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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28. 2023

오흐바

김휼, < 호수라 불리는 카운슬러 >



선생님,

봄입니다. 잘 지내시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의미 없는 질문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봄입니다. 괜스레 선생님 하고 한 번 더 불러봅니다.


얼마 전 어느 좋은 강의를 들을 일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강연자가 전체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여러 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논문 지도 교수님과 중학교 사회 선생님과 육 학년 담임선생님과...... 그리고 선생님. 강연자는 저를 부르고 물으셨어요, 진샤님의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딱히....

아 네, 딱히. 솔직한 대답 감사합니다. 웃음.

지금은 조금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이야기를 할걸, 하고 말입니다.


너무나도 프랑스적인 헤어스타일이어서 누가 봐도 한눈에 프랑스어 선생님이란 걸 알 수밖에 없는 헤어스타일, 어딘가 울퉁불퉁한 얼굴선, 그 얼굴선과 잘 어울리게 큰 눈, 헤어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프랑스적인 패션.

수업 또한 매우 프랑스적이었습니다. 프랑스적인 것은 무엇인가 물으신다면, 선생님의 모든 것이 프랑스적입니다,라는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입니다. 나는 지금 화가 나는 일이 있어서 수업을 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해요라든가, 수업 중간중간 마르티유(로 기억하고 있습니다)라는 남자친구 이야기를 해준다든가, 발음을 한 명씩 돌아가며 시켜보고는 갑자기 제 친구 지영이를 보고 '넌 이본느를 닮았어'하고 웃는다든가. 처음엔 조금 당혹스러웠지만 언젠가부터 그 모든 걸 '프랑스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에흐인지 에릏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는 R 발음보다, 역시나 그만큼 애매한 Y 발음보다, 숫자를 20까지 외워야 하는 난감함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엉뚱할지 모르는 선생님이 가장 프랑스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매일 오후 네시반의 프랑스어 수업.


가장 프랑스적이었던 순간. 선생님은 장미를 들고 오셨습니다. 여고에 여자선생님이 장미를 한 무더기. 엎드려 자다가 흘린 침도 다 닦기 전에 제게는 분홍빛을 띤 흰 장미가 주어졌습니다. 책상 위에 장미를 한 송이씩 올려 주고는 말씀하셨죠. 창 밖을 보세요. 생각 외로 감수성이 덜 발달된 열일곱들은 창 밖을 보고 나서야, 아침부터 오던 비가 멈추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비가 오는 수요일엔 장미를, 이라고 말한 선생님은 연이어 말씀하셨죠, 오늘은 그냥 창 밖을 보도록 해요.

잠이 덜 깬 저는 장미와 창 밖을 멀뚱히 보았습니다. 아, 프랑스에서는 비 오는 수요일에 장미를 주는가 보구나 아닌가 한국 노래 제목인가 노래 가사인가. 방과 후 프랑스어반 여자들은 그렇게 창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장밋빛 인생이라는 샹송을 들었습니다. 몇 소절을 배우고 따라 불렀습니다. 창 밖엔 내내 비가 내렸고 장미는 조금 시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수업 끝나기 직전 '여러분은 오늘 이후 라비엉호즈를 살도록 해요'라고 말해 주셨죠. 장밋빛 인생은 커녕 수능 이후의 인생 같은 건 없다는 표정들만 보던 때였습니다.

저녁 도시락을 먹으며 장밋빛 인생은 어떤 인생일까,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비는 내렸습니다. 장밋빛 인생을 살으라는 말을 들은 날, 그렇게 종일 비가 왔습니다.


그 수요일 이후 저는 비 오는 수요일마다 점검합니다. 나의 인생은 장밋빛인가, 그 장미는 무슨 색인가, 얼마나 피었는가 혹은 시들었는가, 장미가, 피긴 했는가,



그 때부터 교무실을 갈 때마다 좋아하는 수학 선생님 책상을 한 번씩 보고 프랑스어 선생님 책상을 한 번씩 봤습니다. 선생님 책상엔 늘 장미가 한 송이씩 있었습니다. 때마다 색은 바뀌었지만 장미는 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괜스레 질문도 했습니다. 어떤 질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도 '공부하기 싫어요, 가 프랑스어로 뭐예요'같은 시답잖은 질문이었을 겁니다. 선생님의 표정이 보고 싶었습니다. 조금은 프랑스적이고 조금은 사랑스러운 표정.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특유의 콧소리를 내시며 대답해 주시곤 옆의 작은 의자를 내주셨어요, 장미를 제 앞에 놓으시며. 문장을 쓰고 단어를 알려주고 문법 설명을 곁들인 후 발음을 따라 해 보라, 같은 한국적인 요청은 없었습니다. 전 의자에 앉아 장미를 보고 선생님을 보고 '오흐바 Au Revoir'하고는 일어설 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선생님은 울퉁불퉁한 광대뼈가 더 솟아나게 웃어 주시고 '오흐바'하며 손을 살짝 흔들어 주셨습니다.

그런 순간이 두세 번 더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마르티유 이야기를 하지 않으셔서 마르티유의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마르티유는 묻지 않고 시시껄렁한 질문만 했습니다. 마르티유 이야기를 하지 않는 선생님의 얼굴은 장밋빛이 아니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여름방학이 끝났습니다. 프랑스에 다녀왔다는 선생님은 우리에게 빠히 Paris에서 사 왔다는 엽서를 한 장씩 주었습니다. 제 앞에는 개선문이 흑백으로 찍힌 엽서가 놓였습니다. 프랑스어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르티유 잘 지내냐고 썼습니다. 잠시 후 소리 없이 엽서를 걷어간 선생님, 그 순간들마저 너무나도 프랑스적이어서 저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합니다. 엽서에 쓴 질문에 대한 답은 없었습니다, 저 역시 꽤나 프랑스적이 되어서 더 묻지 않았습니다.

이학기의 수업들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매우 한국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샹송도 장미도 창 밖도 없이, 문법과 발음과 단어와 끌로에와 쟝의 대화만 있었습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었고 겨울방학이 끝났습니다. 저는 열여덟 살이 되었고 문과의 제2외국어는 일본어였습니다. 할아버지 선생님의 탁음은 유난히도 탁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후에 지영이로부터 선생님이 스스로 생을 끊으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조금 기분이 나빴습니다. 지영이보다 제가 프랑스어 발음이 더 좋았는데 선생님의 소식을 지영이에게 듣게 된 것이 속상했습니다. 그리고 곧, 모든 것이 이해되었습니다. 선택, 그렇습니다, 그건 선생님의 선택이었어요. 매우 선생님다운 선택이었고 너무나도 프랑스적인 선택이어서, 저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모든 것이 그리워졌습니다. 선생님의 헤어스타일, 느끼했던 발음, 화가 나면 유난히 솟아오르던 광대뼈, 샹송들, 장미꽃, 창 밖, 흑백엽서, 웃음, 다시 창 밖, 그리고 오흐바.      


살다가 문득

실은 자주

선생님의 자리 옆 장미 앞에 앉아 있던 때가 떠오릅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들 속에서 저는 말없이 질문했고 선생님은 말없이 들어주었고 말없이 대답해 주었습니다. 조용한 상담이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 남았던 건 단 하나, 오흐바, 였습니다. 안녕, 또 봐.



선생님,

봄입니다.

이렇게 봄꽃이 피는 날이면 장밋빛 인생을 들으며 창 밖을 생각합니다. 라비엉호즈를 살도록 해요. 선생님의 장밋빛이었을 인생을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랬을 겁니다. 그래야 합니다.

장밋빛 인생을 살아보려 애쓰다가 안 되면 선생님의 옆에 조용히 앉아 보겠습니다. 장미는 없어도 됩니다. 인사만은 잊지 말아 주세요.

Au revoir, 또 봐.




진샤와 폴폴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같은 시집 속에서
안녕과
또봐,를
읽어내는,

이윽고
펼쳐질
우리의
장밋빛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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