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이야기
한 해에 여러 출판사에서 같은 작가의 작품이 유행처럼 출판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작가의 저작권이 소멸되는 시점이 그중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후 70년. 작가 또는 창작자는 사망한 후에도 70년 동안 자신의 작품에 대해 강력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리고 71년이 되는 때(정확히는 71년째가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비로소 작품에 자유를 허한다.
출판계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공연계에서도 같은 제목 또는 원작으로 복수의 공연이 제작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우연의 일치도 있지만, 희곡작가의 저작권이 소멸되는 시점에 공연제작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첫 번째일 수 있는 단계(즉, 작가의 공연제작 이용 허락과 이에 따른 비용)를 무정차 패스하는 것은 작품을 선택하는데 매력적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작가의 공연이용 허락 여부도 관건이지만, 허락해도 독점적인지 아닌지, 저작권료는 어떻게 할지 협의하는 것이 꽤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계약서는 어찌나 길고 어려운지.
우리나라에서 현재 저작권은 작가 사후 70년 동안 보장된다. '우리나라' 그리고 '현재'라는 단서가 달려야 하는 것은 국가마다 저작권을 보장하는 기간이 다르고, 그 기간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작가 사후 50년 동안 저작권을 보장하다가 2013년부터 사후 70년으로 변경된 바 있다. 2007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조정되었고, 몇 년간의 유예기간을 가진 후 시행되었다. 사후까지 보장된다는 점에 있어서 후손까지 덕을 볼 수도 있는 가치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글이든 음악이든 장르 불문 효자 저작물 하나 만들어 놓고 싶은 꿈을 꾸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 최소한 나는 그랬다. 팍팍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위 창작자들을 보면서 그리고 방송을 통해 엄청난 저작권 수입을 얻는 이들을 보면서 나도 저들과 같은 찐 창작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뜬구름에 작사 공모전에 지원도 해보고, 신박한 아이디어로 발명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김칫국을 마셔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처음 저작권이라는 개념을 인식한 것은 졸업논문을 쓰면서였던 것 같다. 그전에는 학습자로서 문구를 인용 또는 발췌할 때 출처를 밝혀야 함을 익히 들어 알고는 있지만 습관적으로 보고 넘어갔다. 하지만 논문을 쓰면서는 정확하게 인용 규칙에 따라 출처를 하나하나 명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절차 중 하나였다. 자료 제목과 유형, 저자, 연도, 페이지 등은 물론 출처의 종류에 따라 괄호 모양까지도 달라 형식에 맞게 정리하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심지어 쉼표냐 마침표냐까지.
'예술'이나 '학문' 분야에 따라붙는 것이 저작권이라고 알고 있던 때가 있기도 했지만 '산업' 차원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개인이 생산하는 콘텐츠들이 많이 생기면서 드디어 일상에서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 같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저작권 관련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하나의 단어로 퉁칠 수도 없는 것이 저작권이라는 큰 우산 아래 세분화되어 남에게 나눠줄 수 있는 부분과 나눠주려야 줄 수 없는 부분으로도 나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적용되는 명칭과 범위가 또 다르다.
누구나 작품으로 인식하는 무언가 뿐 아니라 모두가 의식 없이 사용하던 컴퓨터의 글자(폰트스타일)도 일상 사용이냐, 인쇄냐, 웹용 콘텐츠에 사용하느냐 등 다른 무언가로 활용되는 순간 저작권 이슈가 발생하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법적으로, 또 법에 따라 인식이 계속해서 변화, 구체화, 확장되는 것을 보면 이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완전히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런가 하면 강화된 저작권법을 악용하는 경우도 간혹이지만 있다. 위반 저작물을 불특정 한 채 당신이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법률대행사를 통해 메일을 뿌리거나, 샘플링 소스로 공개된 데이터를 사용한 저작물을 상대로 본인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경고 메일을 보내기도 한단다. 실질적인 저작권 보호를 위한 행위라면 정당한 권리 행사이지만, 운 좋으면 걸려라 하는 의도가 있다면 그건 낭패다. 위반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한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고 나의 권리 또한 침해받지 않아야 하지만, 동시에 불필요한 오해와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작권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상생활과 업무 차원에서 개개인이 인식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상황에 따른 검색과 상담이라는 방법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는 사이 공연 현장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미 꽤 오래전 이긴 하지만 해외 작가 작품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희곡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놀랍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작권 보호 기간이 서로 달랐으니 가능했을 법도 한 이야기구나 싶다. 계약 없이 의리와 관행으로 작업을 하는 경우도 빈번하던 것이 세상이 바뀌면서 계약 체결이 자리를 잡았고, 2018년 문체부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분야별, 직종별 표준계약서를 도입, 배포하기에 이른다.
물론 저작권은 계약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보호받는 권리이다. 그리고 계약은 계약 당사자 모두를 보호하는 목적이다. 하지만 계약 안에서 당사자들의 의무와 권리가 구체화되고, 계약 의무에 따라 계약서와 조항들을 자주 접하고, 그러다 보니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개개인에게도 좀 더 체화되었다 생각한다.
공연은 다양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는데 희곡과 함께 창작자들의 저작권으로 들어가면 좀 더 복잡해진다. 대본만 보아도 희곡작가, 원작자, 각색자, 윤색자, 번역대본의 경우 번역자까지 고려해야 하고 각각 권리의 범위와 정도가 다르다. 그리고 무대, 조명, 의상, 분장, 영상, 음악과 음향 등을 디자인이라고 묶는다 해도 생산물이 다르기에 저작권을 보호하는 내용과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연출과 출연자(출연자는 실연자로서 초상권이 적용된다)는 물론 업무가 세분화되니 한 편의 공연을 제작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계약서도 각각인데다 고려해야 하는 저작권 내용도 공통된 부분과 또 서로 다른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마저도 공연 예술 중 연극 또는 뮤지컬 장르로 한정했을 때고, 한 편의 대본을 베이스로 공연이 만들어진다는 전제하의 얘기다. 점점 다원, 공동창작 등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공연이 만들어지고 공연의 형태도 달라지는 만큼 창작자 개개인의 저작권을 어떻게 구분하고, 어떻게 인정할 것이냐도 점점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한편 연출가는 순수 저작권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연출 활동에 의한 결과물이 2차적 창작물이라는 점 때문인데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역시 인식과 법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하며 때문에 계속 합의와 발전이 필요한 이유이다.