,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주변 사람들과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나’라는 존재를 확립해 간다. 인간은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고, 그 말은 흔히 일컬어지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존재의 속성’이다.(브런치 첫 글에 적었던 문단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SNS에 술집이나 혹은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려 잠시나마 여행을 다녀온 사진을 올린 지인들을 보고 눈살 찌푸려지는 게 요즘 사람들의 심리다. 누군가를 만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게 당연했던 우리의 삶 자체가 부정되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 인간 실존의 속성이 부정되고 있고, 그 사실은 역으로 우리의 ‘실존’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우리의 존재가 언제 빛났었고 의미가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래서 코로나 시대의 우리는 모두 카프카가 되어볼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프카가 되어보았을 것이다. 동떨어진 자신만의 공간에서, 마음이 흑백으로 물들은 채, 나와 단절된 세상을 바라보곤 이내 소외감을 느끼고 고독해진다. 다른 사람들과 직접 만나 관계를 맺고, 편하고 즐겁게 웃고 떠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우리 ‘실존’의 의미와 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우리의 언제가 그렇게도 즐겁고 행복했으며, 의미가 있었는지에 대해 돌이켜본다.


코로나가 유럽에 비로소 팬데믹(Pandemic)을 몰고 오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현지에서 ‘한국으로부터 온 외국인’ 혹은 ‘한국계 현지인’으로서 지내던 사람들은 이전부터도 어느 정도 있어 왔던 인종차별 문제가 이제는 그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더 적나라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면서 더 외로웠을 것이다. 더 고독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분위기는 남아 있고, 그런 차별로부터 그들이 느낀 소외감 또한 지워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더 진정으로 카프카의 감정을, 그가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선을 그들은 느꼈고, 지금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코로나 시대를 겪어내고 있는 우리들이 카프카가 되어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의미는 아닌 것이다.


카프카가 된다는 것은, 혼자, 외롭게 흑백인 세상을 바라보고, 때로는 차별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고, 불안정한 상태 속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하는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때보다 혼자 많은 시간을 보냈고, 많은 생각을 했던 2020년이었다.


처음에는 즐거워하면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까 우연찮게 찾아온 이 여유를 조금은 반갑게 맞이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 상황이 지속될수록 마음은 지쳐간다. 특히 자영업을 하시는 소상공인분들은 매우 고된 1년을 보내셨을 것이고, 나 같은 학생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냥 헤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한다는 게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 찾아올지도 모르는 ‘포스트 코로나(Post-Corona)시대’에 대해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다.

혹자는 코로나가 끝나면 글로벌 공급망과 같은 거시적 속성들이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혼란 속에서도 버티고 살아남는 자나 기업이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쟁취하며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거대담론을 논하기 전에, 먼저 우리들 개개인이 가져야 할 태도는 따로 있으며 이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마스크를 필수적으로 착용하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기 위해 손소독제를 사용하며, 식당이나 상점 등의 사업장에 방문하면 방문명단을 작성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재 코로나 시대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이고 매너로써 자리잡은 것이다. 항상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들이고, 특히 마스크를 운동을 하나 어디를 가나 착용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하다.


news.kbs.co.kr


그렇지만 모두가 지킨다. 모두가 자신을 조금씩 희생하고 서로 양보해가며 이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카프카의 소외된 감정을 느껴 온 우리지만,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배려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에 대해 배려를 행하며 이제까지 유지해 온 그런 것들을 끝까지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 코로나 시대가 종결된 이후에도, 그때에도 우리는 지켜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인간은 언제나 혼자가 아닌 함께 더불어 살아왔다. 그렇게 서로 관계를 맺고, 그러한 인간관계 속에서 역으로 ‘나’를 발견하기도 하며, 우리의 실존이라는 것에 대해 느껴오지 않았는가.

혼자 있을 때보단,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내 존재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인류는 역사를 거쳐 오며 질병과 재난을 셀 수 없이 많이도 겪어 왔다. 그것들을 겪어 오면서 아무것도 깨달은 게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하지 못 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들을 맞닥뜨리고, 희생을 치르지만, 결국 극복해내면서 인류는 언제나 교훈을 얻어 왔다. 지혜를 쌓아 왔다. 이번에도 인류는 역시 극복해낼 것이다. 이번의 코로나라는 질병을 이겨낸 뒤에도 역시나, 역사가 그래왔듯, 언제나처럼 우리는 교훈을 얻을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 서로를 배려하며 우리 실존의 의미를 깨닫는 것.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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